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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저격수’ 김상조 실장은 관료에 포획된 걸까요?

등록 2021-01-12 04:59수정 2021-01-12 13:29

정치BAR _ 이완의 정치반숙
‘세밑 폭풍인사’ 때 사의 표한 참모진 중 유일 생존자
국정과제 성공 여부는 청와대 정책실장 평가와 연동
유영민 비서실장(왼쪽)과 김상조 정책실장이 1월5일 오전 청와대 여민관에서 영상으로 열린 2021년 제1회 국무회의에 참석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유영민 비서실장(왼쪽)과 김상조 정책실장이 1월5일 오전 청와대 여민관에서 영상으로 열린 2021년 제1회 국무회의에 참석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지난 연말, 청와대 출입기자들은 그야말로 다사다망했습니다. 특히 12월30일은 하루종일 춘추관이 들썩였지요. 오전 11시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 지명 발표에 이어 오후 2시엔 박범계·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각각 법무부·환경부 장관으로 내정한다는 발표가 있었습니다. 끝인가 했는데 웬걸, 한시간 뒤엔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김상조 정책실장·김종호 민정수석 등 ‘청와대 3인방’이 사의를 밝혔다는 발표를 했습니다. 그리고 이튿날인 31일엔 새로운 청와대 참모진이 발표됐습니다. 어떻게든 심기일전해 새해를 맞으려는 청와대의 안간힘이 느껴졌지요.

이처럼 밀어닥친 ‘세밑 폭풍인사’에서 유일한 ‘생존자’가 있으니, 바로 김상조 정책실장입니다. 대통령의 의중을 가장 잘 간파하는 측근 가운데 한명인 노영민 실장 사표도 받고, 취임 4개월 밖에 안된 김종호 수석도 갈렸는데, 어떻게 김상조 실장은 남았을까요? 청와대는 ‘업무 연속성’을 이유로 들었습니다. 3차 재난지원금 지급, 코로나19 방역 등 지금 진행 중인 사업들에 차질이 생기면 안된다는 것이었습니다. ‘1월초 교체한다거나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는 말도 덧붙였지요. 하지만 사의가 완전히 반려되었다기 보다, 청와대 관계자의 말에 따르자면 ‘당분간’ 김 실장이 청와대에 남아있는 것으로 보면 될 것 같습니다.

김 실장이 대통령의 재신임을 받았거나, 아직 대안을 찾지 못했거나 둘 중 하나겠지만, 그의 성과를 따져보려 합니다. 김 실장은 장하성-김수현 실장에 이은 3번째 문재인 정부 청와대 정책실장입니다. 그는 일본의 수출규제와 코로나19라는 위기 시대에 ‘컨트롤타워’ 한가운데 있었습니다. ‘핀셋’으로 대표되는 부동산 정책과 금융 정책도 그의 핵심 업무였습니다. 한국판 뉴딜과 공정경제3법도 모두 그의 손을 거쳤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정책실장 임무는 대통령의 국정과제 실현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외교안보를 제외하고는 문재인 정부의 성과를 평가할 수 있는 핵심 인물인 셈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6월27일 처음으로 주재한 국무회의 시작에 앞서 김상조 당시 공정거래위원장(가운데)이 장하성 정책실장(오른쪽)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왼쪽은 하승창 사회혁신수석. 청와대 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6월27일 처음으로 주재한 국무회의 시작에 앞서 김상조 당시 공정거래위원장(가운데)이 장하성 정책실장(오른쪽)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왼쪽은 하승창 사회혁신수석. 청와대 사진기자단.

청와대 밖을 벗어나면 그에 대한 평가는 후하지 못합니다. 부동산 정책 실패와 경제·사회 분야 개혁 미진 등이 ‘꼬리표’처럼 따라 붙습니다. ‘개혁적 경제학자’를 연달아 청와대 정책실장으로 불러들여, 관료를 견제하고 개혁을 추동하려 했던 문재인 대통령의 실험은 실패한 것일까요? 전현직 청와대 관계자와 사회·경제 분야 전문가, 정치권 인사 10여명에게 물었습니다.

관료와 ‘잘’ 지내는 현실주의 비관료

대부분 ‘정권 임기말 증후군’의 징조를 관료에게서 찾는 경우가 많습니다. 정권 초반부 충천했던 변화와 개혁 의지가 사라지고, 전문성으로 포장된 관료의 보수성과 효율성이 청와대와 내각을 집어삼키게 된다는 거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진보의 미래>에서 이걸 “관료에 포획됐다”라고 표현했습니다.

