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당선자 시절이던 지난달 13일 ‘경청식탁, 지혜를 구합니다’ 행사에서 각계 원로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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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시절 한 예능 방송에서 대통령에 당선되면 “혼밥 하지 않겠다”, “뒤에 숨지 않겠다” 이 두 가지를 반드시 지키겠다고 했다. 실제로 ‘식사 정치’라는 이름이 붙을 정도로 윤 대통령은 부지런히 ‘함께’ 먹는다. 대식가이며 미식가, 주당으로 유명하다는 그는 대통령 당선이 확정된 3월10일부터 늘 공개 점심 식사를 이어왔다. 일부 언론에서는 그가 누구랑 어디에서 뭘 먹고 다니는지 열심히 보도한다. 김치찌개를 퍼줬다는 ‘미담’부터 지난 두달간 그가 꼬리곰탕, 짬뽕, 피자, 육개장, 김치찌개, 수제비, 양념갈비, 샌드위치, 냉면, 후식으로 민트초코를 먹었다는 사실까지 세세하게 전한다.
물론 정치인들은 공적 인물로서 조찬 회동에서 한밤의 만찬까지 여러 사람들과 함께 식탁에 앉는다. 윤 대통령이 과거에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와의 갈등을 봉합하는 자리는 울산 만찬 회동이었고, 안철수 대통령직인수위원장과 새 정부 내각 인선 과정에서 갈등을 풀기 위해서도 만찬 회동을 했다.
정치인이 아니어도 사람들은 흔히 함께 식사를 하며 친분을 두텁게 만들거나 불편한 관계를 해소한다. 식탁은 축소된 공동체다. 함께 식사하며 정체성을 구체화하고 정보를 공유한다. 그런 면에서 한 나라의 대통령이 누구와 어떤 식사를 하는지는 더욱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 하더라도, 대통령에 당선되자마자 식사 메뉴가 언론에 과도하게 노출되는 현상은 의아하다. 언론은 그가 좋아하는 술이 무엇인지 친절하게 알려주고, 어느 식당에서는 돼지고기 중에서도 특히 항정살이 맛있다는 말을 했다고도 알려준다. 게다가 윤 대통령은 먹기만 하는 게 아니다. 지난해 9월 에스비에스(SBS) 예능 프로그램 <집사부일체>에서 그가 보여준 요리 실력은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먹는 것에 진심’인 모습을 보여줬다. 그가 만든 두툼한 달걀말이에 감탄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며, 당선 직후 곧장 “당선인 ‘집밥’ 솜씨”는 더욱 언론의 조명을 받았다. 기자실을 방문해서, 취임하면 기자들에게 김치찌개를 끓여준다는 둥의 이야기는 친근한 이미지를 만들기에는 좋다. 정치인 윤석열이 아니라 인간 윤석열의 호감도를 높이기에 요리만큼 좋은 소재도 없다. 그의 식사 정치는 먹는 이야기를 통해 오히려 정치적 문제를 가리는 효과를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정치적 식사’다.
대통령으로서 첫번째 식사 정치 자리인 20대 대통령 취임식 만찬에는 4대 그룹 총수들이 초대받았다. 문재인 전 대통령도 취임 이후 주요 그룹 총수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새 정부의 경제 철학을 나누는 만찬 자리를 만들었다. 만찬은 기본적으로 환대의 자리다. 실은 어느 정권이든 권력의 만찬장에는 비슷한 사람들이 모인다. 소외받는 이들을 위한 만찬은 없다.
