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1일 서울 중구 유관순 기념관에서 열린 제104주년 3.1절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은 1일 제104주년 3·1절 기념사에서 “3·1운동 이후 한 세기가 지난 지금 일본은 과거의 군국주의 침략자에서 우리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안보와 경제, 글로벌 어젠다에서 협력하는 파트너로 변했다”고 말했다. 5분25초 분량의 이례적으로 짧은 기념사에서 한-일 과거사 관련 일본을 향한 제안이나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문제 등 현안은 언급되지 않았다.
윤 대통령은 이날 서울 중구 유관순기념관에서 열린 3·1절 기념식에서 “오늘 우리는 세계사의 변화에 제대로 준비하지 못해 국권을 상실하고 고통받았던 우리의 과거를 되돌아봐야 한다. 변화하는 세계사의 흐름을 읽지 못하고 미래를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다면 과거의 불행이 반복되게 될 것은 자명하다”며 이렇게 말했다.
윤 대통령은 일본을 “협력하는 파트너”로 규정한 뒤 “특히, 복합 위기와 심각한 북핵 위협 등 안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한·미·일 간의 협력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지난해 5월 취임 이래 밝혀온 대로 미래지향적 한-일 관계와 한·미·일 3국 협력 강화를 강조한 것이다. 윤 대통령은 이어 “우리는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과 연대하고 협력해 세계시민의 자유 확대와 세계 공동의 번영에 기여해야 한다. 이것은 104년 전, 조국의 자유와 독립을 외친 그 정신과 다르지 않다”며 독립운동 정신을 자유민주주의를 기반으로 한 국제 연대·협력과 연결지었다.
윤 대통령은 한-일 협의가 진행 중인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등 민감한 현안은 입에 올리지 않았다. 정부는 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사장 심규선)이 재원을 조성해 피해자에게 일본 기업을 대신해 판결금을 변제하는 ‘제3자 변제’ 방안을 추진하고 있으나, 피해자 쪽은 일본의 사과와 재원 동참을 요구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오늘은 조국을 위해 헌신한 선열들을 기억하고 우리 역사의 불행한 과거를 되새기는 한편, 미래 번영을 위해 할 일을 생각해야 하는 날”이라며 “기미독립선언의 정신을 계승해 자유, 평화, 번영의 미래를 만들어가자”고 말했다.
윤 대통령의 기념사는 일본 정부에 과거사 관련 전향적 태도를 촉구했던 역대 대통령들과는 달리 ‘미래’에 방점을 두면서 1340여자로 이례적으로 짧았다.
김의겸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보편적 협력 파트너는 (일본의) 진솔한 사과와 책임지는 자세가 전제돼야 비로소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윤 대통령이 ‘세계사의 변화에 제대로 준비하지 못해 국권을 상실했다’고 한 데 대해 김희서 정의당 수석대변인은 “국민에게 모욕감을 주는 역대 최악의 대통령 기념사”라고 논평했다.
배지현 기자
beep@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