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26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박정희 전 대통령 묘역에서 열린 박 전 대통령 서거 제44주기 추도식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악수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이 26일 박정희 전 대통령 추도식에 참석해 “박 대통령의 정신과 위업을 다시 새기고 이를 발판으로 다시 도약하는 대한민국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현직 대통령이 박 전 대통령 추도식에 참석한 것은 처음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 11일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국민의힘이 참패한 뒤 참모진과 여당, 정부에 ‘변화’와 ‘소통’을 주문했지만, 대통령 스스로 ‘내 편 챙기기’와 ‘보수 결집’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윤 대통령은 이날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민족중흥회 주관으로 열린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 제44주기 추도식’에 참석해 “조국에 대한 사랑과 열정으로 산업화의 위업을 이룩한 박정희 대통령을 추모하는 이 자리에서 그분의 혜안과 결단과 용기를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사우디아라비아·카타르 순방을 마치고 귀국한 뒤 두 시간여 만에 추도식장으로 향했다. 추도식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큰딸 박근혜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 인요한 혁신위원장, 김대기 대통령비서실장 등 여권 주요 인사들이 대거 참석했다. 윤 대통령이 박근혜 전 대통령과 재회한 것은 지난해 5월 대통령 취임식 뒤 17개월 만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통령이 26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박정희 전 대통령 묘역에서 박 전 대통령 서거 제44주기 추도식을 마치고 묘소 참배에 나서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윤 대통령은 추모사에서 “취임 이후 지금까지 전세계 92개국 정상을 만나 경제협력을 논의했다. 박정희 대통령이 이룬 압축성장을 모두 부러워하고, 위대한 지도자의 결단에 경의를 표했다”며 “이분들에게 ‘박정희 대통령을 공부하면 압축성장도 보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늘 강조했다”고 추어올렸다. 윤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통령은 추도식 뒤 나란히 박정희 전 대통령 묘소를 참배했다.
윤 대통령의 이날 추도식 참석은 최근 티케이(대구·경북) 민심 이탈 조짐에 따른 위기감이 작동한 데 따른 것이란 해석이 우세하다. 앞서 지난 20일 한국갤럽은 전국 성인 1천명을 상대로 한 대통령 지지율 조사(신뢰 수준 95%, 표본오차 ±3.1%포인트)에서 티케이 지역 부정평가 비율(48%)이 긍정평가(45%)를 앞섰다고 발표했다. 보수 진영에서는 ‘국정농단 수사 검사’였던 윤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통령의 관계에 주목해왔다. 이런 분위기 속에 윤 대통령은 이날 만남을 통해 ‘보수 단합’ 메시지를 보이려 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한겨레에 “작게 보면 보수 통합으로 볼 수 있지만 넓게 보면 국민 통합”이라며 “국민 이야기를 듣겠다는 의지는 여전하다”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26일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에서 열린 박정희 전 대통령 44주기 추도식에 참석해 박근혜 전 대통령과 나란히 앉아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이날 행보는 29일 서울광장에서 열리는 이태원 참사 1주기 시민추모대회에 윤 대통령이 참석하지 않기로 한 것과 대조를 이뤘다. 대통령실은 더불어민주당 등 야4당의 공동주최 형식이라는 점을 이유로 대며 추모대회가 “정치 집회로 변질했다”고 규정했고, 별도의 추모 메시지를 발표하는 방안이나 일정을 논의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이에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는 “시민추모대회는 정치의 공간이 아니다”라며 “다시 한번 대통령을 정중히 초청한다”고 밝혔다. 민주당도 “공동주최에서 물러나겠다”(임오경 원내대변인)며 대통령의 참석을 거듭 요청했다.
채장수 경북대 교수(정치외교학)는 “박정희 전 대통령 추모식 참석은 ‘집토끼를 챙기겠다’는 의미로, 보궐선거 뒤 변화와 소통을 강조했던 것을 떠올리면 일관성이 전혀 없는 것”이라며 “내년 총선을 앞두고 지지층 확장이 필요한 시점에 오히려 도움이 안 되는 일정”이라고 짚었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정치학)는 윤 대통령의 이태원 참사 추모행사 불참 방침에 “정치 집회 이야기를 하기 전 진정성 있게 유족들 슬픔을 위로하고 행동하는 모습을 보여야 하는데 그런 것은 없었다. 그러면서 전직 대통령 추도식에만 가는 것은 대통령 인식이 변하지 않았다는 방증”이라고 했다.
김미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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