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년 만에 고국 땅으로 돌아온 독립운동가 홍범도 장군의 유해가 2021년 8월15일 오후 국립대전현충원에 임시 안치되고 있다. 연합뉴스
임경석 성균관대 사학과 교수
2023년 8월25일, 육군사관학교는 언론사 앞으로 성명문을 배포했다. 거기에는 믿기 어려운 내용이 담겨 있었다. 교내에 설치된 ‘독립군·광복군 영웅 흉상’을 모두 철거해 다른 곳으로 옮긴다는 내용이었다.
한번 들어보자. “생도들이 학습하는 건물 중앙현관 앞에 2018년 설치된 독립군·광복군 영웅 흉상은 위치의 적절성, 국난 극복의 역사가 특정 시기에 국한되는 문제 등에 대한 논란이 이어져왔다”고 한다. 그래서 그 흉상을 철거하고, 학교 밖 어딘가로 이전하겠다는 말이었다.
■ 독립운동가 향한 느닷없는 공격
흉상의 주인공은 항일무장투쟁의 지도자들이었다. 대한독립군 총사령관 홍범도, 북로군정서 총사령관 김좌진, 신흥무관학교 설립자 이회영, 광복군 총사령관 지청천, 광복군 참모장 이범석 등 5인이다. 무장 독립운동을 대표하는 데 부족함이 없는 인물들이다. 해방된 조국의 군사 장교를 양성하는 사관학교에서 길이 사표로 삼을 만한 인물들이다.
그 흉상을 없애는 대신 어떻게 하겠다는 뜻일까. 성명문에 따르면 “육사 교내에는 학교 정체성과 설립 취지를 구현하고 자유민주주의 수호 및 한-미 동맹의 가치와 의의를 체감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조성하는 데 중점을 두고 기념물 재정비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한다. ‘자유민주주의’와 ‘한-미 동맹’이 육사의 정체성을 표상하는 단어로 간주되고 있음을 본다. 그에 걸맞은 인물들로 대치하겠다는 의미였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새로이 흉상 설치를 검토하는 인물은 백선엽 장군이다. 백선엽이 누군가. 2009년 대통령직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규정한 인물 아닌가? 그는 “1942년 만주국군 소위로 임관한 이래 1945년 일제의 패전에 이르기까지 만주국군 장교로서 일본의 침략전쟁에 적극 협력”한 자였다.
지난 8월29일 오후 대전 유성구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3 묘역을 찾은 대전시민들이 홍범도 장군의 묘역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1943년 2월부터 만주지역 항일무장 독립세력을 무력으로 탄압하던 간도특설대에서 이들에 대한 탄압 활동을 전개하였고, 또 1944년부터 1945년에 걸쳐 간도특설대원으로서 일본군의 작전의 일환으로 중국군 팔로군을 토벌하는 작전에 종사하였고, 1945년 봄부터 일제의 패전 당시까지 연길지역 국경수비 임무에 종사”했다고 지목받았다.
요컨대 육사의 성명문은 독립군 흉상을 없애고 그 대신 친일반민족행위자의 흉상을 세운다는 얘기나 다름없었다. 이 방침은 단지 육군사관학교 차원에서 결정된 게 아니었다. 같은 날 이종섭 국방부 장관은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행한 발언을 통해 육사 교내 기념물 정비 계획이 있음을 시인했다. 독립군·광복군 흉상을 육사 교내에서 철거해 외부로 옮기겠다는 방침이 윤석열 정부 차원에서 추진되고 있음을 확인한 것이었다.
여론이 들끓기 시작했다. 먼저 사회단체가 움직였다. 독립운동가기념사업 단체들이 연합해 반대 성명을 발표하고 기자회견을 열었다. 독립유공자와 그 유족을 구성원으로 하는 광복회도 나섰다. 광복회장 이종찬은 흉상의 주인공인 이회영의 손자이자 육사 16기(1956년 입학) 출신으로서 민주정의당 국회의원, 국가정보원장을 역임한 보수 성향 정치인이다. 그는 격렬히 반발했다. 이종섭 국방부 장관에게 사퇴를 요구하는 공개서한을 발표했다.
야당도 들고일어났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된 홍범도 묘역을 참배하고, “독립전쟁 영웅을 부관참시하는 일은 결코 용납할 수 없다”고 발언했다. 박광온 원내대표도 당내 최고위원회 회의 석상에서 독립운동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지우려는 반역사적, 반민족적 폭거를 취소할 것을 요구했다.
심지어 여당에서도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국민의힘 내 비주류 인사들이 제각각 발언했다. 대통령선거 당내 경선 후보자이던 유승민 전 의원, 홍준표 대구시장, 이준석 전 대표 등이 페이스북 등을 통해 흉상 철거 계획을 꼬집었다.
