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이정근 전 더불어민주당 사무부총장의 통화 녹음 파일에서 번진 ‘2021년 전당대회 돈 봉투’ 의혹에 적어도 10명의 민주당 의원이 연루됐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의혹이 ‘게이트’ 수준으로 비화하고 있다. 전날까지 “국면 전환용 기획수사”라고 반발하던 민주당은 관련자들의 생생한 통화 녹음 파일이 추가로 공개되자 사태의 파장을 예의주시하며 바짝 긴장한 모양새다.
민주당 지도부 관계자는 14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전당대회 돈 봉투 의혹과 관련해 “당이 선제적으로 강도 높은 진상조사에 들어가야 한다”며 “당사자들 설명만 믿다가는 자칫 수렁으로 빠져들 수 있다. 제한된 범위에서라도 진상 파악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앞서 13일 <제이티비시>(JTBC)가 2021년 민주당 전당대회 당시 송영길 전 대표 캠프에 속했던 윤관석 의원과 이 전 부총장의 돈 봉투 살포 정황이 구체적으로 담긴 녹취 파일을 공개한 데 따른 것이다. 녹취 파일(2021년 4월25일)에서 강아무개 전 한국수자원공사 상임감사위원은 이 전 부총장에게 “(윤)관석이 형이 돈을 달라고 하면 1천만원을 주라”고 말하고, 이 전 부총장은 “윤관석 (의원) 오늘 만나서 줬다”고 답한다. 녹취 파일엔 이튿날 윤 의원이 이 전 부총장에게 다섯명에 대해 추가로 돈 봉투가 필요하다는 취지의 전화를 한 정황도 담겼다. 서울중앙지검은 윤관석·이성만 의원 등 송 전 대표 캠프 관계자들이 전국대의원과 권리당원, 국회의원, 지역상황실장 등 최소 40명에게 50만~300만원씩 모두 9400만원의 금품을 전달한 것으로 보고 수사 중이다.
앞서 12일 검찰의 압수수색을 받은 윤 의원 등이 혐의를 강력히 부인하자 ‘신중 모드’를 유지했던 민주당 지도부는 녹취 파일 공개에 크게 당황한 분위기다. 파일에 의원들의 육성이 생생히 담긴데다 300만원짜리 봉투 20개가 10개씩 두차례에 걸쳐 민주당 의원들에게 전달된 정황을 고려할 때, 연루자가 적게는 10명, 많게는 20명에 이르기 때문이다. 연루자로 의심받는 의원들은 기자들에게 “난 아니다”라며 부인하느라 진땀을 빼고 있다. 민주당 의원들은 “녹취는 빼도 박도 못하는 거 아니냐” “녹음이 너무 생생하다”며 술렁였다. 당내에서는 자칫 당 전체가 ‘비리 집단’으로 매도될 수 있다는 긴장감이 읽힌다. 이날 여러 버전의 ‘이정근 리스트’가 정치권을 휩쓸었지만 당 지도부조차 정확한 연루자 명단을 파악하지 못한 상태다. 민주당 지도부는 이날 공개회의를 마친 뒤 비공개회의를 추가로 열어 대책 마련에 부심했지만 현재로선 속수무책이라는 게 중론이다.
당직을 맡고 있는 한 의원은 “검찰이 (관련 의혹의) 한 덩어리만 썰어서 낸 것 같은데 계속 썰어서 내놓지 않겠느냐”며 “정보가 비대칭한 상태에서 자칫 ‘기획수사’나 ‘야당 탄압’을 운운했다간 되치기당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지도부의 또 다른 관계자도 “이정근 녹취 파일이 3만건인 걸 고려하면, 지금까지 공개된 건 빙산의 일각일 것”이라며 “장기전으로 보고 엄중히 사태 파악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엄지원 이우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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