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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운영위, ‘블랙리스트’ 파려다 ‘블랙코미디’ 된 순간들

등록 2019-01-01 11:27수정 2019-01-09 15:33

정치BAR_정유경의 오도가도_‘봉숭아 학당’보다 웃겼던 2일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왼쪽)과 조국 민정수석이 31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운영위원회에 출석해 위원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왼쪽)과 조국 민정수석이 31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운영위원회에 출석해 위원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과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은 새해를 국회에서 맞이했습니다. 청와대 특별감찰반 논란을 다룬 국회 운영위원회가 2018년 12월31일 오전부터 열려 2019년 1월1일 자정을 넘겨서까지 이어진 까닭입니다.

여야 의원들은 마이크가 꺼졌는데도 목소리가 들릴 만큼 고함치며 밤 늦도록 옥신각신 다퉜지만, 때때로 공방을 벌이던 이들조차 웃음을 참지 못한 순간도 있었습니다. 지켜보는 이들조차 ‘황당함’에 쓴웃음을 머금었던 공방들을 모아봤습니다.

■ “새누리당 비례대표 23번”의 반전 후폭풍

이번 운영위에서 가장 큰 화제가 된 장면은 ‘김정주 녹취록’과 관련한 반전이었습니다. 이만희 자유한국당 의원은 이날 오후 김정주 전 환경부 산하 환경기술본부 본부장이 이른바 ‘환경부 블랙리스트’ 문건 때문에 퇴사했다면서 녹취록을 공개했다가 낭패를 봤습니다.

이만희 “조국 수석, ‘환경부(공무원들에게) 한번도 그만두라고 한 적 없다, 임기 존중하겠다’고 했죠? 23명 중 그만둔 1명입니다.”

(김정주 녹취록 재생) “저는 환경분야에서 20년간 종사해 온 환경부 환경산업기술원에서 근무한 김정주이고, 블랙리스트의 가장 큰 피해자입니다 (…) 2017년 8월30일, 환경부와 기술원 노조, 환경노동위원회 여당 의원의 집요한 괴롭힘과 인격적 모독, 폭행, 허위사실 유포로 정든 직장을 떠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블랙리스트 명단에 오르면서 도저히 사퇴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서 사퇴했고, 지금도 그때의 충격으로 약을 먹지 않고서는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이만희 “잘 들었죠? 수석님한테 묻는 것이다.”


조국 “이런 문건을 지시한 적도, 보고받은 적도 없다고 몇번이나 말씀드렸다.”


이만희(목소리 높이며) 내로남불의 디엔에이(DNA)가 뼛속까지 들어있는 정권, 거짓과 위선이 판친다.”

이만희 의원의 ‘큰소리’는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김종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저분이 새누리당(자유한국당의 전신) 비례대표 23번인데 무슨 낙하산 인사 피해자라고, 폭로라고 하는 거냐”고 비판했습니다. 증언의 신뢰성에 문제를 제기한 겁니다.

게다가 임종석 비서실장은 “확인해 보니 이만희 의원이 말씀하신 김정주란 분은 3년 임기를 정상적으로 마쳤다. 퇴임사까지 정상적으로 마치고 퇴임한 걸로 확인했다”고 밝혔습니다. 순간 민주당 의원석에서는 실소가 터져나왔습니다. 김 본부장은 2014년 8월부터 2년 임기의 본부장을 하며 2016년 4월 총선 당시 새누리당 비례대표를 신청했고, 낙선한 뒤에도 1년 임기를 연장해서 3년을 꽉 채우고 퇴임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자유한국당 쪽에선 황급히 “자리를 지키는 데 고통과 인내와 인격적 모멸감 느껴야 한다면 그 또한 블랙리스트에 해당할 수 있다”(전희경 의원)고 맞섰지만, 황망해진 분위기를 반전시키기엔 역부족이었습니다.

박경미 민주당 의원은 “국회에서 섣달 그믐날 하루종일 ‘블랙리스트’라고 떠든 환경부 문건은 실은 공공기관 경영정보공개시스템 ‘알리오’에 다 공개돼 있는 내용이다. 거론된 24개 직위 중 상당수는 임기 만료, 혹은 초과 근무했고 임기 전 퇴직은 소수에 불과하다”며 “블랙리스트 아닌 블랙코미디”라고 꼬집었습니다.

■ 김종민 의원의 ‘원맨쇼’

이날 눈에 띄는 활약을 펼친 의원 중 하나는 ‘구수한 입담’을 보여준 김종민 의원이었습니다. 김 의원은 상대쪽을 끈질기게 비판하면서도, 특유의 ‘너스레’로 회의장에 때때로 웃음이 터지게 했습니다.

이날 오후 김 의원은 “존경하는 김도읍 의원님 법사위에서 보면 정말 잘하시고, 어디서 그런 공부를 해오셨는지 법안 하나 꼼꼼하게 챙기시고. 그런데 오늘 질의하는 거 보니까 아무것도 없다. 이거 왜 하자고 그랬는지 모르겠다”며 야당의 김을 빼는 것으로 포문을 열더니, 연달아 ‘김정주 녹취록’ 반전을 터뜨리며 자유한국당을 정신없이 몰아쳤습니다.

