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정치 정치일반

‘불꽃’ 박지현의 용기에 혐오가 졌다

등록 2022-03-13 09:37수정 2022-03-13 11:52

[한겨레21] 박지현의 용기에 희망을, 심상정의 버팀에 고마움을
공동취재사진, 연합뉴스
공동취재사진, 연합뉴스

박지현(사진 왼쪽)의 용기와 변영주의 위로가 없었다면 이번 대선은 끝까지 얼마나 황폐했을까. 포연이 걷히고 난 자리에 그래도 폐허만 남은 게 아니라는 희망을 가져본다. 정의당과 심상정(오른쪽)이 없었다면 단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으리라는 점에서 깊은 고마움을 느낀다. 가장 정확하고 따뜻하게 부축해준 손길이었다.

깜깜이 기간이던 마지막 일주일, 내 주변의 40~50대와 자식뻘인 20대 여성들의 표심이 무섭게 모이는 걸 피부로 느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하지 않고 사교 범위도 넓지 않은 내가 느낄 정도니 그 움직임이 얼마나 거대했을지 짐작이 간다. 엔(n)번방의 실체를 세상에 알린 추적단 불꽃의 ‘불’ 박지현의 이재명 지지 연설은 그 용틀임의 화룡점정이었다. 그가 마스크를 벗어버렸을 때 마구 흔들린 사람은 영화감독 변영주만이 아니다. 언니들이 엄마들이 모조리 흔들렸다.

한 친구는 흔들리다 결국 이재명에게로 갔다. “표는 주지만 마음은 주는 게 아니야”라고 외쳤다. 다른 친구는 “(정치와 남자에게) 그렇게 당하고도 아직 정신을 못 차렸냐”며 “민주당은 더 혼나야 한다”고 했다. 또 다른 친구는 “자기가 한 말도 기억 못하는 윤석열을 믿어보겠다”고 했다. “혹시 기억나도 제발 약속은 지키지 말아줬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10대인 내 아이는 3·1절에 이어 선거일까지 연속으로 ‘주중 빨간 날’이라며 좋아라 했다. 주4일근무제를 온몸으로 지지하며 “엄마, 2.4%도 엄청난 거지?”라고 했다. 그래, 네가 이겼다. 정신 승리 절대 강자.

8%포인트 이상 큰 차로 이기리라고 의기양양하던 윤석열 캠프의 전망을 실제 득표율 격차에서는 0.8%포인트도 안 되는 0.73%포인트까지 끌어내린 건 이대로 ‘혐오가 이기게 둘 수 없다’고 마음먹은 이들 덕분이다. 자신의 정치적 효능감을 과신하는 2030 남성들과 그들을 ‘워너비’ 하는 무리의 목소리가 과대 대표되는 상황에 문제의식을 가진 이들이다. 그리하여 윤석열은 당선됐으나, 젊은 여성과 남성을 편 가르는 기획을 공공연히 한 이준석 식의 ‘그 고약한 전략’은 졌다. 선거일 전날인 3월8일 여성의 날에 아무 맥락도 설명도 없이 그간 내놨던 반여성적 한 줄 공약을 또다시 줄줄이 내세우며 갈라치기를 굳히려던 ‘그 나쁜 정치’ 말이다. 낄낄거림이 배경음으로 깔린 듯한 모욕을 느낀 이가 적잖다.

이런 고약하고 나쁜 정치를 막기 위해 ‘박지현들’이 미래를 갈아 넣었다. 상당수는 심상정에게 줄 표였을 것이다. 심상정은 최후까지 이재명을 ‘견인’해줬다. 윤석열과 다른 태도를 보이도록 이끌었다. 심상정과 정의당이 기준점을 잡아준 덕에 선거 막판 그리 ‘쫄리는’ 와중에도 민주당은 멀쩡하게 정치개혁 방안을 내놓을 수 있었다. 이재명은 심상정 때문에 지지 않았다. 심상정 덕에 그나마 적게 졌다. 심상정은 결과적으로 팔다리 어깨 골반까지 다 떼어준 꼴이 됐다. 그렇게 얻은 2.4%는 짜디짠 득표율이다. 세상의 기본 농도를 위한 최소치다.

이재명이 대선 후보 TV토론에서 페미니즘을 놓고 윤석열을 가르칠 수 있었던 이유는 그 자리에 심상정이라는 뒷배가 있었기 때문이다. 정의당이 페미니즘 정당이라고 하는 이들에게 되묻고 싶다. 페미니즘 정당이 아니어야 할 이유가 있는가.

성평등이라는 거대한 해일이 몰려오는데 당장 그럴듯하고 목소리만 큰 이들의 허세라는 조개껍데기를 줍는 일이 얼마나 위험하고 부질없는지, 민주당은 이제 깨닫겠는가. 결선투표제가 얼마나 필요한지 알겠는가. 다당제가 자리잡았다면, 최소한 위성정당으로 훼방만이라도 놓지 않았다면, 정책적으로 더 가까운 이들과의 연합이 선거에서 얼마나 ‘실용적으로’ 작용할 수 있을지 절감하겠는가.

민주당은 172석의 값어치를 이제부터 증명하길 바란다. 세상에 도움 되는 일을 하면 된다. 남 탓 그만하고, 정치개혁의 약속을 지키면 된다. 정의당은 짠내를 잘 지켜내길 바란다. 정의당에 표를 안 준 친구는 정의당 관련 후원 계좌를 여럿 보내왔다. 마음은 돈으로 증명하는 거란다. 미안하다며 후불이란다.

김소희 칼럼니스트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정치 많이 보는 기사

3시간도 못 버틴 ‘윤석열 친위 비상계엄’…‘충암파’ 사전 모의 규명해야 1.

3시간도 못 버틴 ‘윤석열 친위 비상계엄’…‘충암파’ 사전 모의 규명해야

국힘 의원들도 격앙… “추경호, 국회 못가게 당사 오라고 문자” 2.

국힘 의원들도 격앙… “추경호, 국회 못가게 당사 오라고 문자”

계엄령 6시간 만에…윤 대통령 “국무회의 열어 해제하겠다” [영상] 3.

계엄령 6시간 만에…윤 대통령 “국무회의 열어 해제하겠다” [영상]

한동훈 “참담한 상황, 대통령이 설명하고 국방장관 해임해야” 4.

한동훈 “참담한 상황, 대통령이 설명하고 국방장관 해임해야”

절차도 어긴 계엄 선포…군 당국, 사태 파악에 ‘허둥지둥’ 5.

절차도 어긴 계엄 선포…군 당국, 사태 파악에 ‘허둥지둥’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