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 전경.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감사원의 전현희 전 국민권익위원장 최종 감사보고서가 ‘허위 공문서’ 논란에 휩싸였다. 이 보고서가 감사원의 적법한 결재 없이 시행·공개됐기 때문이다. 결재 절차를 밟은 건 최종 의사결정기구인 감사위원회의(감사위) 의결을 거친 문서가 아니라, 사무처가 작성한 초안(부의안)이다. 부의안을 검찰 공소장으로, 감사보고서를 법원 판결문으로 비유할 수 있는데, 감사원이 공소장을 결재한 뒤 판결을 집행한 꼴이다. 이는 절차상 중대한 흠결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는 허위 공문서 해당 여부를 수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9일 한겨레가 확보한 자료를 보면, 지난 6월9일 시행·공개된 전 전 위원장에 대한 최종 감사보고서는 감사원 전자업무시스템에 등재되지 않았다. 대신 사무처의 ‘부의안’이 올라가 있다. 부의안은, 사무처가 감사를 진행한 뒤 감사 대상에게 어떤 징계를 내리는 게 좋을지 ‘조치 의견’을 달아 감사위에 올리는 문서다. 감사위는 이 부의안을 심의한 뒤 최종 감사보고서를 만든다.
감사보고서는 사무총장 결재와 주심 감사위원 열람을 거쳐야 비로소 효력(시행·공개)이 발생하며, 이는 모두 전자업무시스템에서 이뤄진다. 그런데 전 전 위원장 최종 감사보고서는 전자업무시스템에 등재되지도 않은 채 시행·공개된 것이다.
한 전직 감사위원은 “이게 사실이라면 공개된 보고서는 허위 공문서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현재 전 전 위원장의 고발에 따라 직권남용·무고 등의 혐의로 최재해 감사원장과 유병호 사무총장을 수사 중인 공수처는 포렌식 등을 통해 이런 문제를 파악한 것으로 전해졌다.
감사원 전자업무시스템에 등재된 전현희 전 국민권익위원장 감사보고서. 오른쪽 ‘조치할 사항’에 전 위원장의 주의가 기재돼있는 등, 최종 시행·공개된 보고서가 아닌 사무처 부의안이 등재돼 있다.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실제 부의안과 감사보고서는 전 전 위원장의 △출퇴근 등 근무시간 미준수 △권익위의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아들의 병역특혜 의혹 수사 유권해석 관련 보도자료 허위 작성 등과 관련해 다른 판단을 내리고 있다. 사무처의 부의안에는 전 전 위원장에게 “주의”를 주면서 “평소 근무관리를 철저히 하고, 보도자료 등을 통해 권익위 유권해석의 처리기준 등을 전달할 경우 사실과 다른 정보를 제공하는 일이 없도록 하며 (중략) 관련 업무를 철저히 하시기 바란다”고 기재돼 있다. 그러나 감사위는 이런 혐의에 ‘불문’(책임을 묻지 않음)을 의결했다. 최종 감사보고서에도 전 전 위원장 개인에게 주의 조처를 한다는 내용은 담기지 않았다.
게다가 감사원 사무처는 주심인 조은석 감사위원이 6월9일 전자업무시스템에서 ‘열람 클릭’을 하지 않았는데도 한 것처럼 조작했고, 최재해 원장도 이를 시인한 바 있다. 사무처는 또 지난달 19일엔 내부 티에프(TF)의 진상조사 결과 조 위원이 열람 버튼을 누르지 않아 “감사 방해를 했다”며 대검찰청에 수사 의뢰도 했다. 그런데 결재 조작을 한 문서도, ‘감사 방해’라고 주장한 문서도 감사위 의결을 거친 감사보고서가 아니라 부의안이었던 것이다.
사무처가 왜 이런 일을 벌였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다만, 감사보고서 수정·확정을 둘러싼 감사위와 사무처의 줄다리기가 계속되던 중 사무처가 6월10일 최재해 원장이 국외 출장을 떠나기 전에 이 감사보고서를 마무리하려고 서두르다 벌어진 일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감사원 관계자는 “시골 면사무소만도 못한 일 처리”라고 꼬집었다. 감사원 내부 티에프는 진상조사에서 이 문제를 다루지 않았다.
이에 감사원 쪽은 “시행 관련 규정을 모두 준수했고, 최종적으로 전산에 등재한 보고서와 시행문은 동일하다”며 관련 내용을 부인했다.
장예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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