수많은 만찬이 펼쳐지는 동안 한쪽에서는 먹지 않는 식탁이 빈번히 차려졌다. 지난 1월 전국택배노조 우체국본부 조합원들이 단식을 했으며, 4월엔 보름간 발달장애인 부모들의 단식 농성이 있었다. 현재는 제빵사인 임종린 민주노총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조 파리바게뜨 지회장이 서울 서초구 양재동 에스피씨(SPC) 사옥 앞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투쟁하는 두 활동가 미류와 종걸이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 평등텐트촌을 만들고 단식 중이다. 이처럼 올해 단 몇달 사이에만 다양한 이유로 단식 농성이 있었고, 여전히 진행 중이다. 활동가의 단식은 가장 격렬한 활동이다. 단식을 하는 사람들이야말로 누구보다 관계를 갈망할 것이다. 이 넓은 세상에서 많은 사람들의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해 제 몸을 줄이는 투쟁을 한다. 단식은 가장 사회적인 식사 행위다.
고개를 돌려 시선을 두어야 할 식사 정치는 권력의 끈끈한 동맹을 보여주는 만찬장이 아니라, 권력과 싸우는 바로 이 단식 농성장에 있다. 만찬장에 초대받은 ‘귀빈’들이 아니라, 먹지 않는 사람들이 차린 ‘평등 밥상’에 이 사회의 현안이 있다. 빵을 만드는 사람이 노조 탄압에 맞서, 제빵사들의 노동환경 개선을 위해 단식하는 현실이야말로 식사 정치가 무엇인지 보여준다.
국회 앞 차별금지법 동조 단식에 날마다 수십명의 시민이 참여한다. 전국 곳곳에서 귀빈보다 귀한 발걸음이 평등을 찾아 국회 앞으로 모인다. 염치없는 식욕이 부끄러운 자들이 모여든다. 소통은 이곳에 있다. 만찬장의 대부분을 채우는 중년 남성들의 얼굴과 달리 동조 단식을 위해 모인 사람들의 얼굴은 여성, 이주민, 장애인 등 다양하다.
국회 사무처는 취임식에 맞춰 차별금지법제정연대에 단식농성장을 철거하라는 통보를 내렸지만, 평등텐트를 지키려는 시민들의 힘으로 간신히 철거는 막았다. 그러나 여전히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해서는 아무 말이 없다. 예능 방송에 나와 요리 실력까지 뽐내는 ‘미식가 대통령’이 등장했으나 평등 밥상에는 앉지 않았다.
정치권은 사회적 합의를 운운하는데, 시민들은 벌써부터 합의했다. 한국갤럽이 지난 3~4일 전국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해 벌인 여론조사에 따르면 차별금지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57%였다. 여기서 어떻게 더 합의하나. 각종 여론조사에서 50%를 밑도는 청와대 용산 이전에 대한 찬성 여론보다 훨씬 높다. 시민들은 이미 합의했고 이제 정치가 할 일만 남았다. 정상(頂上, 최고 수뇌) 권력에 의해 차별은 제도가 되고, 정상(正常, 제대로인 상태) 권력에 의해 차별은 문화가 된다. 두 ‘정상’은 ‘비정상’으로 규정된 존재들의 인권을 먹어치우며 권력의 양분을 얻는다.
식탁 교제가 가지는 정치적 의미를 가장 잘 활용한 사람은 아마도 예수일 것이다. 예수는 공적인 식탁 교제를 통해 모든 피조물이 공적인 삶을 회복할 수 있게 만들었다. 예수의 식탁은 접대의 자리가 아니라 배척당하고 소외받았던 이들이 예수와 식사를 하며 한 사회에 속하는 존재로 인정받고 존엄함을 확인하는 자리, 곧 성원권을 얻는 기회였다. 환대의 식사는 그렇기에 정치적 행위다.
‘혼밥 하지 않겠다’는 새 대통령의 철학은 환대의 식사가 가지는 정치적 의미를 매우 잘 알고 있음을 뜻한다. 지금 식탁에서 소외된 이들이 누구인가. 아직까지 함께 밥 먹지 않은 이들이 누구인지 생각해볼 때다. 굶는 사람들의 밥상이 식사 정치의 최전선이다.
예술사회학자. <여자를 위해 대신 생각해줄 필요는 없다>(2020), <타락한 저항>(2019) 등의 저자. 사회의 구석구석을 비평합니다. 아름다우면서도 정확한 비평의 가능성을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