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가 전국 보육원과 임시보호시설 등 아동복지시설 778곳을 대상으로 인권 및 운영 실태 관련 전수조사를 실시한 결과 38곳에서 230명의 학대 또는 학대 의심 사례가 발견됐다. 복지부는 지난해 6월 학대받은 어린이를 보호하는 경북 포항의 한 시설에서 10살 어린이를 수개월 동안 독방에 감금하는 등 학대한 사실이 알려지자 첫 전수조사에 나섰다.
강선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9일 보건복지부에서 받은 ‘아동복지시설 거주 아동 인권 및 운영 실태 전수점검 결과 보고’를 보면, 복지부는 지난해 7~12월 전국 아동복지시설 778곳에서 보호 중인 어린이 1만3094명을 대상으로 전수조사를 벌였다. 복지부 점검 결과, 5곳 중 1곳꼴인 143개 시설에서 300건의 지적 사항이 나왔다. 약물 관리나 약물복용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 시설이 118곳으로 가장 많았다.
특히 복지부는 이 가운데 아동학대가 벌어진 8곳에 대해 행정처분을 내렸고 학대 의심이 드는 30곳에 대해선 수사를 의뢰했다. 조사 결과, 이들 시설 38곳에서 학대를 받은 것으로 의심되는 어린이는 230명에 이르렀다. 고성·욕설이나 다른 시설로 보낸다는 협박, 오랜 시간 한 장소에 머물러 있게 하는 등의 정서 학대를 당한 어린이가 136명(59.1%)으로 가장 많았고, 회초리, 머리 때리기, 체벌 등의 신체 학대는 61명(26.5%)이었다. 신체·정서 학대를 모두 받은 것으로 의심되는 어린이는 30명(13%)이나 됐다. 아이의 가슴을 만지거나 성기를 건드리는 등 성 학대를 당한 어린이는 3명(1.3%)으로 확인됐다.
피해 연령은 초등학생이 94명(40.9%)으로 가장 많았고, 중학생 48명(20.9%), 미취학 29명(12.6%), 고등학생 17명(7.4%), 기타 42명(18.3%) 순이었다. 학대 행위자는 시설장·종사자가 218명(94.8%)으로 대부분이었다.
또 조사 대상 아동의 10% 가까운 1244명이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진료를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이 가운데는 직원의 설명만으로 진단이 내려지거나 약물을 처방받은 경우(20명)도 있었다.
복지부는 아동학대 의심으로 수사 의뢰한 30곳 가운데 15곳은 혐의 없음 또는 공소권 없음으로 처리됐고, 15개 시설은 경찰 및 검찰 조사가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수사 결과에 따라 행정처분이 이뤄질 예정이다. 또 복지부는 “코로나19로 시설에 입소한 어린이와 생활하는 시간이 많아짐에 따라 직원들의 스트레스가 학대로 이어질 수 있다”며 “해당 지역 내 정신건강복지센터와 연계해 아동복지시설 종사자에 대한 스트레스를 측정하고 관리해나가겠다”고 밝혔다.
강선우 의원은 <한겨레>에 “보호를 받아야 할 공간에서 오히려 아이들이 학대에 노출되고 있다는 것은 아주 심각한 문제”라며 “향후 정부의 실태조사를 정례화하고, 또 학대 예방 차원에서 해당 시설 종사자들에게 심리적 지원이 이뤄질 수 있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강 의원은 10일 △아동복지시설 거주 아동 인권 및 운영 실태 전수조사 및 평가등급 등 결과 공표 △아동복지시설 종사자에 대한 심리 지원 법적 근거 마련 조항 등을 담은 아동복지법 개정안을 발의할 예정이다.
서영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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