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일간 신문은 대부분 조간입니다. 대개 월화수목금토 주 6일 발행합니다. 신문을 며칠 동안 발행하지 않는 때가 1년에 두 차례 있습니다. 설 연휴와 추석 연휴입니다. 이번 설 연휴에도 1월 24일 치까지만 신문을 발행하고 25·26·27일 사흘은 신문을 발행하지 않았습니다.
연휴 직전에 발행하는 신문은 연휴 기간 내내 집안에서 굴러다닙니다. 습관적으로 신문을 보는 사람들은 연휴 직전 신문에 실린 기사를 아무래도 자세히 읽어보게 됩니다. 따라서 신문을 제작하는 사람들도 연휴 직전 신문에 많은 공을 들이게 됩니다.
신문 보는 사람이 많이 줄었지만, 아직도 신문의 의제 설정 기능은 살아 있습니다. 중요한 정치 사회적 쟁점이 발생했을 때 신문이 어떻게 보도하는지, 또 신문 칼럼이나 사설이 어떤 시각으로 다루는지가 그 쟁점의 여파와 영향력을 결정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번 설 연휴 직전에 발생한 가장 큰 뉴스는 검찰 관련 기사였습니다. 문재인 대통령과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차장급, 부장급 검사 인사를 했고, 윤석열 검찰총장은 최강욱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을 기소했습니다. 인사권을 가진 대통령과 수사권을 가진 검찰이 정면으로 충돌한 모양새입니다. 1월 24일 치 조간이 이 사안을 어떻게 다뤘는지 1면의 큰 제목만 살펴보겠습니다.
경향신문/검, 최강욱 전격 기소···추미애 “날치기, 감찰 필요”
국민일보/秋 “최강욱 기소 날치기” 檢 “적법하게 이뤄졌다”
동아일보/최강욱 기소 정면충돌···秋 “날치기” 尹 “적법”
서울신문/尹총장 최강욱 기소 秋장관 윤 감찰 검토
조선일보/‘최강욱 기소 충돌’···靑·秋, 윤석열 쳐내기 돌입
중앙일보/청와대 최강욱 “공수처 뜨면 윤석열 범죄행위 수사”
한겨레/검찰, 최강욱 전격 기소하자, 법무부 “날치기 기소 감찰”
한국일보/秋 “최강욱 날치기 기소” 檢 “적법한 기소”
<조선일보> <중앙일보>의 제목이 확 눈에 띕니다.
<조선일보>는 청와대와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윤석열 검찰총장 쳐내기에 돌입했다는 추측을 과감히 제목으로 뽑았습니다. 검찰청법이 임기 2년을 보장한 검찰총장을 청와대와 법무부가 마음대로 쳐낼 수 있을까요? 그럴 것 같지 않습니다.
<중앙일보>는 최강욱 공직기강비서관의 일방적 주장을 큰 제목으로 뽑았습니다. 형사소송법에는 기소독점주의와 기소편의주의가 있습니다. 상식적으로 조금만 생각해 보아도 공수처가 윤석열 검찰총장을 직권남용죄로 기소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조선일보>와 <중앙일보>의 제목은 문재인 정부에 대한 반감을 자극하는 데는 효과적이지만 객관적 사실과 전망에는 별로 부합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등 이른바 조중동에는 더 흥미로운 검찰 관련 기사와 칼럼이 많이 실렸습니다.
조선일보/
4면/법무부에 운동권, 정권 수사라인엔 호남 출신···고립된 윤석열
박정훈 칼럼/무능한 줄로만 알았는데 ‘선수’였다
사설/법 무시 대통령이 또 검찰 ‘학살’한 날, 文측근 기소한 진짜 검사들
대학에서 운동권이었던 학생들도 졸업 뒤에는 각 분야로 진출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사법시험을 거쳐 검사로 임용된 사람도 많습니다. ‘운동권 출신 검사’라고 해서 특별할 것도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검사 중에는 고향이 호남인 사람도 많습니다. ‘호남 출신 검사’라고 해서 특별할 것도 없습니다. ‘운동권’과 ‘호남’을 굳이 강조하는 것은 운동권 출신이나 호남 출신들을 현 정부에 가까운 특이한 사람들로 몰아서 고립시키려는 의도가 숨어 있을 수 있습니다.
