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오전 경기도 성남시 카카오 판교 아지트 모습. 데이터센터 화재로 장애가 있었던 카카오의 각종 주요 서비스들이 속속 오류를 바로잡으면서 점차 정상을 되찾고 있다. 연합뉴스
‘카카오 서비스 먹통 사태’로 국민들의 피해는 물론 안보까지 위협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자, 윤석열 대통령과 여야 정치권이 한목소리로 카카오를 비롯한 플랫폼 사업자들에 대한 규제 손질을 예고하고 나섰다. 사실상 시장지배적 지위를 확보한 플랫폼 업체들에 대한 규제는 그간 새롭게 구축된 업계가 위축될 수 있다는 시장의 반발에 가로막혀 진지한 논의가 이뤄지지 못했지만, 카카오 먹통 사태로 환기된 여론을 동력 삼아 정치권이 관련 논의에 본격적으로 착수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인다.
윤 대통령과 여당은 플랫폼 자율·최소 규제 기조를 앞세워 왔으나, 카카오 먹통 사태 이후 다소 조정된 입장을 내놓았다. 윤 대통령은 1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출근길에 기자들에게 “이게 민간기업에서 운영하는 망이지만, 국민 입장에서 보면 국가기간통신망과 다름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만약에 독점이나 심한 과점 상태에서 시장이 왜곡되거나 더구나 이것이 국가 어떤 기반 인프라와 같은 정도를 이루고 있을 땐, 저는 국민의 이익을 위해서 당연히 제도적으로 국가가 필요한 대응을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발언이 ‘기업의 자유’와 ‘규제 혁신’을 강조해온 정부 기조와 다르다는 시각에 대해 김은혜 홍보수석은 “새 정부가 강조하는 자유는 시장에서의 공정한 경쟁과 혁신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라며 선을 그었다. 그는 또 “독과점 플랫폼기업이 시스템 리스크를 방지하기 위한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있는지 점검하는 체계가 필요한 이유”라고 덧붙였다.
대통령실은 이날 카카오 먹통 사태와 관련해 김성한 국가안보실장을 중심으로 ‘사이버안보 태스크포스(TF)’를 꾸리고 사이버안보 상황점검 회의를 열기로 했다고 밝혔다. 사이버안보점검회의에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국방부, 국가정보원, 대검찰청, 경찰청, 군사안보지원사령부 소속 주요 관계자들이 참석한다. 다만 티에프가 국가 기간통신망뿐만 아니라 민간기업 통신망으로까지 점검 범위를 확대할지 등은 정해지지 않았다.
윤석열 대통령이 17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윤 대통령이 직접 플랫폼 시장에 대한 “국가의 제도적 대응”을 언급한 만큼 그동안 지지부진했던 정치권의 관련 논의도 탄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의 주호영 원내대표는 이날 비상대책회의에서 “이번 사태로 과도한 독점을 막아야 한다는 다수 국민과 전문가들의 지적이 나옴에 따라 여야가 독과점 방지와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해 합의안을 조속히 만들겠다”고 밝혔다.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도 최고위원회 회의에서 “카카오 먹통 사태의 핵심은 기업이 비용을 줄이느라 백업 시스템을 제대로 구축하지 않은 데 있다”며 “이번 사건을 계기로 더 이상 이런 디지털 플랫폼 재난에 속수무책이 되지 않도록 신속히 입법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가장 먼저 거론되는 방안은 카카오·네이버 등의 데이터센터를 국가 재난관리 체계에 포함하는 것이다. 2018년 케이티(KT) 아현지사 건물 화재사고 뒤 ‘데이터 재난’에 대한 우려가 커지며 발의됐으나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좌절된 방송통신발전기본법 개정안이 그것이다. 2020년 3월 박선숙 당시 민생당 의원은 “방송통신 재난으로 인터넷데이터센터가 작동하지 않아 주요 데이터가 소실될 경우 기업과 소비자가 막대한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며 방송통신재난관리기본계획에 ‘주요 데이터 보호’를 추가하고 적용 대상에 기간통신사업자와 지상파·종편 방송사업자 외에 카카오·네이버 같은 ‘부가통신사업자’를 포함하는 내용의 방송통신발전기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20대 국회 막바지 법제사법위 심사 과정에서 채이배 당시 민생당 의원을 제외한 여야 의원이 모두 ‘이중규제’라며 반대해 결국 국회 임기 만료와 함께 폐기됐다.
그러나 이번 카카오 먹통 사태의 여진으로 여야가 공히 방송통신발전기본법 개정을 약속하면서, 관련 법 개정에 속도가 붙는 모습이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20대 국회에서 방송통신발전기본법 개정이 좌초됐던 사실을 언급하며 “국가 안보와 국민 생활 보호 측면에서 개별 기업에만 맡겨두긴 어렵다. 이제라도 국회가 나서서 관련 법을 정비해서 만전을 기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정부·여당은 오는 19일 카카오 먹통 사태와 관련한 당정협의를 열기로 했다. 민주당에선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간사인 조승래 의원이 이날 방송통신발전기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다만 민주당 원내지도부 관계자는 “정보통신망법과 겹치는 이중규제 문제는 입법 과정에서 다시 장애물이 될 수 있어 정보통신망법을 보완해 실질화하는 것도 방안”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야당 일각에서는 플랫폼 장애로 인한 손실에 대한 사후 구제장치를 마련하기 위해 전기통신사업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제안도 나온다. 전기통신사업법은 케이티 등 기간통신사업자의 손실 보전 의무를 명시하고 있는데, 이를 카카오 등 플랫폼 업체에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서는 ‘카카오톡과 같은 무료서비스에 손실 보전 의무를 부과해선 안 된다’는 반론도 있다.
나아가 플랫폼 기업의 불공정거래와 독점적 지위 남용을 규제하는 온라인플랫폼공정화법(온플법)을 제정하자는 목소리도 다시 나오고 있다. 문재인 정부 당시 추진됐던 온플법은 표준계약서 작성을 의무화하고 입주업체에 대한 구매 강제, 경영 간섭 등을 규제하는 것을 뼈대로 하는 대표적인 플랫폼 독과점 규제 법안이다. 다만 야당 지도부도 현재까지는 “차제에 온플법까지도 적극적으로 논의해볼 수 있겠다”는 정도의 기류여서, 향후 여론의 온도에 따라 규제의 향방이 갈릴 것으로 전망된다. 공정거래위원회 관계자 또한 “이번 카카오 사태가 어떻게, 어디까지 번져갈지 현재로선 예측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참여연대는 이날 논평을 내어 “민간 부가통신서비스가 우리 사회 전반에 확장돼 가는 동안 이를 견제하거나 제대로 관리·감독하기는커녕 무분별한 확장에 동조해온 정부의 무책임이 이번 사태를 키웠다는 점에서 정부의 온라인 플랫폼 자율규제 정책은 폐기되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배지현 기자
beep@hani.co.kr 서영지 기자
yj@hani.co.kr 이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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