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인천시 연수구 송도2동행정복지센터 지하 주차장에 마련된 확진자·격리자 임시 사전투표소 밖으로 투표 대기 행렬이 길게 이어지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5일 이뤄진 코로나19 확진·격리자 사전투표에 대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의 총체적 부실 사태가 대선 막판 뜨거운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부실한 임시투표함 관리 문제가 ‘투표용지 누락’ 가능성에 대한 의혹으로 이어지면서, 선거 자체에 대한 신뢰도를 추락시키고 부정선거나 불복 논란의 빌미를 제공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선관위는 6일 ‘코로나19 확진 선거인의 사전투표 관리에 관한 입장’을 내어 “불편을 드려 송구하다”면서도 “절대 부정의 소지는 있을 수 없다”고 강조했으나 오는 9일 본 투표 날 대응책에 대해서는 “논의하고 있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6일 선관위와 여야 정치권의 설명 등을 종합하면, 사전투표 마지막날인 지난 5일 오후 5시부터 시행된 코로나19 확진·격리자의 투표 과정에서 부실 관리 행태가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했다. 특히 일부 투표소에서 확진·격리자들의 투표용지를 폐상자나 쇼핑백, 플라스틱 바구니, 쓰레기봉투 등으로 만든 ‘임시 투표함’에 담았다가 투표사무원이 투표함에 ‘대리 투입’하도록 한 것은 뜨거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쓰레기봉투로 만든 ‘임시 투표함’에 투표용지 ‘대리 투입’
‘하나의 선거에 관한 투표에 있어서 투표구마다 선거구별로 동시에 2개의 투표함을 사용할 수 없다’는 ‘공직선거법 151조2항’에 따라 확진·격리자용 추가 투표함을 마련할 수 없는 데 따른 임시방편이었다. 하지만 이런 사실이 사전에 제대로 홍보되지 않은데다 임시 투표함 설치·관리가 저마다 제각각 부실하게 이뤄지면서 당일 현장에서는 혼선이 빚어졌다. 부산 강서구 한 투표소에선 선관위 관계자가 확진·격리자가 기표한 용지를 속이 훤히 비치는 비닐 봉투에 담아달라고 요구하면서 유권자들이 반발하는 소란이 빚어졌고, 서울 은평구·부산 연제구의 사전투표장에선 확진·격리 상태인 유권자들에게 이미 기표가 된 투표용지가 배부되는 일까지 발생했다. 유권자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투표 사무원들이 투표용지가 담긴 봉투를 바구니나 종이상자, 쇼핑백 등에 담아 옮기는 사진 등을 올리며 조작 및 투표용지 누락 가능성을 제기했다.
임시 투표함 논란을 제외하고도, 인천 동인천동 한 사전투표소에서는 사무원이 코로나19 확진자 사전투표 중 관내 투표자와 관외 투표자 용지를 구분하지 않아 결국 모두 폐기 처분하고 재투표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또 서울 광진구의 한 확진·격리자용 투표소에서는 야외에 설치되는 바람에 강풍을 견디다 못한 일부 유권자들이 발길을 돌리는 상황이 연출되는가 하면, 경기 성남시 분당구 한 투표소에선 확진자가 장시간 대기하다가 쓰러지는 일까지 발생했다고 한다.
“미흡한 예측·안일한 준비가 부른 참사” 비판
이번 사전투표의 총체적 난맥상이 선관위의 미흡한 상황 예측과 안일한 준비가 부른 예고된 참사였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동시에 2개의 투표함을 사용할 수 없도록 한 법 조항이 있는 상황을 미리 감안해, 사전투표 당시 일반 투표와 확진·격리자 투표를 분리하거나 애초 확진·격리자를 위한 별도 투표소를 마련하는 등 대책을 세웠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이날 <한겨레>가 확인한 ‘코로나19 확진자 등 사전투표 절차’ 선관위 내부 문건은 고작 5쪽에 불과해, 임시 투표함 설치에 관한 규정이나 보안 및 관리 방식에 대해 충분한 설명도 이뤄지지 않았다. 특히 투표함 관련 내용은 “격리자 등이 제출한 봉투는 참관인이 볼 수 있는 바구니·상자 등에 담아 지정된 참관인과 함께 사전투표소로 이동해 참관인 참관하에 관내는 투표지가 공개되지 않도록 유의해 임시 기표소용 봉투에서 꺼내 관내 사전투표함에 투입, 관외는 관외 사전투표함에 회송용 봉투를 투입” 등 7줄에 불과했다. 특히 마지막 줄에는 “투표 중이거나 대기 중인 격리자 등 인원에 따라 (투표용지) 일정 수량을 모아서 투입 가능”이라고 애매하게 적시돼있다.
정치권에서도 이를 놓고 질타가 쏟아졌다. 권영세 국민의힘 선거대책본부장은 이날 선대본부 회의에서 “어제 마무리된 사전투표는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실시된 선거가 맞는지 의구심이 들 정도로 엉망진창이었다”며 “초등학교 반장 선거도 이렇게 허술하게 하지 않는다”고 질타했다. 이낙연 민주당 총괄선대위원장은 페이스북에서 “확진자와 격리자가 급증해 어려움이 있었겠지만, 그것은 누구나 알고 있었잖느냐”며 “국민이 납득할 만한 해명과 사과를 해야 옳다”고 촉구했다. 오승재 정의당 대변인은 논평을 내어 “확진자 사전투표 관리 부실은 국민의 참정권을 침해하고 공정선거를 훼손한 행위로 강력히 규탄한다”며 “이미 선거 관리의 허점을 드러낸 만큼, 우려를 완전히 해소할 수 있도록 투표 매뉴얼을 정비해 공개적으로 밝힐 것을 촉구한다”고 했다.
선관위는 이날 발표한 입장문에서 “역대 최고 사전투표율을 기록할 만큼 높은 참여 열기와 투표 관리 인력 및 투표소 시설의 제약 등으로 인해 확진 선거인의 사전투표 관리에 미흡함이 있었다”며 “이번 사안을 엄중히 인식하고 있으며, 드러난 문제점을 정확히 파악하고 면밀하게 검토해 선거일에는 국민이 안심하고 투표할 수 있도록 조속히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여야는 이날 오후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를 긴급 소집해 박찬진 선관위 사무차장을 대상으로 9일 본 투표일 대책 등을 질의한 뒤, 코로나19 확진·격리자들도 기표한 용지를 스스로 투표함에 넣을 수 있는 방안을 찾는 게 필요하다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또 선거 업무 종사자들의 숫자를 늘려 투표가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하는 보완책도 요구했다. 선관위는 7일 오전 긴급회의를 열어 대책을 마련해 결과를 국회에 보고하기로 했다.
김미나 기자
mina@hani.co.kr 최하얀 기자
chy@hani.co.kr 이승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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