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31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2024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을 마치고 퇴장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31일 윤석열 대통령의 2024년도 예산안 국회 시정연설은 더불어민주당이 야당에 대한 전방위적 수사·감사에 반발해 시정연설 자체를 보이콧했던 1년 전과는 다른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잠시나마 윤 대통령과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대화가 윤석열 정부 출범 뒤 처음으로 이뤄졌고, 시정연설 뒤에는 윤 대통령과 여야 국회 상임위원장들의 오찬도 이어졌다. 민주당 의원들은 윤 대통령 면전에서 ‘서울-양평 고속도로 의혹’을 거론하는 등 국정운영 기조 전환을 요구했으나 윤 대통령은 즉답은 하지 않았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전 9시40분께 국회에 도착해 김진표 국회의장을 비롯한 5부 요인과 여야 지도부를 만나 환담했다. 윤 대통령은 이재명 대표에게 “오셨어요? 오랜만입니다”라고 인사를 건네며 짧게 악수했다. 이어진 환담에서 이 대표는 윤 대통령에게 “민생 현장이 너무 어려우니 정부 부처는 지금까지와 다른 생각으로 현장에 더 천착하고, 정책이나 예산을 대대적으로 전환해주시면 좋겠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의 별도 회담까지 이어질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이어 오전 10시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윤 대통령 시정연설은 지난해 ‘반쪽짜리 시정연설’과 달리 민주당 의원들이 제 자리를 지켰다. 다만 윤 대통령이 입장할 때 국민의힘 의원들과 국무위원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쳤지만, 민주당 의원들은 자리에 앉은 채 박수를 치지 않았다. 윤 대통령은 본회의장 중앙 통로 쪽에 앉아 있던 민주당 김교흥·이해식·김성주 의원 등에게 먼저 악수를 청하기도 했다. 민주당은 윤 대통령의 연설에 대체적으로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지만, “불법 행위에 대해서는 노와 사를 불문하고 법과 원칙에 따라 대응해왔다”는 대목에선 탄식이 나오기도 했다. 강성희 진보당 의원은 시정연설 내내 윤 대통령을 향해 “피눈물 난다, 서민 부채 감면”이라고 쓰인 손팻말을 들어 보이기도 했다. 윤 대통령은 연설을 마친 뒤에도 이재명 대표 등 야당 의원들과도 악수를 나누며 본회의장을 빠져나갔다.
윤 대통령의 이날 연설문 초안에는 문재인 정부 시절 방만한 재정 집행과 가계부채 방치 등에 대한 내용이 담겼었지만, 윤 대통령이 “지난 정부에 대한 언급은 싹 들어내라”고 지시해 수정됐다고 대통령실 관계자가 전했다.
윤 대통령은 연설을 마친 뒤에는 국회 사랑재에서 여야 원내대표 및 국회 상임위원장단과 점심을 함께 했다. 오찬에 앞서 간담회에서 민주당 소속 상임위원장들은 쓴소리를 내놨다. 김민기 국토교통위원장은 ‘서울-양평 고속도로 의혹’과 관련해 윤 대통령에게 ‘김건희 여사’를 거명하며 “논란의 종지부는 이제 대통령께서 직접 찍어주셔야 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고 한다. “십수년간 한결같이 종점이 지금의 원안인 ‘양평군 양서면’이었는데 작년 5월, 국토부는 느닷없이 종점부를 강상면으로 바꿔버렸다. 하필 바뀐 종점부 근처에 김건희 여사 일가의 상당량의 땅이 있었고, 특혜를 주기 위해 종점부 노선을 변경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김교흥 행정안전위원장은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 손을 한번 잡아주시면 그분들 가슴이 봄눈 녹듯이 녹을 것”이라며 “유족들을 만나고 참사 책임자들에게 책임을 지워달라’고 조언했다. 이 밖에 “여성가족부 폐지를 위해서 장관 하려는 사람을 여가부에 보내지 말라”(권인숙 여성가족위원장), “대통령실 공직자 (자녀) 학교폭력 의혹을 빠른 시일 내에 해소해달라”(김철민 교육위원장) 등의 주문도 나왔다. 윤 대통령은 “우리 의원님들과 또 많은 얘기를 하게 돼서 저도 아주 취임 이후로 가장 편안하고 기쁜 날”이라며 “간담회 때 하신 말씀은 제가 다 기억했다가 최대한 국정에 반영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홍익표 원내대표 등 민주당 의원 100여명은 윤 대통령이 국회 본청에 도착할 때 중앙홀 계단에서 ‘국정기조 전환’ ‘국민을 두려워하라’ 등이 적힌 손팻말을 들고 침묵 시위를 벌였다. 윤 대통령은 이에 눈길을 주지 않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사전환담장으로 향했다. 민주당 의원들 사이에선 “대통령님, 여기 한번 보고 가세요!” 등의 외침이 나오기도 했다. 지난 24일 김진표 국회의장과 여야 원내대표가 국회 회의장에서 팻말 시위나 고성·야유를 하지 않기로 한 ‘신사협정’의 취지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에 홍 원내대표는 “회의장 밖에서는 (손팻말 사용을) 할 수 있다고 합의했다”며 “대통령이 1년에 한번 국회에 오시는 날이라 어떤 형태로든 (야당의) 의견을 전달해야 한다는 의견이 다수 있었다”고 말했다.
선담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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