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1년 8월18일 대전 현충원에서 열린 홍범도 장군 유해 안장식. 문재인(오른쪽) 대통령과 김정숙(왼쪽) 여사가 추모를 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홍범도 장군 유해가 봉환된 지 불과 2년 만에 홍 장군 흉상이 이념 논쟁에 휘말린 것을 보니 당시 유해 봉환 교섭에 나섰던 대사로서 카자흐스탄 정부와 고려인들에게 부끄럽습니다.”
김대식(63) 전 카자흐스탄 대사는 국방부와 육군사관학교의 홍 장군 흉상 이전 움직임을 작심하고 비판했다. 그는 2017년 4월부터 2020년 5월까지 카자흐스탄 대사를 지냈다. 그는 2021년 홍 장군 유해가 78년 만에 국내 봉환될 수 있도록 1년 가까이 주재국인 카자흐스탄 정부를 설득했다.
김 전 대사는 5일 한겨레에 “국가보훈부 승격 첫해에 이 같은 이념 논쟁을 벌여 갈라치기를 하는 건 외교적 차원에서도 국가 체면을 손상시키는 일”이라고 말했다.
한국 정부는 과거 노태우, 김영삼 대통령 때도 홍 장군 유해 봉환을 시도했다. 그러나 북한의 반발과 카자흐스탄 정부의 거절 등으로 무산되길 반복했다. 카자흐스탄은 남북 모두와 수교한 나라다. 그러나 2019년 4월 문재인 대통령의 카자흐스탄 국빈방문을 계기로 독립운동가 계봉우·황운정 지사 유해가 봉환됐고, 2년여 뒤 홍 장군 유해 봉환이 성사됐다. 김 전 대사는 당시 상황에 관해 “카자흐스탄은 유해 봉환을 조심스러워했다. 그럼에도 독립운동의 역사적 의미와 후세 교육의 중요성을 부각해 어렵게 카자흐스탄 정부를 설득했다”며 홍 장군을 둘러싼 이념 논쟁에 강하게 유감을 표시했다.
김 전 대사는 이미 역사적 평가가 끝난 홍 장군을 현 정부가 정쟁의 수단으로 삼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홍 장군의 업적은 전 정부만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 박정희 대통령 때부터 훈장을 수여하고, 역사에서 위인으로 배운 인물인데 이제 와서 편협한 사고로 이념 논쟁을 벌이고 있다”며 “(윤석열 정부는) 기득권을 지키려고 민족과 국가를 끌어들이는 것 같다. 보훈처가 국가보훈부로 승격된 첫해인 만큼 이념 논쟁을 하지 말아야 하는데 반대로 가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김 전 대사는 “정권이 바뀌어도 국가 정체성을 확립하는 역사적 관점은 연속성을 지녀야 한다. 홍 장군 평가가 이념, 정쟁 관점에서 이뤄져선 안 된다”고도 했다.
김 전 대사는 이번 일로 10만 고려인 사회가 떠안을 실망감에 대해서도 우려했다. 홍 장군 유해 봉환 협상 당시 카자흐스탄 고려인 협회는 카자흐스탄 정부를 설득했다.
김 전 대사는 “홍 장군은 고려인들에게 정신적 구심적 역할을 하는 분이었다. 그러나 고려인들이 조국과의 연결점을 찾는다는 의미에서 유해 봉환이라는 어려운 결정을 내리고 지지해준 것이었다”며 “고려인들은 국외 독립운동가를 기리는 조국의 역할을 기대했다. 그러나 이념 논쟁에 치우쳐 민족을 위한 독립운동가였던 홍 장군이 공산주의자였다고 매도하는 윤석열 정부 주장은 국내 논쟁을 넘어 한국-카자흐스탄 관계의 중심축인 이들에게 큰 상처를 준 것이다”라고 말했다.
장예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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