문 대통령은 박근혜 정부때 사라진 청와대 정책실장을 부활시켜, 개혁적 학자를 기용해 관료를 견제하려 했습니다. 시작은 장하성 정책실장-김동연 부총리였습니다. 그러나 ‘김앤장’은 소득주도성장 등을 둘러싸고 갈등을 겪다 하차했습니다. 장하성 실장의 바통을 이은 김수현 실장 역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김수현 실장은 지난 2019년 5월 열린 당정청 회의에서 마이크가 켜진 것을 모르고 “저도 2주년이 아니고 마치 4주년 같아요. 정부가”라고 속내를 입밖에 냈다가 입길에 올랐습니다. 그가 말한 ‘4주년 공무원’ 표현은, 정부 관료들이 대통령 임기가 2년 밖에 안되었는데 벌써 4년이나 된 것처럼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가리킨 것입니다.

김상조 실장은 이들과 달리 관료와의 ‘파열음’이 외부로 노출되지 않았습니다. 개혁 과제를 맡았던 그는 관료와 잘 지낸 것일까요. 전직 청와대 관계자 ㄱ씨는 “관료들은 자신이 보고한 게 관철되는 경험이 두세번 쌓여야 ‘저기다 보고해야 크게 안바뀌는구나’ 그렇게 알고 상의한다. 부처들이 바보가 아니어서 정무라인 등에서 개입해 ‘까인 것’을 다 안다. 김상조 실장은 이를 알고 관철시켜 주기 위해 애를 많이 썼다”고 평했습니다.

더구나 김 실장이 떠맡아야했던 일본 수출규제와 코로나19에 대한 대응은 강력한 행정력을 필요로 했기 때문에 관료의 협조가 필수적이었습니다. 그는 지난해초 1차 재난지원금 논란이 불거졌을 당시, 홍남기 부총리와 함께 선별지급 편에 섰습니다. 김 실장은 지난해 3월 <한겨레>와 인터뷰에서 “정부 당국자가 특히 경제 부처에 있는 분들은 놀고 있는거 아니고 무능하지도 않다”고 한 바 있습니다.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전직 청와대 관계자 ㄴ씨는 김 실장의 ‘현실주의적 태도’를 그가 문재인 정부에서 장수(공정위원장-정책실장)한 비결로 꼽습니다. “추진해야 할 당연한 정책도 현실과 맞닥뜨리면 어떤 식으로 이해관계자를 설득해야할지 고려할 요소가 많다. 이때문에 외부에서 보기엔 개혁의지를 접었다고 평가할 수 있지만 그건 김 실장이 감수할 수밖에 없는 측면이다. 무리해서 부러지면 개혁이고 나발이고 아무것도 없는 실패한 정권이 될 수 있다.”

내가 만들었다 VS 우리는 놀았나

하지만 경제개혁운동을 하는 진보적 학자들은 김 실장이 현실을 바꾸지 못했거나 관료에 ‘포섭’되었다는 평가 쪽에 가깝습니다. 지난해 이른바 ‘공정경제 3법’이 통과됐을 때 공정위 전속고발권 유지, ‘감사위원 분리선출 3% 룰’이 수정된 데 대해서 개혁 후퇴라는 비판이 일었지요. 이때 김 실장은 라디오 인터뷰에 출연해 “이 법의 개정이 가져올 크나큰 진전의 효과를 놓고 봤을 때 세 개 조문을 가지고 전체 개혁입법의 의미를 폄훼하는 것은 객관적이고 공정한 언론보도의 태도가 아니다”라고 반박했습니다.

여기에 “제가 소액주주운동을 20년동안 했던 사람이다. 우리나라 대표 소송 판례중 1/3은 내가 만들었다”는 발언까지 더했습니다. 그러자 한때 같은 진영에서 활동했던 전성인 홍익대 교수는 매서운 비판을 합니다. “그때 함께 했던 시민단체들은 거품을 물고 반대하는 사안인데, 경제개혁연대는 다 놀고 김상조만 시민운동 했나. 시민운동가로서 경력을 팔아가며 (대통령) 신임을 연장하려고 하는 건 모양새가 아주 좋지 않다.”

2004년 6월8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이 단체 경제개혁센터 김상조 소장(가운데)이 재벌금융개혁 등 최근의 경제위기론에 관한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lt;한겨레&gt; 자료사진
2004년 6월8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이 단체 경제개혁센터 김상조 소장(가운데)이 재벌금융개혁 등 최근의 경제위기론에 관한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경제개혁연구소 출신인 채이배 전 국민의힘 의원도 점수가 짭니다. “지난해말 기재부가 낸 경제정책방향을 보면 새로운 게 없었다. 관료들은 같은 것을 울궈먹고 있고, 민주당 의원들은 포퓰리즘적인 정책을 요구하는 상황이다. 대통령과 청와대가 명확한 철학을 가지고 이끌어야 하는데 특히 경제에 있어서 부족한 것 같다.” 우석진 명지대 교수(경제학) 역시 “밖에서 봤을때, 정부가 한국형 뉴딜을 하자는 데 이게 새로운(뉴) 건지, 계약(딜)을 하자는 건지 대통령 구상을 부처들도 잘 모르는 것 같다”며 “청와대 정책이 나오는 것을 보면 당이나 부처에서 수용이 잘 안 된다. 여론이 항상 옳은 건 아니지만 정책 수용자를 보는 것은 중요하기 때문에 정책실장이 여러 다양한 의견을 듣는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더 필요했다”고 짚었습니다.