박정훈 논설실장이 쓴 칼럼의 마지막 부분은 이렇게 끝납니다.
이제 확실히 알게 됐다. 문 대통령은 애초부터 취임사의 약속들을 지킬 생각이 없었다. "모든 국민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말은 애당초 허언(虛言)이었다. 상식적으로 이해 불가능한 일련의 국정 자해극은 무능 때문이 아니라 이 정권의 태생적 본질이었다.
남은 2년도 결코 변하지 않을 것이다. 나라 망가져도 아랑곳 않는 막무가내 정권을 대하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선거로 심판하는 것이다.
유력 신문사 논설실장이 총선을 앞두고 공공연히 정권 심판을 촉구하고 나선 것입니다.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요? <중앙일보> 24일 치 사설 제목만 살펴보겠습니다.
‘2차 대학살’ 검찰 인사···훗날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한다
정권 관련 수사 담당 차장검사 모조리 교체
‘살아 있는 권력’ 수사 꿈도 꾸지 말라는 것
법치 틀 허물어뜨린 죄의 대가 치르게 해야
어떻습니까? 좀 살벌하지요? <동아일보> 이기홍 칼럼 제목은 ‘집권세력發 궤변과 선동···실종된 수오지심’입니다. 마지막 부분은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입으로는 민주주의를 말하면서 행동은 과거 권위주의 정권 뺨칠 수준인데 죄책감도 없고 부끄러움도 모른다. 수오지심의 실종이다. 성현들은 수오지심이 없는 사람은 교화가 불가능하다고 했다. 4·15총선이 그래서 더더욱 중요하다.
이기홍 <동아일보> 논설실장도 박정훈 <조선일보> 논설실장처럼 4·15 총선에서 현 정권을 심판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조중동 모두 문재인 정부의 최근 검찰 인사는 검찰의 수사를 방해하기 위한 불법 행위이며 4·15 총선에서 문재인 정권을 심판해야 한다는 논리를 편 것입니다.
조중동의 문재인 정권 심판론은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의 주장과 똑같은 것입니다. 황교안 대표는 24일 ‘검찰 인사 관련 긴급 입장’을 발표했습니다. 이런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이것은 대한민국 체제의 근간을 흔드는 것입니다.
대한민국 국민에 대한 정면 도전입니다.
용서할 수 없는 헌정농단입니다.
이제 이 나라를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친문 파시즘의 국가로 만들려고 작정했습니다.
국민을 친문독재 아래 굴종시키려는 것입니다.
모욕과 좌절감에 휩싸여 있을
대다수의 검찰 구성원 여러분!
국민들이 여러분 곁에 있습니다.
어렵고 힘들겠지만 조금만 더 힘을 내주십시오.
지금 수많은 국민들이
여러분들에게 마지막 희망을 걸고 있습니다.
반드시, 언젠가 검찰의 독립과 중립이
다시 세워지는 날이 올 것입니다.
반드시 우리 검찰을 국민의 품에
다시 안겨드릴 날을 되찾고 말 것입니다.
국민 여러분. 문재인 정권은 총선까지만 버티자는 속셈입니다.
총선이라는 정권심판의 위기만 잘 넘기면
이대로 검찰은 물론이고,
모든 대한민국 헌정 헌법 기관을 장악해서
이 나라와 국민을 집어삼키겠다는 의도입니다.
대통령과 청와대, 이 정권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검찰 죽이기를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그렇게 할 것입니다.
훨씬 더 야만적인 일들을 벌일 것입니다.
이번 총선에서 반드시 이 정권의 폭주를 멈추고,
권력의 장막 뒤에서 벌인 온갖 부정부패를
반드시 밝혀내서 엄중히 죄를 물어야만 합니다.
우리는 이제 나라의 운명을 건 심판에 나서야만 합니다.
(중략)
국민 여러분.
