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이 28일 오전 전남 순천역에서 호남 학도병 현충시설 건립 의사를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공산당의 나팔수냐, 조국을 위해 제 한 몸 불태우며 기꺼이 목숨 바친 호남학도병 영웅들이냐.”
‘정율성 역사공원’ 반대 논란을 촉발한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이 28일, 광주 출신 중국 혁명음악가 정율성과 한국전쟁 학도병을 맞세우며 선택지를 들이밀었다.
박 장관은 이날 전남 순천역 광장에서 열린 호남학도병 현충시설 건립 계획 발표 자리에 참석했다. 그는 “잊혀진 영웅, 호남학도병을 기억해야 한다. 자유 대한민국을 사수하겠다는 정신이 호남 정신이다”라며 “순천역 광장에 호남학도병 정신을 계승할 수 있는 현충시설을 건립하겠다”고 밝혔다. 순천역은 1950년 6월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순천과 여수, 광양, 벌교 등 호남지역 17개 학교 180여명의 학생이 모여 학도병 참전을 결의한 곳이다.
하지만 박 장관은 인사말의 절반가량을 정율성 역사공원 건립 비판에 할애했다. 그는 “정율성은 우리에게 총과 칼을 들이댔던 적들의 사기를 북돋웠던 응원대장이었다”며 “국민의 소중한 예산은 단 1원도 대한민국의 가치에 반하는 곳에 사용할 수 없다. 장관직을 걸고 정율성 역사공원을 저지하겠다”고 말했다.
광주광역시 동구 불로동 일대에 정율성 역사공원을 조성한다는 광주시의 계획은 2020년 5월 발표된 뒤 추진돼왔으나, 윤석열 정부에서 독립운동가 재평가 작업을 벌여온 박민식 장관이 지난 22일 ‘정율성 공원 반대’라는 페이스북 글을 올리면서 논쟁에 불이 붙었다. 그 뒤 보수언론은 중국 공산당 ‘팔로군 행진곡’과 북한군 ‘조선인민군 행진곡’을 작곡한 정율성의 각종 전력을 부각했다. 급기야 ‘자유’를 제일의 가치로 강조하며 ‘공산전체주의’를 비판해온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5일 국민통합위원회에서 “어떤 공산주의자에 대한 추모공원을 한 지방자치단체에서 만든다고 한다”고 가세하면서 이념 논쟁이 증폭됐다.
보훈부는 중앙행정기관의 장이 지자체의 사무에 대해 조언 또는 권고나 지도를 할 수 있도록 한 지방자치법 제184조 등을 활용해 정율성 공원 저지에 나설 방침이다. 보훈부는 헌법소원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강기정 광주시장은 예정대로 연말까지 공원 조성을 추진할 뜻을 거듭 밝혔다. 그는 이날 기자 간담회에서 “보훈단체와 보수단체를 부추겨 광주를 다시 이념의 잣대로 고립시키려는 행위를 중단하라”며 “국가와 함께 추진했던 한-중 우호 사업인 정율성 기념사업은 광주시가 책임을 지고 잘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배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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