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유족이 지난 3월21일 오전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일제강제동원 피해자와 유족을 지원하는 특별법 제정을 위한 20시간 유족 의견 발표회'에서 ‘사진으로 보는 일제강제동원 역사’라는 제목의 자료를 들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행정안전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지원재단)이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 전원에게 위로금을 지급하는 내용을 담은 특별법을 추진하기로 했다. 그러나 지원 대상이나 소요 예산이 방대해 실행 가능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법안은 일본 가해 기업의 성금 참여 문제는 담지 않았다.
15일 한겨레가 입수한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명예회복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 초안을 보면 재단은 일제 강제동원 피해 사망자에게는 1인당 1억원, 부상·장해 피해자에게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1인당 1억원 이하의 위로금을 국가 예산으로 지급한다고 돼 있다. 지급 대상은 일본과 사할린 등 국외 강제동원 피해자뿐 아니라 국내에서 강제동원 피해를 본 피해자, 국외 강제동원 생환자, 미신고자까지 포함했다. 기존 국회에서 발의된 강제동원 피해보상 법안은 보상·배상 범위를 ‘국외 피해자’로 한정하고 있다. 지원재단은 이달 안으로 국회 쪽에 요청해 법안을 발의할 예정이다.
그러나 지원재단 쪽은 위로금 지급 대상 규모를 파악하지 못하는 상태다. 지원재단 쪽은 일제가 군인, 군무원, 노무자동원 등으로 강제동원한 조선인을 누적 780만명 가량으로 추정하고, 노역 도중 숨진 사람은 이 가운데 20만명에서 50만명 가량으로 보고 있다. 부상·장해자를 빼고, 사망자를 20만명으로 가정한다고 해도 최소 20조원의 예산이 필요하다. 아울러 세월이 흘러 피해 사실을 입증할 자료를 찾기 어려운 까닭에 피해자 자격 심사 과정에서 갈등도 예상된다.
이 법안은 지난 20대 국회에서 문희상 전 국회의장이 대표 발의한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에 관한 특별법 일부 개정 법률안’(일명 문희상안)과 견줘 후퇴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문희상안은 한국과 일본의 기업과 국민이 자발적으로 낸 성금으로 기금을 만들고, ‘기억⋅화해⋅미래재단'을 통해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위자료를 지급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지원재단의 법안은 일본 기업의 참여 부분을 뺀 채 한국 정부의 예산을 통해 위로금을 지급하도록 했다.
법안이 정부의 제3자 변제에 반발해 판결금 수령을 거부하고 있는 대법원 확정판결 피해자를 고립시킬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춘식(99) 할아버지와 양금덕(92) 할머니 등 생존 피해자 2명과 고 박해옥(1930~2022·미쓰비시중공업 강제동원)씨와 고 정창희(1923~2012·미쓰비시중공업 강제동원)씨 등 피해자 2명의 유족은 정부의 제3자 변제안에 따른 판결금 수령을 거부하고 있다. 지원재단이 과거사 문제를 서둘러 봉합하고, 일본과의 안보 협력을 강화하려는 윤석열 정부 방침에 충실하려 전원 위로금 지급 관련 특별법을 추진한다는 해석이 나오는 까닭이다.
하지만 법안이 국회를 통과할지는 불투명하다. 송기헌 더불어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는 <한겨레>에 “법안이 발의된 다음에 구체적으로 검토해 볼 예정이나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같은 당의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오영환 의원도 “가해자의 배상이 쏙 빠진 법안을 어떤 국민이 환영하겠나”라며 “납득하기 어려운 법안이라 논의 자체가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신형철 기자
newiron@hani.co.kr 강재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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