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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정치일반

탄핵 전으로 돌아간 국정시계…이미 죽은 시대의 부활

등록 2022-08-16 05:00수정 2022-08-16 18:11

[윤석열 대통령 취임 100일] 신진욱 교수 기고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5월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잔디마당에서 열린 제20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5월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잔디마당에서 열린 제20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이제 곧 윤석열 정부 출범 100일째다.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과 수감으로 한국 정치의 한 시대가 종언을 고한 줄 알았더니, 수년이 지나 이미 죽은 시대가 되살아난 듯한 느낌이다. 탄핵된 정부의 마지막 장면에서 우리가 보았던 모습들이 마치 정지화면 풀리듯 재생되고 있기 때문이다. 측근 정치, 비선 논란, 권력과 민심의 괴리, 총체적 여론 악화 등이 모두 그러하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대통령 국정수행 긍정 평가율은 20%대에 불과하다. 부정 평가가 70%에 달할 뿐 아니라, ‘매우’ 잘못하고 있다는 강한 부정이 대다수다. 이념, 세대, 지역을 넘는 범국민적 현상이다. 진보·중도 성향 시민들은 물론, 보수적 시민들의 마음도 떠나고 있다. 노인층을 제외한 모든 연령대에 공통되며, 지역적으로도 그러해서 부산·울산·경남도 부정 평가가 60%를 넘는다.

역대 정부들과 비교하면 이는 초유의 사태다. 대통령 취임 100일째에 김영삼·문재인 대통령의 긍정 평가율은 80% 내외였고, 노태우·노무현·박근혜 대통령도 40~50%대는 되었다. 이명박 대통령만이 20%대였지만, 이는 취임 직후 대규모 촛불집회 등 대형 사건의 결과였다. 하지만 현 정부는 그 존재만으로 국민의 신뢰를 잃고 있다.

그래픽_스프레드팀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국민들의 부정적 평가의 이유는 여러 조사에서 무능, 독단, 인사 문제로 요약된다. 이 중 무능이 첫번째로 꼽히는 이유인데, 이는 단지 정책 역량의 문제가 아니다. 가장 근본적인 것은 정치지도자로서의 자세와 준비됨이 아닐까 한다. 대중들은 지금 통치자들이 이 나라 지도자로서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 지배 정당성의 중핵에 해당하는 부분이 문제시되고 있는 것이다.

공적 책임의 부재가 그 대표적 측면이다. 폭우로 나라가 비상인데 대통령은 침수되는 집들을 차창 밖으로 보며 퇴근했다. 여당 의원들은 수해 현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농담을 주고받고, 자기들끼리 권력투쟁에 여념이 없다. 민중들은 이런 광경에서 정치의 타락을 보며 분노한다. 폭우 중 트위터에 ‘#무정부상태’라는 해시태그가 확산된 것은 실은 무서운 일이다.

국가의 사유화와 사사화(私事化)는 통치자의 자격 없음을 보게 되는 또 다른 측면이다. 김건희 여사의 논문 표절은 ‘문제없음’으로 종결됐고, 정권 실세의 가족과 지인들의 사적 채용 논란이 끊이지 않으며, ‘건진법사’같이 공적 지위가 없는 인물의 이름이 자꾸만 국정에 오르내린다. 새 정부의 가치로 표방했던 ‘공정’은 이미 죽은 언어가 되어버려 통치의 권위가 서지 않고 있다.

윤석열 정부에서 정책이 길을 잃은 원인은 이 같은 사인(私人) 정치가 독점적 권력구조를 구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 고용, 복지, 교육, 환경, 외교 등 각 분야에서 출중한 안목과 경륜을 갖춘 인물들은 거버넌스에서 배제되어 있다. 대통령과 검찰, 친위세력으로 구성된 좁은 통치그룹이 전권을 쥐고 있으니, 이들이 한국 사회의 복합적 현실을 감당할 수 없는 게 당연하다.

그래픽_스프레드팀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인사는 그러므로 문제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다. 많은 장관 후보자가 논문 표절, 가족 특혜, 부정부패, 직장 갑질, 성희롱, 정책 혼선 등으로 낙마하고 사임했다. 소수가 폐쇄된 권력의 성을 쌓고 있기 때문에 벌어진 일들이다. 대통령과 측근들, 대통령실의 인사 관련 기획관과 비서관이 모두 검찰 출신이다. 검찰 공화국은 비민주적일 뿐 아니라, 공화국을 운영할 능력을 의심받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지금의 정치적 위기를 타개하고 성공한 정부가 되기 위해서는, 대통령실 인사 개편이나 민생 챙기기 이벤트 같은 피상적 조처가 아니라 거버넌스의 실질적 변화가 있어야 한다. 지금의 폐쇄된 권력 구조를 개방하여 각계의 유능한 인물들을 참여시키고 사회와의 소통을 확대해야 한다.

그 반대의 불행한 시나리오는 지금 정치의 사사화, 사법화, 독점화가 향후 소수 기득권 집단을 위한 지배체제의 수립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대통령을 정점으로 한 권력의 위계 구조가 정비된 후에는 검찰, 경찰, 감사원, 국세청, 정보기관 등 핵심 권력기구들을 동원한 억압적 통치체제로 나아갈 위험이 있다.

지난 대우조선해양 하청업체 비정규 노동자 파업 때 정부가 어떠한 조정 노력이나 노동인권에의 관심도 없이 경찰특공대 투입을 예고하며 겁박했던 장면은 불길한 암시였다. 또한 정부는 다주택자와 고소득자에게 가장 큰 혜택을 주는 감세정책, 기업의 이윤과 편익을 우선시하는 노동정책 등을 예고했다. 법과 국가권력으로 무장한 계급 지배의 시대가 오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게 된다.

어쩌면 우리는 앞으로 이러한 윤석열 정부와의 싸움을 피할 수 없는 상황에 계속 직면할지 모른다. 하지만 또한 우리가 간과해선 안 되는 것은 윤석열 후보를 대통령으로 선출한 것은 투표자의 절반에 달하는 유권자들이었고, 윤 후보의 무능이 무수히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당선을 막을 수 없을 만큼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실망과 반감이 컸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조롱과 분노로 세월을 보낼 수 없다. 국민의힘이 지난 5년 동안 그러했듯이, 민주당 역시 아무런 반성과 혁신 없이 윤석열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를 영양제로 삼아 생명을 연장하게 해선 안 된다. 구시대적 사고와 관행에 갇힌 모든 집단의 권위와 광채는 죽은 지 오래다. 새 시대의 정신을 담지한 주체들로 새판을 짜지 않으면 한국 정치의 미래는 없다.

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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