평소 친정부 논조를 유지하던 일부 언론매체도 등을 돌렸다. <조선일보>는 8월28일치 사설에서 “북한과 아무 관련이 없고 반국가적 활동을 한 적도 없는 홍 장군의 공산당 가입 경력만 문제 삼는 것은 이념적이고 편협하다는 지적이 나온다”고 비판했다. <중앙일보>도 소련공산당에 입당했다는 이유로 동상을 옮기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며, 독립운동가 5인의 흉상 이전에 반대 입장을 밝혔다. <문화일보>에 뒤이어, <매일경제>도 홍범도 흉상 이전은 상식에서 벗어난 일이며 역풍이 불 것이라고 우려했다.
결국 흉상 철거 계획은 반대 여론에 포위된 셈이다. 그 계획을 추진하던 정권 내부의 뉴라이트 근본주의자들이 고립된 형국이라고나 할까. 그들은 궁지에 빠졌다.
지난 8월28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에서 정례 브리핑하는 전하규 국방부 대변인. 연합뉴스
8월28일, 국방부는 또 성명문을 냈다. ‘육사의 홍범도 장군 흉상 관련 국방부 입장’이라는 제하의 글이었다. 지난번 성명문을 낸 지 사흘 만이었다. 들끓는 여론에 부담을 느꼈을까. 국방부는 신속하게 국면 전환을 꾀했다. 독립운동가 5인 전체가 아니라 그중에서 한 사람만 꼬집었다. 바로 홍범도 장군이다.
성명문을 들여다보자. “소련공산당 가입 및 활동 이력 등 논란이 있는 홍범도 장군의 흉상이 육사에, 더욱이 사관생도 교육의 상징적 건물인 충무관 중앙현관에 있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국방부는 그 판단의 근거를 구체적으로 적시했다. (1)1921년 6월 러시아공산당 극동공화국 군대가 자유시에 있던 독립군을 몰살시켰던 자유시 참변과 연관됐다는 의혹, (2)빨치산 활동 기간이 1919~1922년으로 기재된 홍범도 신원증명서로 미뤄보아 봉오동·청산리 전투에도 빨치산으로서 참가했다는 의혹, (3)1927년 소련공산당에 입당한 사실 등이 그것이다. 요컨대 ‘1921년 러시아 자유시로 이동한 이후 보인 행적’은 독립운동 업적이 아니라고 봤다.
■ 이것이 정부기관의 공적 문서란 말인가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과연 이것이 정부기관의 공적 문서란 말인가? 허위와 무지, 그리고 역사에 대한 몰이해가 판단의 전제에 놓여 있음을 본다. 첫 번째 의혹은 전적으로 허위의 소산이다. 자유시 참변에 관한 역사학계의 연구는 러시아어 자료와 일본 쪽 정보 자료, 독립군 당사자 자료를 종횡으로 비교분석한 반병률, 임경석, 윤상원 교수 등의 단행본과 박사학위 논문에 의해 대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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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 따르면 자유시 참변의 기본 성격은 독립군 부대들의 대통합 방법을 둘러싼 내분이었다. 사망자를 낳은 무장해제 결정의 책임은 고려혁명군 지휘부(칼란다리시빌리, 최고려, 김하석, 오하묵)에게 있었다. 홍범도는 유혈 내분을 낳을 것을 우려해 무장해제 결정에 반대하는 입장에 섰음이 자료상으로 뚜렷하다. 국방부가 제기한 첫 번째 의혹은 전혀 사실의 근거가 없다.
두 번째 의혹은 전적으로 무지의 소산이다. 빨치산이란 말은 러시아어 파르티잔(Партизан)에서 온 외래어로, 비정규전에 종사하는 무장부대를 가리킨다. 비정규군이란 뜻이다. 1919~1922년 그 용어는 ‘독립군’이나 ‘의병’을 지칭하는 의미로 사용됐다. ‘빨치산’이란 말을 ‘공산주의 무장부대’로 사용하는 용례는 해방 이후에야 비로소 나타났음을 유의해야 한다.
세 번째 의혹은 역사에 대한 몰이해 탓에 생겨난 오해다. 일제 식민지 시기에 소련공산당은 한국 독립운동의 우군이었다. 레닌 정부는 한국 독립운동을 지원하기 위해 금화 200만루블을 제공하기로 약속했고, 그중에서 금화 60만루블이 실제 지급됐음을 상기하자. 독립운동가 다수가 소련 제휴를 다각적으로 모색했다.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전권대사 한형권을 모스크바에 파견했다. 이승만조차 소련의 독립운동 지원을 얻기 위해 밀사 이희경을 모스크바에 파견했다.
