윤석열 대통령과 한국을 방문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지난 5월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공동 기자회견이 끝난 뒤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유엔(UN)에 ‘일본 정부가 강제동원 피해자에게 공식 사과했다’는 취지의 의견서를 보내 논란이 일자, 정부가 수정 의견을 냈지만 해당 표현은 그대로 남아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기존 내용에 국내 일부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와 기업의 공식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는 내용이 추가됐을 뿐이다.
12일 유엔 문서 시스템을 보면, 한국의 과거사 문제를 조사한 파비안 살비올리 유엔 진실·정의·배상·재발방지 특별보고관(진실정의 특보)이 유엔인권이사회에 발표한 보고서와 관련해 한국 정부는 지난달 14일 의견서 수정본을 제출했다. 정부는 이 의견서에서 강제동원에 대한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 항목에 “일부 피해자와 유족들은 계속해서 일본 정부와 기업의 공식 사과와 배상을 요구하고 있다”는 문장을 추가했다. 하지만 이 문구 바로 앞에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지난 5월 한-일 정상회담 뒤 공동 기자회견에서 ‘개인 의견’을 전제로 “혹독한 환경 아래 다수의 분들께서 대단히 힘들고 슬픈 경험을 하신데 대해 굉장히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고 말한 문장이 여전히 서술돼 있다.
앞서 야당과 시민단체는 기시다 총리의 개인적인 유감 표명 발언을 ‘공식 사과’에 포함한 것을 두고 “정부가 일본 정부를 대변했다”고 비판했다. 정부 의견서엔 “일본 정부는 ‘위안부’ 피해자들과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공식사과를 하고, 가해 사실을 인정했다”거나 “현재 진행 중인 과거사 문제를 정부가 대부분 해결했거나 해결하고 있다”는 내용도 담겼다.
논란이 커지자 외교부도 당시 실무자 부주의가 있었다며 문제가 된 내용을 검토해 의견서를 다시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외교부 관계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의견서 수정본과 관련해 “(기시다 총리 발언을) 일본의 공식사과로 인정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간 일본이 밝힌 입장을 기술한 것 뿐”이라며 “강제징용 피해자와 유족들이 일본 정부와 기업에 공식 사과와 배상을 요구하고 있다는 객관적 내용을 새로운 문장으로 추가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임수석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우리 정부는 일본 정부가 식민지배 전체에 대한 사죄를 표명한 김대중-오부치 선언의 정신을 일관되고 충실하게 계승하여 미래 지향적인 양국관계를 만들어 나갈 수 있도록 노력하고자 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정부 보고서를 비판했던 유엔 인권이사회 한국 엔지오(NGO)대표단의 이나영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은 “(시민사회는) 기시다 총리가 공식 사과한 적이 없다는 것이 비판의 취지였는데, 문제제기한 내용은 바뀐 게 없다. 여전히 한국 정부가 일본 정부를 대변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장예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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