기대 만큼 실망 컸던 사회정책

사회정책 분야 연구자들도 김 실장에 대한 기대를 접었습니다. 문재인 정부가 김 실장 등장 이후 ‘복지’에서 ‘경제’로의 무게중심 전환이 가팔랐다는 것입니다. 문재인 정부 포용 정책을 세우는데 참여했던 한 전문가는 “2018년 말까지는 포용국가를 대통령이 많이 이야기했지만, 2019년 들어 일자리 부족 등으로 공격을 당한 뒤 김상조 실장 체제로 바뀌자 경제 중심으로 정책 방향이 돌아간 느낌이었다”고 했습니다. 또다른 전문가 역시 “김 실장이 사회공공성 분야 예산에 힘을 실어줬다고 보기 힘들다”고 쓴 평가를 전했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올해 5년차에 접어듭니다. 현재 청와대 정책실 내 일자리수석-경제수석-사회수석은 이미 모두 관료로 바뀐 상태입니다. 여권에선 이때문에 김 실장을 관료의 포획으로부터 지켜야할 ‘최후의 보루’로 보는 분위기도 있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김상조 실장은 시민단체에서 잔뼈도 굵고, 정책에 대한 경험이 많아 역할을 그동안 잘했다. 그를 바꿀려면 그만한 민간인을 찾아야 하는데 사실 적당한 사람이 떠오르지 않는다”면서 “정책실장 자리를 절대 관료로 옮기면 안된다. 관료의 정책을 그대로 쓰는 건 진보 정권이 아니다”고 했습니다.

또다른 전 청와대 관계자 ㄷ씨는 “김상조 등 청와대에 누구 하나 들어갔다고 해서 확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관료와 기득권이 가진 힘이 크다. 여전히 중요한 것은 시민사회단체의 어젠다 세팅 능력과 이를 밀어줄 수 있는 정치사회세력의 존재다“고 말했습니다.

청와대 정책실장은 어떤 자리이길래

대통령 비서실 직제를 보면 “대통령의 국가정책(통일외교안보에 관한 사항은 제외한다)에 관한 사항을 보좌하게 하기 위하여 대통령비서실에 정책실을 두고, 정책실장 1명은 정무직으로 한다”고 되어있다. 정책실장은 장관급이지만 흔히 ‘경제 투톱’으로 부를 정도로, 부총리급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본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처음 청와대 정책실장을 만들었다.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민정·시민사회 수석을 거쳐 비서실장에 오르는 사이, 정책실장 자리에는 6명이 지나갔다. 학자 출신 이정우 초대 실장 뒤 박봉흠·변양균 등 관료 출신들이 정책실장을 맡기도 했다. 이정우 실장은 참여정부가 끝난 뒤 “참여정부에 잘못이 있다면 경제관료들을 프로라고 보고 그 사람들에게 경제를 맡긴 잘못이 크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정권 출범 때 정책실장을 폐지했었다. 하지만 2009년 8월말 대통령실 산하 차관급으로 정책실장을 만들었다. 이 전 대통령은 윤진식-백용호-김대기 실장 등 주로 관료 출신을 등용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다시 정책실장을 폐지했다.

문 대통령은 정책실장을 부활시켜 경제와 사회 분야를 맡겼다. 장하성·김수현·김상조 등 학자 출신을 기용했다. 정책실장의 중요한 역할은 대통령 국정과제 수행이다. 특히 사회정책 등 국정 과제는 그동안 예산 제약 때문에 기획재정부를 넘기 어려웠지만, 정책실장이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역할을 줬다. 대통령에게 가는 부처의 보고를 조정할 수 있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우석진 명지대 교수는 “경제학자가 정책실장을 하는 건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정책조정은 어떤 것은 보완하고, 어떤 것은 폐지하는 과정인데, 경제학자는 기본적으로 트레이드-오프(두개의 정책목표 가운데 하나를 달성하려고 하면 다른 목표의 달성이 늦어지거나 희생되는 경우의 양자간 관계)가 훈련된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현 직제상 보면 정책실장 밑으로 경제보좌관과 일자리수석-경제수석-사회수석 순으로 위치한다. 이때문에 문재인 정부가 ‘사람이 먼저다’를 내세우지만, 실제 정책 우선순위를 다투는 청와대 정책실은 사회정책 보다 경제에 더 치중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정부 한 관계자는 “미국도 비슷한 이슈가 있었다. 백악관에도 국가경제위원회(NEC) 밖에 없어서 국가사회위원회를 만들어야한다는 주장이 있다”고 전했다.

이완 기자 w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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