국방부가 육군사관학교 교내뿐 아니라 국방부 청사 앞에 설치된 고(故) 홍범도 장군 흉상에 대해서도 필요시 이전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힌 지난 8월28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 앞에 설치된 고 홍범도 장군 흉상 모습. 연합뉴스
국제공산당이 소집한 1921년 극동민족대회에 한국 독립운동계 단체 다수가 52명에 이르는 최대 대표단을 파견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1927년 소련에 거주하던 홍범도가 소련공산당에 입당한 것은 한국 독립운동의 발전을 위해 지극히 자연스럽고 소망스러운 일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때도 소련과 미국은 일본에 맞서 싸운 연합국이었다. 1946년 냉전이 시작되기 전에 소련과 공산당은 미국이 그러했던 것처럼 한국 독립운동의 우군이었음을 이해해야 한다.
소련에 대한 적대의식은 냉전이 격화한 뒤에야 생겨났다. 역사적 맥락을 고려해야 한다. 후대의 평가 기준을 제멋대로 소급해 앞 시기의 역사적 사안을 판정하는 기준으로 남용하는 것은 역사에 대한 몰이해를 드러내는 행위다. 철모르는 어린애의 몰지각이나 다름없는 일이다.
■ 반일 감정을 반공주의로 막고 싶은가
국방부와 육군사관학교는 변칙을 꾀하고 있다.
육사는 철거 예정이던 5개 흉상 가운데 홍범도 장군의 흉상만 학교 밖으로 들어내겠다고 발표했다. 김좌진·지청천·이범석 장군과 신흥무관학교 설립자 이회영 선생의 흉상은 그대로 남겨둔다는 말이다. 애초에 흉상 5개를 모두 철거하려 했으나, 비판 여론이 거세자 변칙을 도모하는 셈이다. 독립운동을 경시한다는 비판을 희석시키고, 사안을 반공주의 이념 문제로 변화시켜 국면의 주도권을 쥐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고 해석된다.
도대체 왜 이러는 것일까? 윤석열 정부는 무엇을 위해 육사 내 독립운동가 흉상 철거 문제를 제기했을까. 시야를 좀더 확장해보자. 흉상 철거가 이슈화하기 전에는 일본의 핵오염수 배출과 윤석열 정부의 방조 태도에 국민적 공분이 조성됐다. 그 직전에는 세계스카우트 잼버리 부실 운영 사태, 충북 청주 오송 지하차도 침수 사고, 서울~양평 고속도로 노선 변경 사안 등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제기됐다.
어느 것이나 다 현 정부의 무능력과 탐욕에 연관된 현안이었다. 이 때문에 정치공학적 해석이 제기된다. 흉상 철거 문제를 제기한 이유는, 핵오염수 방류로 촉발된 끓어오르는 반일 감정을 반공주의로 방어하려는 것이라는 해석이다. 새 이슈로 낡은 이슈를 덮어버리는 책략이 숨어 있다는 말이다.
시야를 국제관계로 옮겨보자. 홍범도 흉상 철거 문제는 한·미·일 동맹과 내적 연관성이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2023년 8월18일 미국 메릴랜드주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회의는 한국과 일본이 안보 위기 때 서로 군사적으로 지원해야 하는 근거를 만들어냈다. 홍범도 흉상 철거 문제는 바로 캠프 데이비드의 ‘3국 신속 협의 공약’ 취지와 연관돼 있다. 유사시 일본군이 다시 한반도에 출몰할 터이다. 그에 대한 한국인의 저항심리를 미리 약화시켜야 할 필요가 있지 않겠는가. 독립운동가 홍범도 흉상을 들어내고 그 자리에 친일반민족행위자 백선엽의 흉상을 세우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두 해석이 다 나름의 일리가 있다고 판단된다. 어쩌면 둘 다 옳을 수도 있겠다.
■ 홍범도의 독립운동은 끝나지 않았다
윤석열 대통령은 8월29일 국무회의 석상에서 홍범도 흉상 철거 문제에 대해 발언했다. “뭐가 옳고 그른지 한번 생각해보라”며 “누군가 해야 할 일이라면 내가 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방부의 조처가 합당하다는 의중을 내비친 것으로 풀이된다.
그뿐인가. 국가보훈부는 홍범도의 독립유공자 서훈을 박탈하는 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조만간 서훈공적심사위원회를 열어 ‘중복 서훈’ 등의 문제가 발견된다면 서훈 박탈을 포함한 모든 가능한 조처를 염두에 두고 있다고 한다.
앞으로 풍파가 더 거세게 일 것 같다. 홍범도는 비록 땅속에서 영면하고 있지만, 그가 평생 헌신했던 독립운동은 아직 끝나지 않은 것 같다. 홍범도 장군의 독립운동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참고 문헌
1. 반병률, <1920년대 전반 만주·러시아 지역 항일무장투쟁>, 독립기념관, 2009년. 임경석, <한국 사회주의의 기원>, 역사비평사, 2003년. 윤상원, ‘러시아 지역 한인의 항일무장투쟁 연구(1918-1922)’, 고려대 박사학위 논문, 201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