이 모든 힘은 바로 주권자인 국민 여러분들에게서 나옵니다.
오직 국민만이 심판할 수 있습니다.
이번 총선에서 저희 자유한국당에게
나라를 다시 바로 세울 기회를 허락해주십시오.
저희가 압승하여, 문재인 정권의
폭정을 막을 수 있게 해주십시오.
저희는 국민들께서 주신 기회를
오직 정의와 법치를 위해 쓰겠습니다.
그리고 반드시 위기의 대한민국을 살려내겠습니다.
어떻습니까? 무슨 격문처럼 보이지 않습니까? 한마디로 대한민국을 무너뜨리는 문재인 정권을 심판하려면 4·15 총선에서 자유한국당에 표를 몰아줘야 한다는 정치적 선동입니다. 앞에서 소개해 드린 조중동의 문재인 정권 심판론과 다르지 않습니다.
문득 궁금했습니다. 검찰 인사에 대한 다른 신문의 평가는 어떨까요? <경향신문> <한겨레> <한국일보> 관련 사설과 내용을 찾아보았습니다.
경향신문/
검찰 대대적 물갈이 인사, ‘권력 수사’ 굴절로 이어져선 안 돼
지휘부의 대대적 이동으로 현안 수사의 차질이 우려되는 것 또한 사실이다. ‘조국 수사’ ‘정권 수사’를 지휘해온 서울중앙지검 4명의 차장검사가 모두 지방청으로 발령났다. 이들 수사에 관여해온 대검 간부 상당수도 이동했다. 이들의 공백으로 관련 수사가 당분간 혼란스러울 것은 불문가지다. 수사 동력 약화가 있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야당 및 보수언론에서 제기하듯 ‘제2대학살’ ‘수사방해’라는 비난은 옳지도 않고, 섣부르다. 이들은 수사의 지휘계통에 있기는 하지만, 직접수사를 하는 실무 검사는 아니다. 무엇보다 ‘지휘부가 교체되면 수사 결론까지 달라질 것’이라는 주장은 검찰 조직에 대한 모독이다. 청와대 감찰 무마·선거개입 의혹 수사 실무팀 부장검사들도 모두 현직을 유지했다. 정권을 겨냥한 수사에는 큰 문제가 없는 것이다. ‘조국 수사’의 경우 수사팀장인 부장검사까지 전보조치됐으나, 이 수사는 이미 기소까지 끝난 상태다. 공소유지 등의 절차는 남아있는 검사들이 하면 된다. 이런 인사를 놓고 “수사방해” 운운하는 것은 억지일 뿐이다.
한겨레/
검찰 인사 일단락, ‘공정·신속 수사’로 신뢰 되찾길
일각에서 ‘제2의 대학살’ 운운하지만, 과한 표현이다. 인사가 일단락됐으니 더 이상 갈등과 분열을 멈추고 안정을 찾기를 기대한다. 다가오는 총선에 영향을 끼치지 않도록 남아있는 수사를 서두를 필요도 있다. 검찰 수뇌부는 수사가 다시 정치 공방으로 비화하지 않도록 할 책임이 있다.
한국일보/
‘절충안’ 택한 검찰 인사, 靑 수사 차질 없도록
사실상의 수사 책임자 전원 교체는 지난 검사장급 인사와 마찬가지로 ‘문책성’ 의도가 담겨 있다는 점에서 유감스러운 면이 없지는 않다. 주요 사건 수사와 관련해 검찰의 ‘과잉 수사’와 ‘피의사실 공표’ 등 논란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검찰 지휘부에 ‘괘씸죄’를 적용했다고 볼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요 사건 수사팀의 실무 검사들은 대부분 잔류시켜 ‘수사방해’ 등 논란을 키우지 않으려 한 점은 평가할 만하다.
