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국토교통위원회 박순자 위원장이 지난 2월13일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부동산 블록체인 & 스마트시티 미래전략 세미나’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유한국당이 10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위원장 사임을 거부하고 있는 박순자 의원에 대한 징계에 착수했습니다. 한국당 몫인 국토위원장 상임위원장 직 교체를 둘러싼 당 내 갈등이 끝내 극한으로 치닫는 모양새입니다.
자유한국당은 이날 저녁 6시까지 박 의원이 자진사퇴 뜻을 밝히지 않으면서 윤리위 징계 접수에 들어갔다고 밝혔습니다. 앞서 이날 오전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기자들과 만나 “당에서 (박 의원을) 윤리위에 회부하는 징계 절차에 오늘 중 착수한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하지만 당 윤리위 차원에서 징계를 하더라도, 국회직인 상임위원장은 스스로 물러나지 않는 한 사보임시킬 수는 없습니다. 나 원내대표 또한 “(국토위원장직에서) 강제로 내려오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면서도 “당 기강에 관한 문제이고, 실질적으로 당에 매우 유해한 행위”라며 당헌당규에 따라 윤리위의 징계 절차를 밟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해당(害黨)행위’로 보고 징계를 가하겠다는 것입니다.
최근 자유한국당은 상임위에 등원하는 등 국회에 복귀했지만, 상임위원장 직을 놓고 잇따른 내홍을 겪었습니다. 보건복지위원회, 산업자원통상중소벤처기업위원,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장 자리는 정리를 마쳤지만, 국토교통위원회만은 갈등이 길어지고 있습니다. 지난해 7월 의원총회에서 박순자 의원과 홍문표 의원이 각각 번갈아 국토위원장 자리를 맡기로 합의했다고 알려졌지만, 박 의원은 “경선을 요구했고, 해당 합의에 동의한 적 없다”며 거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편도선염으로 인한 고열로 병원에 입원한 것으로 알려졌던 박 의원은 9일 열린 의원총회에 참석해 “저는 원내지도부와 1년씩 상임위원장 나누기에 합의한 적이 없다”는 유인물을 돌리기도 했습니다.
‘버티기’를 지켜보는 의원들의 반응은 냉랭합니다. 예결위원장 직을 놓고 과거 합의 당시 위원장 직을 약속받았던 황영철 의원이 도전장을 던진 김재원 의원과 대립할 땐, 결국 예산결산심사를 한차례도 하지 못한 채 위원장 직을 내놓게 된 황 의원에 대한 동정 여론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박 의원의 경우 이전 합의에 동의한 적 없다는 주장만으로는 명분이 되기 어렵다는 의견이 대다수입니다. 2년 임기의 상임위원장 직을 1년씩 쪼개 맡는 ‘관행’부터 문제라는 박 의원의 주장에도 동의할 수 없다는 시각이 많습니다. 한 충청권 의원은 “그렇다면 먼저 국토위원장으로 지명됐을 당시엔 왜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냐는 이야기도 있다”며 “당이 이런 시국에 ‘자리싸움’을 하는 것처럼 비춰지게 돼, 우스꽝스러워지게 됐다”고 비판했습니다.
박 의원은 임기 2년을 그대로 수행하거나, 남은 임기를 홍문표 의원과 반반으로 쪼개 역임하는 안도 내놨는데요. 홍문표 의원 쪽에서는 말도 안된다는 불쾌감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총선까지 9개월이 남은 가운데 상임위원장 임기를 4.5개월씩 나눠 맡는 것은 말이 되지 않고, 애초에 원내 합의를 어긴 것부터 문제라는 것입니다.
