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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방송·연예

유튜브가 ‘업’이 되는 순간 빠지게 되는 함정

등록 2019-06-15 16:43수정 2019-06-15 17:08

[토요판] 이승한의 술탄오브더티브이

유튜브 방송하는 사람 부쩍 늘어
취미로 하는 이들은 행복해 보여
본격적으로 시장 뛰어들면 달라져

일단 구독자 수 확보가 급선무
‘타깃 독자’ 겨냥 극단화·파편화
지상파 등 다른 미디어도 따라가
출연자들이 유튜브 채널을 열어 자신만의 개인 방송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담은 제이티비시(JTBC)의 프로그램 <날 보러 와요>. 제이티비시
출연자들이 유튜브 채널을 열어 자신만의 개인 방송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담은 제이티비시(JTBC)의 프로그램 <날 보러 와요>. 제이티비시
최근 주변에 유튜브 개인방송을 하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 영상 제작이 전에 없이 쉬워진 까닭도 있지만, 유튜브가 과거의 블로그 열풍을 연상케 할 만큼 압도적인 플랫폼으로 등극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누군가는 집 앞에 작은 정원을 가꾸는 과정을 브이로그 영상(일상을 잔잔하게 기록한 영상일기)으로 담아내기도 하고, 기사에는 다 담아내지 못했던 취재 뒷이야기를 들려주는 기자들도 생겼다. 운동과 식이요법에 관한 정보를 전하는 사람, 시청자의 사연을 명리학의 틀로 해석해 상담해주는 사람까지, 열 사람의 유튜브 크리에이터가 있으면 열 가지 다른 콘텐츠가 있는 터라, 영상 콘텐츠를 보고 비평하는 사람 입장에선 흥미와 고단함이 동시에 폭증하는 중이다. 나 같은 이에게 ‘볼만한 콘텐츠가 늘어난다’는 것은 ‘비평해야 할 일거리가 늘어난다’는 것과 같은 의미니까.

시청자 반응 초 단위로 분석

상황이 이래서 그런지, 가끔씩 나한테 “너는 왜 유튜브 개인 채널이 없냐”고 묻는 이들이 생긴다. “세상 사람들 다 하는데 너는 왜 안 해?” 같은 무심한 말투로 물어보는 이들도 있는 반면, 동종업계 종사자들 중엔 뭔가 절박한 투로 “승한씨 같은 사람이 유튜브를 해야 한다”며 적극 권장을 하는 이들도 있다. 전자가 단순한 흥미나 호기심에서 나온 질문이라면, 후자는 더 이상 글만 써서는 생존이 어려운 시대가 왔다는 불안에서 나온 질문에 가깝다. 사람들이 긴 글은 예전만큼 안 읽어도 10분짜리 영상은 예전에 비해 훨씬 많이 보니까, 누구라도 먼저 글로 풀었던 이야기들을 ‘썰’로 풀어서 들려주는 실험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위기의식 때문에 나온 소리일 것이다. 이미 한겨레티브이 <컬쳐비평 잉여싸롱>(2013~2015년, 2017년)을 통해 내가 유튜브 환경에서 매력적인 상품이 아니라는 건 진작에 확인했다고 말해봐도, 누구 하나 먼저 뛰어들어보는 ‘퍼스트 펭귄’이 절박한 이들은 “그때와 지금은 다르다”며 내게 다시 뛰어들 것을 권유한다.

물론 자신이 만들고 싶은 영상을 올리는 것에만 전념하며 유튜브를 취미생활의 연장으로 생각하는 지인들의 행복지수는 놀랄 만큼 높아 보인다. 그런 이들을 보고 있노라면, 나 또한 저들과 어울려 그 즐거움을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샘솟는다. 그러나 이미 콘텐츠 생산이 직업인 나는, 유튜브에서도 그들처럼 콘텐츠 생산을 ‘취미생활’로 즐길 수 있는 처지는 아닐 것이다.

반면 유튜브를 업으로 삼아 본격적으로 치열한 경쟁 시장에 뛰어든 이들의 고민은, 곁에서 언뜻 보기에도 결코 작지 않아 보인다. 과거와는 달리 이제 시청자의 반응을 초 단위로 분석하는 일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영상의 몇 분 몇 초 지점에서 중도 이탈이 일어나는지, 끝까지 보는 이들은 전체 시청자 중 몇 퍼센트나 되는지, 출연자가 어떤 멘트를 했을 때 ‘좋아요’나 ‘구독’ 버튼을 누르는 행위가 증가하는지, 성별·연령대별·국가별·지역별로 시청자 반응이 어떻게 다른지 등을 분석하는 일이 유튜브 플랫폼에선 어렵지 않다.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면 어떻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게 효과적인지 파악하는 일이 쉬워졌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이처럼 세분화된 분석이 가능해진 탓에, ‘무슨 메시지를 던질 때 더 많은 사람들이 환호하는가’ 또한 더 노골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 문제다.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명확해서 그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것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당연히 저 분석 결과를 ‘메시지 전달 방식 개선’에만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수많은 채널이 동시다발적으로 경쟁하는 시대에선,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일단 그 메시지를 들어줄 구독자를 많이 확보한 채널로 성장하는 게 먼저다. 사용자의 시청 패턴에 맞춰 동영상을 추천해주는 유튜브의 알고리즘 또한, 메시지의 질이나 성격에 맞춰 영상을 큐레이팅 한다기보단 비슷한 성향을 지닌 사용자들이 많이 좋아한 영상을 우선적으로 노출해주니 말이다. 메시지의 질적 평가가 얼마나 많은 사람이 보았는가라는 양적 평가로 대체된 상황인 것이다. 제아무리 공자님 말씀이라도 들어주는 제자들이 없으면 아무 의미가 없으니, 누구라도 일단은 더 많은 구독자를 확보하는 일이 급선무가 된다. 물론 백종원처럼 채널 개설 하루 만에 구독자 수 90만명을 모을 만큼 인기와 인지도를 확보한 사람이라면 얘기가 조금 달라지겠으나, 우리는 백종원이 아니지 않은가?

