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내 통일부 복도에서 신임 차관 취임식에 참석했던 직원들이 사무실로 돌아가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일 김영호 장관 후보자 등 통일부 인사와 관련해 “그동안 통일부는 마치 대북지원부와 같은 역할을 해왔다”며 “그래서는 안 된다. 이제는 통일부가 달라질 때가 됐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남북 교류협력 업무를 담당하는 통일부 실무 간부가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실(공직기강)의 조사를 받다가 쓰러져 입원 뒤 병가를 낸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 윤석열 대통령의 통일부 업무 재조정, 축소 방침에 따른 대통령실의 전방위 압박이 가시화하는 모양새다.
전해철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22일 통일부에서 받은 자료와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공직기강비서관실을 지난해 하반기부터 다수의 통일부 간부들을 반복적으로 불러 조사하고 중징계를 요청한 것으로 나타났다.
공직기강비서관실은 교류협력국 간부들을 여러차례 불러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 남북 교류협력법을 위반했는데도 왜 과태료를 부과하지 않았는지 강도높게 조사했다고 한다. 공직기강비서관실은 지난해 8·15 전국노동자대회 주최자인 양대 노총이 통일부로부터 북한주민접촉승인을 받은 뒤 북한 직업총동맹 연대사를 발표해 교류협력법을 위반했는데도 과태료를 부과하지 않고 경고 조처만 내린 사실을 따졌다. 당시 통일부 경고 조처는 권영세 당시 통일부 장관의 지침에 따른 것이었다.
조사 과정에서 한 실무간부는 쓰러져 병원으로 긴급히 옮겨졌고, 이후 병가를 냈다. 공직기강비서관실은 이 실무 간부와 그의 상급자에 대해 통일부에 중징계를 요청했다. 그러나 중앙인사위원회는 최근 이 사안에 “불문(不問)경고”를 최종 결정했다. ‘불문경고’란 ‘따져 묻지 않되 경고를 권고한다’는 뜻으로, 견책보다도 수위가 낮다. 현재 두 명의 통일부 간부 가운데 한명은 병가를 낸 상태고, 다른 이는 보직을 받지 못한 본부대기 상태다.
공직기강비서관실은 케이티의 인터넷 텔레비전(TV) 채널 가운데 하나인 통일티브이의 북한 방송 편집 보도와 관련해서도 또다른 교류협력국 실무간부를 조사한 뒤 통일부에 중징계를 요청했다.
공직기강비서관실은 통일부 실무간부가 통일티브이가 북한 방송을 내보내리라고 예상했음에도 정부 승인 과정에서 반대 의견을 내지 않아 국가보안법 위반 소지를 사전에 막지 못했다고 지적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승인 주체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통일부에 공식 의견조회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통일부 실무 간부는 권한이 없었음에도 반대하지 않았다며 중징계를 요청한 셈이다.
아울러 공직기강비서관실은 지난 4월26일 통일부가 펴낸 ‘북한인권보고서’ 영문판에 대해 번역이 부실하고, “(내용에) 법적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면책조항’을 명시했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간부 두 명에게 각각 중징계와 경징계를 내려야 한다고 통일부에 통보했다.
공직기강비서관실은 이밖에도 통일부가 정책연구용역을 이른바 ‘좌파학자’한테 몰아줬다는 등의 이유로 담당자를 불러 조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통일부 내부 사정에 밝은 소식통은 “공직기강비서관실이 통일부를 쑥대밭으로 만들어놨다”고 전했다.
이에 대통령실은 “조사 중 피감찰인이 쓰러진 사실도 없다. 과기부는 통일티브이 승인과 관련해 의견조회를 실시했다”며 “공직기강비서관실은 적법절차에 따라 업무를 수행하고 있으며, 특정 조직의 축소가 감찰 목적이 될 수도 없다”고 밝혔다.
한편, 통일부는 대통령실 지침에 따라 전체 인력의 15%에 이르는 80명 남짓을 줄이고 4개 회담·교류협력 전담부서를 하나로 축소·통폐합하는 조직개편안을 확정해 이르면 이번 주중 입법 예고할 예정이다.
이제훈 선임기자
nomad@hani.co.kr 임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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