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균 국무총리가 1일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지난해 9월에 이어 넉 달만에 정세균 국무총리를 인터뷰했습니다. 내년 3월9일 20대 대통령 선거가 1년 남짓 남은 상황에서 정 총리에게 가장 묻고 싶은 것은 ‘언제쯤 총리직을 그만두고 대선을 준비할지’였습니다. 넉달 전이나 지금이나 비슷한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여의도 정치’ 관련해 요리조리 찔러봤지만 돌아오는 답은 한결같았습니다. “아이, 고만합시다. 물어봐도 더 말할 것이 없어요.” 과연 ‘코로나 총리’다웠지만 인터뷰이의 속마음을 이끌어내야 하는 기자로서는 행간에서 팩트 한줄 챙겨보고 싶어 질문을 거듭하느라 진땀을 뺐습니다.
정 총리가 차기 대선에 뛰어들 예정이라는 건 정치권에서 아는 사람은 다 압니다. ‘공공연한 사실’이 된지도 오래입니다. 백신이 보급되고 4·7 재보선이 끝나면 총리직에서 물러날 거라는 관측이 많습니다. 정 총리 측근들은 이미 차기 대선을 위한 물밑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기자: 차기 대선을 앞두고 제3후보로서 존재감이 커지고 있습니다. 조심스럽지만
차기 대선주자 지지율 선두를 달리는 이재명 경기도지사, 이낙연 민주당 대표의 장단점을 꼽는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정 총리:
이재명 지사는 추진력이 있다고 하잖아요? 이낙연 대표는 안정감도 있고 경륜도 있죠. 우리 후보들에 대해서 장점은 이야기할 수 있지만 험담은 할 수 없습니다.(웃음)
기자: 사람들이 정 총리에 대해서 총리 경력, 호남 출신 이력 등을 들어 이낙연 대표의 ‘대체재’라고 평가하기도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정 총리:
구체적으로 보면 (이 대표와) 많이 다릅니다. (웃음) 많이 달라요.
기자: 정 총리와 이 대표의 공통점 중 하나가 호남 출신이라는 건데요. ‘호남 불가론’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정 총리:
정치 이야기 말고 다른 이야기 합시다. (웃음)
기자: 언제까지 총리를 하실 계획이신가요? 백신이 보급되거나 집단 면역이 형성되면 이제 총리직에서 내려오시나요?
정 총리:
모릅니다 그것은. 국민의 걱정이 좀 줄어들면….
기자: 집단면역이 형성되는 것은 11월께로 보고 있는데, 그때는 너무 늦지 않나요?
정 총리:
(웃음)
비록 말은 하지 않았지만 정 총리의 웃음은 미묘함을 자아냈습니다. 대선 출마에 대해서는 극도로 말을 아꼈는데, ‘이낙연 대체재’라는 말엔 아니라고 명확히 선을 긋습니다. 언제쯤 총리를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대선에 뛰어들지를 묻자 “코로나 잡는 데 전력투구”라면서도 인터뷰 말미엔 “국민의 걱정이 좀 줄어들면…”이라고 여지를 남기기도 합니다. 6선 국회의원부터 당 대표·국회의장·장관·총리까지, 그야말로 대통령 빼고는 다 해 본 화려한 경력의 ‘정치인 정세균’과 ‘행정가 정세균’이라는 정체성 사이에서 말하고 싶어도 차마 말하지 못하는 ‘홍길동 상황’에 놓였기 때문이겠지요.
정세균 국무총리가 2020년 9월25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국무총리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잠재적 경쟁자에 대한 인물 평가는 삼갔지만, 정책적 차원에서는 다른 생각을 말하지 않을까 싶어 질문을 던져봤습니다. 최근 정 총리는 전국민 재난지원금 지급, 코로나 이익공유제와 관련해 각각 이재명 지사, 이낙연 대표와의 차별화를 꾀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특히 지난달 7일엔 페이스북에 이재명 지사를 겨냥한 글을 올렸는데요. 최근 이 지사가 지역화폐로 경기도민 모두에 10만원씩을 지급하기로 결정한 데 대해 “급하니까 ‘막 풀자’는 것은 지혜롭지도 공정하지도 않다”고 돌직구를 날렸지요. 하지만 이와 관련한 질문을 받자마자 정 총리는 “오늘 인터뷰가 이재명 지사와 각을 세우는 인터뷰가 되지는 않는 게 좋을 것 같다”면서 말을 아꼈습니다.
정 총리 측근들은 정 총리가 당 대표를 지내던 시절 부대변인이었고, 성남시장에 공천장을 줬던 ‘정치 후배’ 이재명과 논쟁을 하는 모습을 썩 내켜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과거엔 ‘급’이 한참 아래였던 이 지사에 관해 이러쿵 저러쿵 말을 보태는 게 부담스러운 모양입니다. 물론 인터뷰에서 정 총리는 “지금은 전국민한테 (재난지원금을) 줄 타이밍이 아니다. 고통이 큰 쪽에 차등지원하는 게 옳다”고 소신을 말했지만, 인터뷰 내내 “후배와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며 조심스러운 모습이었습니다.
정 총리가 지금은 ‘코로나 총리’로서 방역 최전선에서 뛰지만 4월 재보선이 끝나면 정치권은 본격 대선 국면으로 접어들게 됩니다. 까마득한 ‘정치 후배’였던
이재명 지사는 최근 여야를 막론한 차기 대선후보 선호도 조사에서 선두에 올라섰고, 이낙연 대표보다도 약 10%포인트나 높은 지지를 받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정 총리가 정말 향후 ‘정치인 정세균’의 길을 준비하고 있다면, 쏟아지는 현안은 물론 정치에 대한 대한 자신의 입장 역시 적극적으로 나타내는 것이 시민과 당원들의 선택에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정치 선배로서 후배한테 대선 후보 자리를 기꺼이 내어줄 게 아니라면 말이죠. 앞으로 정 총리의 행보를 더 열심히 눈여겨봐야 겠습니다.
노지원 기자
zon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