시청자 눈치 보는 채널들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시청자들이 마음에 안 들어 할 만한 이야기는 삼가게 된다. 난민 문제나 계급의 문제, 페미니즘과 정치적 공정함(PC) 등 논쟁으로 이어질 인화점이 낮은 이슈들은 피하고, 더 많은 사람의 시청과 구독을 유치하기 위해 메시지의 톤을 둥글게 깎기도 한다. 할 수 있는 이야기의 폭은 납작해지고, 진짜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뒤로 유예되기 쉽다.

반대로 즉각적인 반응을 끌어내기 위해 자극적인 메시지들은 상대적으로 전진 배치된다. 언뜻 ‘더 많은 사람들의 시청과 구독을 유치’하기 위해 ‘메시지의 톤을 둥글게 깎는’ 일과, ‘자극적인 메시지들을 전진 배치’ 하는 일이 상충하는 것 같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유튜브에서 ‘유력채널’의 기준점이 되는 실버버튼(구독자 10만명 이상)이나 골드버튼(구독자 100만명 이상) 획득 채널이 되면, 그 지점부터 해당 채널은 안정적으로 재생산이 가능해진다. 콘텐츠 전략이 ‘더 폭넓은 계층의 구독자들에게 두루 어필하는 채널’로 가는 대신 ‘특정 성향을 지닌 구독자만 집중적으로 만족시키는 채널’로 수립되기 쉬운 것이다.

방향을 그렇게 설정하는 순간, 메시지는 특정한 정치적 입장을 전력으로 옹호하거나, 특정 편견에 적극 편승하는 쪽으로 변질된다. 유튜브 공간에 난무하는 음모론 동영상이나 가짜뉴스, 특정 정파의 세계관을 전파하는 토크쇼 등을 보라. 누군가를 극단적으로 만족시키는 콘텐츠는, 그 ‘누군가’의 범주 안에 들어가지 못하는 나머지 모두를 극단적으로 배제하는 콘텐츠가 될 확률이 높다.

문제는 이게 단순히 유튜브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이다. 유튜브 사용자만 다채널 무한경쟁 시대에 도착한 것이 아니다. 지상파 채널과 케이블 채널, 종합편성 채널의 콘텐츠 제작자들, 활자 기반의 언론, 심지어는 나 같은 변변찮은 글쟁이까지 다채널 무한경쟁 시대에 함께 도착했다. 이제 글조차 ‘몇 번째 문단 몇 번째 줄에서 독자의 중도 이탈이 일어나는가’를 실시간으로 분석할 수 있는 시대가 됐고, 모두가 좀더 크고 시끄러운 톤으로 특정 타깃 소비자에게 최대 만족을 주기 위해 메시지를 조율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공공재인 전파를 배당받았기에 최소한의 공공성을 사수해야 할 의무가 있는 지상파 채널조차 채널의 영향력을 보존하기 위해 철저하게 상업적인 의사결정을 내리고, 글쟁이들은 자신의 글을 사줄 만한 독자들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려 입바른 소리를 삼가며, 새로운 관점을 제공해 좀더 오래 생각해볼 만한 고민점을 제공하는 메시지보다 즉각적인 만족을 제공하는 ‘사이다 썰’이 더 주목받는 상황이 됐다.

유튜브가 다른 플랫폼보다 먼저 그 상황의 극단을 경험하고 있을 뿐, 지금의 추세라면 결국 모든 미디어가 그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미디어로서 생존하기 위해 더 극단적이고 파편화된 메시지를 제공하는 길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특정 타깃 소비자와 얼마나 더 긴밀하게 연결될 수 있는지가 앞으로 미디어 전략의 핵심”이라는 이야기를 하는 건 다분히 팔자 좋은 분석에 가깝다. 그건 조언이 아니라 눈에 뻔히 보이는 경향성을 분석한 것에 불과하지 않은가? 추락하고 있는 이에게 “이렇게 높은 곳에서 추락하면 결국 죽는다”는 말을 하는 건 하나 마나 한 이야기다. 중요한 건 “어떻게 하면 추락을 멈출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이다.

어떻게 하면 메시지의 극단화를 피하면서도 스피커의 규모를 유의미하게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 어떻게 하면 타인을 배제하는 일 없이 모두를 향해 말을 걸면서도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제대로 전할 수 있을 것인가. 그 고민에 대한 답을 얻기 전까지는, 아마 유튜브 개인 채널을 개설하는 일은 없을 것 같다.

이승한 티브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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