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첫출발을 관통하는 열쇳말은 ‘민생’과 ‘통합’이었다. 지도부에 덧씌워진 강성 색채를 누그러뜨리고, 계파 독식에 대한 당내 우려를 잠재워 지도체제를 조기에 안착시키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이 대표는 29일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 참배를 시작으로 당대표로서 공식 일정에 돌입했다. 일부 묘역이 수해로 공사 중이어서 전직 대통령들의 묘역 참배는 생략하고 현충탑에만 참배했다. 이 대표는 참배 뒤 방명록에 “국민을 위한 숭고한 희생 잊지 않겠다”고 적었다. 이날 행사에는 당 지도부를 포함한 민주당 소속 의원 30여명이 참여했다. 이 대표는 취재진의 질의에는 일절 답변을 하지 않고 현장을 떠났다. 즉흥적인 발언으로 설화가 빚어지는 일을 사전에 차단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뒤이어 국회에서 주재한 첫번째 최고위원회의에서는 민생 위기 극복을 위한 여야 협치를 강조했다. 이 대표는 “민생 앞에 여야와 정쟁이 있을 수 있겠느냐”며 당대표 수락 연설에 이어 윤석열 대통령에게 회동을 거듭 요청했다. 지난 대선에서 맞붙었던 윤 대통령에게 곧바로 날을 세우기보단 민생을 우선시하는 야당 이미지를 부각하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다만 친이재명계(친명계) 최고위원들은 회의에서 윤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에 대한 특검을 촉구하며 대여 공세 수위를 높이는 등 정반대의 모습을 보였다. 박찬대 위원은 김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의혹 등을 겨냥해 “검찰과 경찰이 계속 봐주기 수사를 한다면 민주당은 국민의 뜻에 따라, 법에 따라 특검을 추진하겠다”고 했고, 서영교 위원도 “특별검사를 통해서 중립적이고 공정한 수사 이루어내야 한다, 국민은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경태 위원도 “김건희 특검법이 필요하다”고 거들었다. 박홍근 원내대표는 최고위 회의 뒤 기자들과 만나 “지도부의 일성들은 검찰과 경찰이 신속히 그리고 제대로 (김 여사 관련 의혹을) 규명하라는 (뜻으로) 이해해주시면 좋겠다”며 즉각적인 특검 추진에 선을 그었다.

이 대표는 이날 오후에는 당 지도부와 함께 문재인 전 대통령 부부가 거주하는 경남 양산시 평산마을을 찾았다. 이 대표에 대한 거부 정서가 강한 친문재인계를 포용하고, 당내 통합 의지를 드러내기 위한 행보다. 문 전 대통령은 이 대표와 1시간가량 진행된 비공개 환담에서 “(당에) 친명이냐, 반명이냐 이런 얘기가 있었는데, 문재인 전 대통령 지지자와 이재명 대표 지지하는 그룹이 같다”고 덕담을 했다고 동석한 박성준 대변인은 전했다. 문 전 대통령의 이러한 발언은 당내 계파 갈등을 잠재우고, 이 대표 체제에 힘을 실어주기 위한 의도로 해석된다. 앞서 이 대표가 전날 당대표 당선 직후 최고위원들과의 비공개 간담회 자리에서 “우리는 친문”이라고 말한 것과 궤를 같이하기도 한다. 문 전 대통령은 대선 경선, 전당대회 과정에서의 당내 갈등을 의식한 듯 “99%가 같은 지지를 받고 있다는 걸 공유하는데, 1% 정도 경쟁이 생겼을 때 앙금이 좀 있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갈등이 부각되는 면이 있는데, 그래도 정치는 1%를 품고 가야만 민주당이 더 확장되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박 대변인은 “오늘 자리는 민주당이라는 정당 안에서 ‘하나’라고 하는 면을 서로 공유하는 의미가 있다”며 “그런 차원에서 서로 말씀을 주고받았다”고 설명했다.

심우삼 기자 wu32@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