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30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조태용 신임 국가안보실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함께 퇴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성한 전 국가안보실장 등 외교·안보라인의 이례적이고 전격적인 교체로, 출범 이후 지속된 윤석열 정부 외교·안보정책의 총체적 난맥상이 상징적으로 드러났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번 결정이 내려진 이유와 과정은 불분명하고, 사후 설명은 생략됐다. 한반도 긴장 고조와 미-중 전략경쟁을 비롯한 경제·안보 복합위기 심화 속에 한-미 정상회담이란 중요 외교 일정을 코앞에 둔 시점에서 위기 대응을 제대로 해낼 수 있을지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윤 대통령이 미국 국빈방문을 20여일 앞두고 국가안보실장과 주미대사, 대통령실 외교비서관·의전비서관 등 외교·안보라인 핵심을 대거 교체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직접적 발단은 방미 문화행사 관련 보고 누락으로 알려졌지만, 외교·안보팀에 대한 윤 대통령의 불만과 안보실-외교부 간 마찰, 안보실 내부 알력 등이 누적돼 터진 일이란 풀이가 많다. 전임 정부 외교·안보 핵심 당국자는 30일 <한겨레>에 “김 전 실장 경질 과정을 보면서 외교·안보정책 결정 과정 자체가 붕괴 직전이란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윤석열 정부는 중차대한 외교·안보 과제에 직면하고 있다. 북한은 최근 지상과 공중에 이어 수중 핵어뢰 실험을 하고 전술핵탄두(화산-31) 실물 사진을 공개하는 등 대남, 대미 위협을 높이고 있다. 한-일 정상회담도 ‘굴욕 외교’라는 후폭풍 속에 일본의 ‘성의 있는 호응’을 이끌어내야 하는 난제가 놓여 있다. 미국과의 관계에서도, 한-미 동맹 강화라는 정부의 기조에도 불구하고 자국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조 바이든 행정부를 상대로 국익의 균형을 맞춰야 한다. 정부는 주미대사로서 미국과 대화해온 조태용 신임 안보실장이 업무 연속성을 갖고 있어 다음달 26일 한-미 정상회담 준비에 차질이 없을 것이라고 강조하지만, 한국 기업에 불리한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과 반도체법 등에서 양보를 얻어내는 것은 만만치 않은 과제다. 김성한 전 실장은 지난 5~9일 미국을 방문하는 등 미국 쪽과 윤 대통령 방미 의제와 일정 등을 조율해온 당사자다.
이번 일은 부처나 실무진 차원의 협의 결과를 윤 대통령이 압도해버리는 현 정부 외교·안보정책의 특징 또한 거듭 보여준다.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해법 문제가 대표적 사례다. 외교부는 윤 정부 출범 직후부터 국장급에서 장차관까지 다양한 채널을 통해 사죄와 배상 참여란 일본 쪽 ‘호응 조치’를 요구해왔다. 하지만 한-일 관계 개선에 조급증을 낸 윤 대통령이 ‘모든 책임을 내가 진다’며 일본 쪽 요구를 전부 수용했다.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정책조정회의에서 “업무 구분도, 프로토콜도, 시스템도 없이 어느 때보다 복잡한 외교·안보 난맥상을 어떻게 풀어가겠다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정인환 신형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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