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26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박정희 전 대통령 묘역에서 열린 박 전 대통령 서거 제44주기 추도식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악수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이 26일 사우디아라비아와 카타르 순방을 마치고 돌아오자마자 첫 일정으로 박정희 전 대통령 추도식에 참석했다. 현직 대통령으로서는 첫 참석이다. 윤 대통령은 반면 오는 29일 열리는 이태원 참사 1주기 추모대회에는 참석하지 않기로 했다고 대통령실이 밝혔다. 유가족뿐 아니라 야4당이 공동 주최하는 점을 들어 추모식이 아니라 정치집회라서 안 간다고 이유를 댔다. 온 국민이 함께 비통해한 참사 1주기를 맞아 희생자를 추모하고 유가족 아픔을 달래는 자리인데, 누가 주최하느냐가 윤 대통령에겐 그리도 중요했나.
윤 대통령은 여당의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참패 직후, 취임 이후 처음으로 ‘반성’이란 말을 했다. 또 “이념 논쟁을 멈추고 민생에만 집중해야 한다” “국민은 늘 무조건 옳다” 같은 말도 했다. 그러나 불과 며칠이 지나지 않아 여전히 이전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윤 대통령은 박 전 대통령 추도식에 함께 참석한 박근혜 전 대통령을 향해 “자녀로서 겪으신 슬픔에 대해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하고, 나란히 묘소 참배도 했다. 지난 20일 보수 텃밭인 대구·경북에서도 대통령 지지율이 50% 아래로 하락했다는 보도가 나온 직후다. 내년 총선을 겨냥해 대구·경북 등 윤 대통령의 마지막 지지층인 강경 보수 세력을 향한 애절한 구애로 보인다.
반면, 유가족들이 직접 윤 대통령을 초청한 이태원 참사 추모식 참석은 거부했다. 지금 대통령의 위로를 받아야 될 사람이 대통령 사면으로 풀려난 박 전 대통령인가, 지금껏 단 한번도 대통령 사과를 듣지 못한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인가.
야4당 공동 주최를 핑계댄 것은 참으로 치졸하다. 윤 대통령은 그동안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등의 지휘 책임을 앞장서 부인했다. 대통령을 따라 정부·여당도 유가족들의 ‘이태원 참사 진상 규명 특별법’ 제정 요구를 일축해왔다. 추모식이 야당과 공동 주최로 열리게 된 것도 윤 대통령과 여권이 무관심과 무시로 일관해왔기 때문이다. 야당 공동 주최가 정히 문제라면, 여당도 주최에 함께 참여하면 될 일 아닌가. 이태원 참사에 대한 윤 대통령의 불편한 속내와 속좁음만 드러낸 것이다.
결국 윤 대통령이 말하는 ‘통합’은 자기편 내부만을 겨냥한 반쪽 통합이란 게 분명해졌다. 총선이 가까워지고 있으니, 상황이 불리하다 싶으면 그땐 또 뭐라 하며 ‘통합’을 이야기할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