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가 7월3일 강원도 강릉아레나에서 열린 2023 강릉 세계합창대회 개막식에서 축사하고 있다. 대통령실 사진기자단
대통령실과 국민의힘이 7일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의 서울-양평 고속도로(고속국도) 건설 사업 백지화 발언에 대해 백지화가 아닌 중단, 재검토라고 말을 바꿨다. 7년째 추진해온 1조7천여억원 규모의 대형 국책사업이 돌연 취소된 뒤 비판 여론이 들끓자 수습에 나선 것이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이날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어제는 김건희 여사 특혜라는 더불어민주당 때문에 끝없는 정쟁으로 간다면 도저히 사업을 추진할 수 없다고 보고, (원 장관이) 백지화를 선언한 것”이라며 “이 사업은 현재 백지화가 아니고 여전히 아이엔지(ing·진행 중)인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대통령실 관계자도 “지금은 대안이 있는지 점검하고 주민에게 물어보는 과정이다. 그 과정에서 기존 1~3안이 아닌 제4의 대안이 나올 수도 있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참모도 “(백지화에 대한) 주민들의 입장은 다를 것이고, 수요에 따라 결정되지 않겠느냐”라고 말했다. 이런 대통령실의 태도는 원 장관의 ‘백지화 발언’ 뒤 별다른 입장을 내지 않으며 거리를 두려 했던 전날과는 다른 것이다.
여당도 대통령실과 보조를 맞췄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원 장관이) 백지화라는 말을 썼지만, 현재는 사업 추진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판단해 중단한 것이라고 저는 본다”고 말했다. 이철규 사무총장도 “양평 고속도로 건설은 주민 숙원 사업이자 윤석열 정부의 지방균형발전 노력에서도 아주 중요한 축이다. 경기 동부권 교통편의 제고와 지역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한 사업을 (재개) 할 수도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대출 정책위의장도 ‘사업이 백지화인지 중단인지’를 묻는 <한겨레>의 물음에 “중단으로 봐야 한다”고 답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과 백원국 국토교통부 제2차관이 6일 오전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국민의힘 소속 국토교통위원들의 실무 당정협의회 결과 브리핑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대통령실과 여당이 태도를 바꾼 것은 거센 비판 여론을 의식했기 때문이다. 서울-양평 고속도로 사업은 2017년 ‘1차 고속도로 건설계획 중점 추진사업’에 포함돼 7년째 추진됐다. 2021년 4월에는 종점을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으로 하는 노선이 기획재정부의 예비 타당성 조사를 통과했다. 이 때문에 원 장관의 ‘백지화’ 발표 뒤 숙원 사업이 물거품이 된 양평군 주민들은 물론 다른 지역에서도 즉흥, 졸속 결정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이날 국민의힘 소속 전진선 양평군수는 이철규 국민의힘 사무총장을 찾아가 백지화 철회를 호소했다고 한다. 백지화 발표가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 관련 특혜 의혹을 가라앉히기는커녕, 오히려 증폭시킨 것이다.
당내에서는 원 장관의 독선적인 태도에 대한 불만도 상당하다. 전날 원 정관이 참석한 당정 회의에 있었던 한 의원은 “의원들을 사실상 ‘병풍’ 세운 거 아니냐. 비공개회의 때도 전혀 (백지화 발표를) 듣지 못했다”며 “원 장관은 전화하느라, 메모지에 뭘 적느라 바쁘더라. (그 모습을 보고 용산과) ‘얘기하고 있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참석자는 “원 장관이 (양평 고속도로에 대해) 책임지겠다고만 했지, (백지화 등) 내용은 전혀 얘기를 안 했다”고 말했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사과를 사업 재개, 재검토 조건으로 내걸었다. 이철규 사무총장은 “괴담을 퍼트린 민주당이 사과하고 책임자를 문책하면 양평 주민들의 뜻이 이뤄질 수 있게 정부에 건의하겠다”고 말했다. ‘민주당의 근거 없는 김 여사 특혜 의혹 제기 탓에 사업이 중단됐으니, 사과해야 사업을 재개할 수 있다’는 주장을 하며 민주당에 공을 넘긴 것이다.
서영지 기자
yj@hani.co.kr 손현수 기자
boysoo@hani.co.kr 배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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