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신임 대표 등 더불어민주당 지도부가 29일 오전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을 찾아 현충탑에 참배한 뒤 걸어 나오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2010년 성남시장에 당선된 이래 더불어민주당 안에서 ‘변방’을 자처해온 이재명 의원이 당권을 쥐게 되면서 민주당의 주류세력도 재편될 전망이다. 이 대표와 측근들은 ‘친노(친노무현)·친문(친문재인)’으로 대표되는 당내 주류세력과의 경쟁을 “권문세도가의 후손들과 6두품의 대결”로 묘사해왔는데 이제 직접 옥새를 틀어쥐게 된 것이다. 민주당의 두 축인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에게서 어떤 정치적 유산도 상속받지 않은 이재명 체제의 민주당을 두고 ‘3기 민주당 시대가 열렸다’는 분석까지 나온다.
민주당에서 오래 당직을 맡아온 한 관계자는 29일 <한겨레>에 “김대중 전 대통령이 1987년 평민당 대선후보로 출마해 1998~2003년 집권기까지 디제이(DJ) 세력이 민주당 계열 정당의 주류였다. 이후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2년 대선에서 당선되고 문재인 전 대통령이 2022년 (윤석열 대통령에게) 정권을 넘겨주기까지 20년 동안엔 범친노와 친문이 당의 주류 구실을 해왔다”며 “변방에 있던 이재명 의원이 대표에 당선되며 당의 주류가 역사의 뒤안길로 넘어갔다”고 평가했다.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세력이 당내 권력 변방으로 밀려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이재명 체제의 등장은 단순히 구주류와 신주류의 주도권 경쟁을 넘어서는 의미를 가진다는 것이다.
이 대표와 가까운 의원 역시 “변방에서 조용히 김대중의 ‘통합의 정신’, 노무현의 ‘혁신의 정신’을 실천해온 이재명이 드디어 당의 주류가 되는 것”이라며 “20년 만에 주류가 바뀌었단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다만 당내에선 원외 젊은 당직자부터 원로급 다선의원에 이르기까지 ‘비주류 이재명’과 ‘주류 수권정당’으로 거듭난 민주당의 화학적 결합에 어려움이 있을 거란 전망이 우세하다.
한 당 관계자는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을 잇는 얼굴이 이재명이 된다는 것을 민주당 사람들은 상상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민주당이야말로 이재명 같은 비주류를 받아들이기 어려운 보수성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한 비명계 다선의원도 “이재명 의원은 그동안 이 당 정치지도자들과는 배경도 걸어온 길도 언동도 전혀 다른 모습이다. 사법 리스크를 떠나, 의견이 다른 정치인들을 설득하기보단 밀어붙이는 이 의원의 모습을 보면 당의 앞날이 불안해진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이를 의식한 듯 지난 28일 대표직 수락연설에서 “‘이재명은 비주류의 한계를 가지고 있다’라는 말도 있었다. 그러나 변방 출신 비주류 이재명을 대선후보로, 이제 민주당의 무한책임자로 만들어주신 분들이 바로 당원 동지 여러분, 민주당을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이다”라고 말했다.
장기간 지속된 주류세력 교체가 하루아침에 이뤄지진 않는다. 선거에서 이긴다고 헤게모니를 쥐는 것이 아니다. 지난해 10월 대선 경선에서 승리한 이 대표의 ‘여의도 정치’ 구력은 채 1년이 안 된다. 정치적으로 물려받은 유산이 없다는 말은 경험이나 역사를 공유하는 ‘동지’가 없다는 말과 같다. 이 대표 최측근으로 꼽히는 정진상 전 경기도 정책실장이나 김남준·김현지 보좌관 등 성남시장·경기지사 시절의 참모들은 여의도와 거리가 먼 인물들이다. 이들은 이 대표와 정치적 결정을 함께 내리는 ‘세력’이라기보단 실무그룹에 가깝다.
여의도 일각에선 대선과 지방선거, 당대표 경선을 거치는 동안 이른바 ‘친명계’가 측근 그룹인 ‘7인회’(정성호·김영진·김병욱·임종성·문진석·김남국 의원, 이규민 전 의원)를 넘어 많게는 60여명까지 불어났다고 평가하지만 부풀려졌다는 평가가 다수다.
이들은 정권교체 뒤 친문을 비롯한 주류세력이 이렇다 할 정치적 구심점을 찾지 못한 상태에서 ‘이재명’이라는 당내 유일한 대주주 주변에 모인 이익공동체의 성격이 짙다. 전당대회에서 ‘친명계’를 자처한 최고위원들 역시 대부분 이 대표를 지지한 지 오래되지 않았다. 한 민주당 의원은 “국정 운영은 물론 흥망성쇠의 경험을 집단적으로 공유한 친노·친문의 ‘화학적 결합’과 현재 친명계의 유대는 질적으로 다른 것 같다”며 “7인회 정도를 빼면 언제든지 각자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모이고 흩어질 수 있는 유동적 관계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해찬계와 박원순계, 친문계 일부 등 신친명계도 주목받는다. 이재명 대표는 초선들의 지지세에 견줘 당내 다선의원들과의 친분이나 인연이 적다. 친노·친문계인 윤후덕 의원(3선)과 손학규계였던 조정식 의원(5선), 민주평화국민연대(민평련)의 우원식 의원(4선), 원내대표를 맡고 있는 박원순계의 박홍근 의원(3선) 등이 가까운 정도에 속한다. 사무총장·정책위의장 등 3선 중진 이상에 걸맞은 당직 인선을 두고 이 대표가 고민에 빠진 것도 이 때문이다.
이재명과 친명계 세력은 민주당의 새 주류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까. 당내 전망은 엇갈린다.
당장은 구주류인 범친문계의 구심점이 없어 지난 전당대회에서 이 대표에 대한 저항의 목소리가 약했지만 총선이 1년여 앞으로 다가오는 내년쯤엔 저항이 만만찮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친문·친명계와 두루 가까운 한 의원은 “이 대표를 중심으로 하는 당내 비주류세력이 친노·친문 구주류세력과 하나가 되지 않으면 열린우리당 때처럼 공멸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이 대표와 가까운 한 관계자는 “민주당은 국회의원만의 정당이 아니다”라며 “이 대표는 당원의 지지로 당선된 만큼 노 전 대통령이 꿈꿨던 당원 직접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친명계에서도 이런 접근에 대한 우려가 있다.
이 대표의 최종 목표는 당대표가 아닌 다음 대선이기 때문이다. 한 친명계 의원은 “이 대표가 역할을 잘 수행해 당을 보듬고 간다면, 다음(2024년) 총선에선 저절로 ‘이재명 사람들’이 선택받지 않겠냐”며 “그러면 총선을 거치며 자연스레 이재명이 주류로 자리잡고 대선까지 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심우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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