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현(사진 왼쪽)의 용기와 변영주의 위로가 없었다면 이번 대선은 끝까지 얼마나 황폐했을까. 포연이 걷히고 난 자리에 그래도 폐허만 남은 게 아니라는 희망을 가져본다. 정의당과 심상정(오른쪽)이 없었다면 단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으리라는 점에서 깊은 고마움을 느낀다. 가장 정확하고 따뜻하게 부축해준 손길이었다.
깜깜이 기간이던 마지막 일주일, 내 주변의 40~50대와 자식뻘인 20대 여성들의 표심이 무섭게 모이는 걸 피부로 느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하지 않고 사교 범위도 넓지 않은 내가 느낄 정도니 그 움직임이 얼마나 거대했을지 짐작이 간다. 엔(n)번방의 실체를 세상에 알린 추적단 불꽃의 ‘불’ 박지현의 이재명 지지 연설은 그 용틀임의 화룡점정이었다. 그가 마스크를 벗어버렸을 때 마구 흔들린 사람은 영화감독 변영주만이 아니다. 언니들이 엄마들이 모조리 흔들렸다.
한 친구는 흔들리다 결국 이재명에게로 갔다. “표는 주지만 마음은 주는 게 아니야”라고 외쳤다. 다른 친구는 “(정치와 남자에게) 그렇게 당하고도 아직 정신을 못 차렸냐”며 “민주당은 더 혼나야 한다”고 했다. 또 다른 친구는 “자기가 한 말도 기억 못하는 윤석열을 믿어보겠다”고 했다. “혹시 기억나도 제발 약속은 지키지 말아줬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10대인 내 아이는 3·1절에 이어 선거일까지 연속으로 ‘주중 빨간 날’이라며 좋아라 했다. 주4일근무제를 온몸으로 지지하며 “엄마, 2.4%도 엄청난 거지?”라고 했다. 그래, 네가 이겼다. 정신 승리 절대 강자.
8%포인트 이상 큰 차로 이기리라고 의기양양하던 윤석열 캠프의 전망을 실제 득표율 격차에서는 0.8%포인트도 안 되는 0.73%포인트까지 끌어내린 건 이대로 ‘혐오가 이기게 둘 수 없다’고 마음먹은 이들 덕분이다. 자신의 정치적 효능감을 과신하는 2030 남성들과 그들을 ‘워너비’ 하는 무리의 목소리가 과대 대표되는 상황에 문제의식을 가진 이들이다. 그리하여 윤석열은 당선됐으나, 젊은 여성과 남성을 편 가르는 기획을 공공연히 한 이준석 식의 ‘그 고약한 전략’은 졌다. 선거일 전날인 3월8일 여성의 날에 아무 맥락도 설명도 없이 그간 내놨던 반여성적 한 줄 공약을 또다시 줄줄이 내세우며 갈라치기를 굳히려던 ‘그 나쁜 정치’ 말이다. 낄낄거림이 배경음으로 깔린 듯한 모욕을 느낀 이가 적잖다.
이런 고약하고 나쁜 정치를 막기 위해 ‘박지현들’이 미래를 갈아 넣었다. 상당수는 심상정에게 줄 표였을 것이다. 심상정은 최후까지 이재명을 ‘견인’해줬다. 윤석열과 다른 태도를 보이도록 이끌었다. 심상정과 정의당이 기준점을 잡아준 덕에 선거 막판 그리 ‘쫄리는’ 와중에도 민주당은 멀쩡하게 정치개혁 방안을 내놓을 수 있었다. 이재명은 심상정 때문에 지지 않았다. 심상정 덕에 그나마 적게 졌다. 심상정은 결과적으로 팔다리 어깨 골반까지 다 떼어준 꼴이 됐다. 그렇게 얻은 2.4%는 짜디짠 득표율이다. 세상의 기본 농도를 위한 최소치다.
이재명이 대선 후보 TV토론에서 페미니즘을 놓고 윤석열을 가르칠 수 있었던 이유는 그 자리에 심상정이라는 뒷배가 있었기 때문이다. 정의당이 페미니즘 정당이라고 하는 이들에게 되묻고 싶다. 페미니즘 정당이 아니어야 할 이유가 있는가.
성평등이라는 거대한 해일이 몰려오는데 당장 그럴듯하고 목소리만 큰 이들의 허세라는 조개껍데기를 줍는 일이 얼마나 위험하고 부질없는지, 민주당은 이제 깨닫겠는가. 결선투표제가 얼마나 필요한지 알겠는가. 다당제가 자리잡았다면, 최소한 위성정당으로 훼방만이라도 놓지 않았다면, 정책적으로 더 가까운 이들과의 연합이 선거에서 얼마나 ‘실용적으로’ 작용할 수 있을지 절감하겠는가.
민주당은 172석의 값어치를 이제부터 증명하길 바란다. 세상에 도움 되는 일을 하면 된다. 남 탓 그만하고, 정치개혁의 약속을 지키면 된다. 정의당은 짠내를 잘 지켜내길 바란다. 정의당에 표를 안 준 친구는 정의당 관련 후원 계좌를 여럿 보내왔다. 마음은 돈으로 증명하는 거란다. 미안하다며 후불이란다.
김소희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