여러분은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와 <한겨레> <경향신문> <한국일보>의 논리 중에서 어느 쪽이 더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언론의 가장 기본적인 책무는 권력 감시입니다. 문재인 정부의 검찰 인사가 검찰의 청와대 수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비판하는 것은 정당합니다. 하지만 검찰 인사를 수사방해라는 범죄행위로 규정하고 총선에서 심판할 것을 촉구하는 것은 언론의 책무를 벗어난 과잉 보도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문득 궁금해진 또 한 가지가 있었습니다.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가 과거 이명박 박근혜 정부 시절에도 정권 심판을 주장한 적이 있는지였습니다. 제 기억에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4년 전 설 연휴 직전인 2016년 2월 6일 치 신문을 찾아봤습니다. 새누리당 공천 파동이 벌어지기 전이었기 때문인지 정치와 관련해서는 특별한 기사가 없었습니다. 정치면에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 충돌 기사 정도가 눈에 띄었습니다.
조중동은 2~3월에 새누리당 공천 파동이 격화하자 “민심을 무시한 공천을 밀어붙이면 그 결과는 집권당 교체가 될 것”이라고 경고하는 등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을 비판하는 사설과 칼럼을 많이 썼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새누리당 심판론’을 제기하지는 않았습니다.
3년 전 설 연휴 직전인 2017년 1월 27일 치 신문을 찾아봤습니다.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국회에서 탄핵 소추되어 직무가 정지되어 있던 때입니다. 신문에 박근혜 정권 심판론이 등장할 수도 있는 시점이었습니다. 없었습니다.
<조선일보> 박정훈 논설위원은 ‘모두가 미쳐가고 있다’는 칼럼을 썼습니다. 칼럼의 상당 부분을 문재인 전 대표의 포퓰리즘 정책을 비판하는 데 할애했습니다.
<중앙일보> 사설 제목은 ‘극단적 진영 논리로 설 민심 자극하려는가’였습니다. 양비론이었습니다.
<동아일보> 사설 제목은 ‘정권교체 정치교체보다 중요한 것은 대통령다움이다’였습니다. 성공하는 대통령의 조건으로 비전, 설득력, 경영 능력을 제시한 것인데, 지나치게 이상적인 주장이라서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알기 어려웠습니다.
조중동의 이번 문재인 정권 심판론은 과거 박근혜 정부에 대한 그들의 보도 태도와 비교해도 너무 지나치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이른바 보수 성향 신문들의 정파성이 점점 더 강해지는 이유가 뭘까요? 물론 조중동이 아니라 <한겨레>가 오히려 편파적이라고 생각하는 독자들도 많을 것입니다. 그럼 질문을 바꿔보겠습니다. 우리나라 신문의 정파성이 점점 더 강해지는 이유가 뭘까요?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기는 쉽지 않습니다. 우리나라 언론인들의 책임도 있겠지만,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는 언론 생태계의 변화라는 근본적 원인을 짚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정보의 범람으로 가짜뉴스가 횡행하고, 언론 수용자들은 믿고 싶은 뉴스만 받아들이는 등 확증 편향 강화의 시대 상황 말입니다.
지난해 6월 티브이 칼럼니스트 이승한 씨가 <한겨레> 토요판에 ‘
유튜브가 업이 되는 순간 빠지게 되는 함정’이라는 제목의 글을 썼습니다.
이승한 씨는 유튜브의 콘텐츠 전략이 ‘더 폭넓은 계층의 구독자들에게 두루 어필하는 채널’로 가는 대신 ‘특정 성향을 지닌 구독자만 집중적으로 만족시키는 채널’로 수립되면서 나타나는 여러 가지 문제를 짚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말을 덧붙였습니다.
문제는 이게 단순히 유튜브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이다. 유튜브 사용자만 다채널 무한경쟁 시대에 도착한 것이 아니다. 지상파 채널과 케이블 채널, 종합편성 채널의 콘텐츠 제작자들, 활자 기반의 언론, 심지어는 나 같은 변변찮은 글쟁이까지 다채널 무한경쟁 시대에 함께 도착했다.