지난해 12월30일 남북 철도 공동조사에 참석한 박순자 국회교통위원장(앞줄 가운데)이 조명균 통일부장관(왼쪽), 김현미 국토교통부장관(오른쪽) 등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도라산역/사진공동취재단
박 의원이 당내의 압박에도 국토위원장직을 고수하려는 이유로 지역구인 안산의 숙원사업이었던 신안산선 복선전철 사업이 개통을 앞두고 있다는 점도 거론되는데요. 수도권 서남부를 관통(안산~시흥~서여의도)하는 ‘황금노선’이 될 것으로 기대되는 신안산선은 2018년 말 기획재정부의 심사를 통과해 6월 국토교통부에 접수가 됐고, 오는 8월에는 개통 착공식이 유력합니다. 17·18·20대 3선 의원 기간 동안 이 사업 초기 추진 단계부터 큰 관심을 보여 온 것으로 알려진 박 의원으로선, 내년 총선을 앞둔 가운데 치러지는 개통 착공식에 국토위원장으로 참석하는 ‘호재’를 놓치기 어려울 것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박 의원은 세월호 참사 2주기 직전인 2016년 4월13일 치러진 20대 총선에서 단원고가 있는 안산 단원 을 지역에서 새누리당 소속으로 국민의당과 민주당으로 표가 분산된 가운데 득표율 38%로 당선된 바 있습니다.
박 의원의 ‘버티기’ 여진으로 화살은 당 지도부를 향해서도 쏟아지고 있습니다. 당 지도부가 일찌감치 사전 조율에 나서거나, 통제력을 발휘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해 상임위원장직을 둘러싼 윤리위 제소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까지 이어졌다는 비판입니다. 홍문표 의원은 박 의원을 비판하며 “원칙과 합의를 내팽개친 박 의원의 행태에 원내 지도부가 좌고우면하지 말고 강력한 리더십을 보여달라”고 원내 지도부에 촉구하기도 했는데요. 특히 앞서 예결위원장 직을 놓고 친박근혜계로 꼽히는 김재원 의원과 비박계 복당파 출신인 황영철 의원 간 공방이 일었을 때는 원내 지도부에서 김 의원의 경선 요구를 수용하면서 사실상 김 의원의 손을 들어준 모양새가 되었던 것과도 비교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당 관계자는 “(국토위와 관련해) 원내대표 외에 당 대표 등도 조율에 나선 것으로 안다”고 전했지만, 결국 윤리위 제소라는 최악의 사태로 이어지며 지도부의 ‘통제력 약화’만 증명한 셈이 되었습니다. 이번 국토위의 경우엔 후보자들이 모두 비박계 출신 의원이라는 점에서 계파 갈등으로 보긴 어렵지만, 앞서 산자위와 예결위 등에서 잇따른 잡음이 이어졌던 것까지 감안하면 전체적으로 지도부의 리더십에 대한 ‘이상신호’로 보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로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황 대표 쪽에선 장외투쟁 막바지 ‘설화’에 휩싸인데다 홍문종 우리공화당 공동대표의 탈당으로 보수 쪽 이탈 움직임이 가속화되면서 이렇다 할 정치력을 발휘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라는 분석도 나옵니다. 박 의원의 지역구가 상대적으로 자유한국당에게 ‘험지’인 수도권이라는 점도 ‘내부 단속’을 어렵게 만든 요인으로 꼽힙니다. 또다른 친박계 의원은 “지역구에 당 내 경쟁자가 없어, 박 의원이 설마 공천을 가지고 어떻게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습니다.
한편 잇따른 상임위 갈등을 기화로 계파 갈등이 노출되면서 앞으로 지도부의 ‘통합 전략’에도 빨간 불이 들어왔습니다. 한 비박계 의원은 “당 내 사무총장, 예결위원장 등 핵심 요직을 친박계가 차지한데다, 여의도연구원장직을 놓고도 친박계에서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결국 공천을 앞두고 유리한 판을 짜려는 것 아니겠느냐”며 “당에선 중도 확장을 말하고 있지만, 총선 선거전략에 대한 우려도 커져 가는 상황”이라고 전했습니다.
정유경 기자 edg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