이제 글조차 ‘몇 번째 문단 몇 번째 줄에서 독자의 중도 이탈이 일어나는가’를 실시간으로 분석할 수 있는 시대가 됐고, 모두가 좀 더 크고 시끄러운 톤으로 특정 타깃 소비자에게 최대 만족을 주기 위해 메시지를 조율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공공재인 전파를 배당받았기에 최소한의 공공성을 사수해야 할 의무가 있는 지상파 채널조차 채널의 영향력을 보존하기 위해 철저하게 상업적인 의사결정을 내리고, 글쟁이들은 자신의 글을 사줄 만한 독자들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려 입바른 소리를 삼가며, 새로운 관점을 제공해 좀 더 오래 생각해 볼 만한 고민점을 제공하는 메시지보다 즉각적인 만족을 제공하는 ‘사이다 썰’이 더 주목받는 상황이 됐다.
유튜브가 다른 플랫폼보다 먼저 그 상황의 극단을 경험하고 있을 뿐, 지금의 추세라면 결국 모든 미디어가 그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미디어로서 생존하기 위해 더 극단적이고 파편화된 메시지를 제공하는 길 말이다.
어떻습니까? 저는 이 대목을 읽으면서 너무 무서워서 소름이 돋았습니다. 지금 우리나라 신문들이 그 길을 걷기 시작한 것 아닐까요? 조중동이 태극기 부대와 같은 주장을 자꾸 하는 이유가 바로 그런 것 때문은 아닐까요?
이런 주장을 하는 저도 날이 갈수록 정파성이 강한 글을 쓰지 않고 있다고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조중동에 비판을 가하면서 <한겨레>는 절대로 그렇지 않다고 주장할 자신도 없습니다.
다만 <한겨레>는 이승한 씨가 예언한 ‘그 길’을 따라가지 않기 위해 고민하고 몸부림치고 있다는 말씀은 꼭 드리고 싶습니다.
<한겨레>는 ‘조국 사태’ 와중에 독자들의 항의를 많이 받았습니다. 조국 사태 초기에 <한겨레> 기자들이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기사 누락을 이유로 편집국장 사퇴를 요구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저는 여러 자리에서 주주와 독자들의 질타를 받았습니다. 질타는 주로 “한겨레가 왜 문재인 정부와 조국 후보자가 아니라 자유한국당과 조중동 편을 드냐”는 것과 “편집국장 사퇴를 요구한 편집국 기자들의 시각에 큰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장관 후보자에 대한 검증은 언론의 기본 임무”라고 설명했습니다. 또 “기자들이 편집국장 사퇴를 요구한 사건의 본질은 조국 후보자 보도가 아니라 편집국장을 비롯한 편집국 간부들의 리더십과 소통이었다”고 해명하고 사과했습니다.
최근 광주에서 열린 ‘검찰개혁 토크쇼’에서도 어느 주주로부터 “한겨레 보도를 보니까 조국 후보자의 억울함을 제대로 방어해주지 않더라. 그래서 신문을 끊었다”는 질책성 질문을 받았습니다. 저는 “1988년 한겨레 창간에 주주들이 50억이나 모아주신 것은 어떤 진영을 대변하라는 명령이 아니라 민주주의와 한반도 평화라는 소중한 가치를 지키라는 명령이었던 것으로 이해한다”고 답변했습니다. 현장에 있던 다른 참석자가 “우리는 어떤 진영을 편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검찰개혁, 민주주의, 5·18 정신 같은 중요한 가치를 지키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다”고 깔끔하게 정리를 해주셨습니다.
마무리하겠습니다. 우리나라 언론, 특히 신문, 그중에서도 이른바 보수 성향 신문들은 ‘신뢰 상실’과 ‘영향력 축소’, 이를 만회하기 위한 ‘사이다 보도’, 그로 인한 ‘신뢰 상실‘과 ’영향력 축소’의 악순환 고리를 맴돌고 있습니다.
안 보면 그만이라고요? 신문이 다 망해도 괜찮다고요? 그렇습니다. 기업으로서 신문은 망해도 그만입니다. 하지만 언론은 공론장입니다. 언론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면 공론장이 무너집니다. 공론장이 무너지면 공동체의 미래를 결정짓는 토론이 불가능하게 됩니다. 저널리즘의 붕괴가 민주주의의 붕괴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걱정입니다.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