충청도 사투리가 섞인 그가 “이만희 의원님 어딨나, 이 정도 갖고 폭로라고 하냐”,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 영상을 틀면서) 영상 찍는 이유가 뭐냐, 하니 ‘먹고 살려고’ (대답하며) 저렇게 국민을 놀린다. 술자리 방담감도 안 되는 것”, “(야당에서 박근혜 정부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근무한) 조응천 의원이 김태우(전 청와대 감찰반원)하고 똑같다고 하는데, 조 의원이 운영위원이 아니라서 다행이다. 조 의원이 비리 혐의자냐? 그 때 무슨 사고를 쳤냐”고 능청스럽게 반문할 때면 회의장의 속기사조차 웃음을 참지 못했습니다.

“강효상 의원(자유한국당)이 너무 자주 의사진행 발언을 한다”고 항의하는 서영교 민주당 의원 곁에선 “이건 (의사진행발언이 아니라) 의사방해발언”이라고 거들었고, ‘김태우 전 수사관의 얼굴을 자료화면으로 공개한 건 문제’라고 야당 의원들이 지적할 땐 “(자유한국당 주장으로는) 공익제보자 아니었냐”고 눙치기도 했습니다.

한편 운영위 정회 중에도 우윤근 주러시아 대사 비위 의혹에 대한 청와대의 조처를 이해할 수 없다는 야당 의원들을 열심히 설득하던 그는 답답했는지 “아니 우윤근이 돈 받을 사람이야 솔직히? 다 알잖아. 제가 러시아에 전화할까? 오라고?”라고 말해 의원들이 웃기도 했는데요. 회의가 재개되자 그는 자유한국당 의원들에게 맞춤한 ‘최재경 예찬론’ 전략을 펼쳤습니다. “당시 (우윤근 사건을) 최재경이 수사했다. 민정수석도 했고, 중수부장 때 칼잡이로 유명했던 검사다. 그런 중수부장이 (무혐의로) 결론 낸 사항을 무슨 조국 수석이 하라 마라 할 수 있나?”

김종민 의원이 시종일관 김도읍 자유한국당 의원을 쳐다보며 둥그렇게 눈을 치켜뜨자, 부산에 지역구를 둔 김도읍 의원은 결국 “왜 내보고 그래”라며 폭소를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왼쪽)과 조국 민정수석이 31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운영위원회에 출석해 답변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왼쪽)과 조국 민정수석이 31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운영위원회에 출석해 답변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 “들어! … 요(YO)!”

임종석 비서실장과 조국 민정수석의 답변 태도를 두고 “오만하다”고 비판한 강효상 자유한국당 의원의 발언에 화가 난 박범계 민주당 의원은 ‘힙합 질의’를 선보였습니다. 항의하려고 의사진행발언을 신청한 그는 “마이크가 있다고 단정적으로 이야기하냐. 국회 권한 남용이라고 본다”며 따졌는데요. 계속해서 야당 의원들의 야유가 이어지자 ‘버럭’ 하다 그만 ‘존댓말’을 놓칠 뻔했습니다. 재빨리 ‘요!’를 외쳐 위기를 모면한 그를 향해, 회의장에선 웃음이 와르르 쏟아졌습니다. 그 덕분(?)인지 논쟁은 더 길어지지 않았습니다.

박범계 “(…) 오늘의 현안보고가 제1야당 한국당이 문제제기했지만 아무것도 국민을 납득시키지 못하니까 두 분을 매도하는 겁니다. 이런 식은 곤란합니다.

(항의 소리 커지자) 좀 들어요!

(더욱 커지자) 들어! …요! (의원들 웃음 터뜨림)

그래서 여러분도 집권하신 경험 있고, 우리도 간신히 집권했어요. 근거 없이 얘기하는 오만, 무능 도저히 수용할 수 없고 용납할 수 없습니다. 강효상 의원님 그게 뭡니까 (후략) ”

한편 이날 한국당은 “답변은 필요없다”는 태도를 종종 보여 빈축을 사기도 했는데요. 전희경 의원은 이날 저녁 재개된 보충 질의에서 ‘청와대 인사 7대 원칙’에 대해 반박하면서 “기회 주시면 답변하겠다”는 조국 수석의 답변을 거부했습니다. 또 “꼭 동영상을 보라”며 신재민 전 사무관의 동영상을 틀기도 했고요. 전 의원이 기존의 언론 보도에 대한 확인, 김태우 수사관에 대한 의견 표명 등 자신의 견해만 밝히자 홍영표 운영위 위원장으로부터 “(질의 시간에는) 질의를 하라”는 제지를 받았습니다.

■ “화장실도 못 가게 해”

이날 우윤근 주러시아 대사 비위 논란은 이날 가장 ‘반복된’ 화두였습니다. 조국 민정수석 등은 여권 인사라서 묵살한 것이 아니며 박근혜 정부 시절 검찰에서도 혐의가 없다며 기소하지 않은 사안이어서 검찰의 판단을 따른 것이라고 거듭 설명했는데요.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이를 이해할 수 없다며 청와대 쪽 설명을 듣기를 ‘거부’해 이날 회의가 자정을 넘기게 되었습니다.

다음은 급기야 홍영표 위원장이 ‘폭발’했던 순간입니다.

홍영표(야당 의원들이 조국 민정수석 해명에 항의하자) 우윤근 러시아 대사 건에 대해 열번쯤 질의가 나온 것 같습니다. 저같은 사람은 다 이해되고 해명되는 것 같은데, 계속해서 (야당 의원들이) 질의를 하시니까 그것에 대해서는 설명을 들어야 할 것 아니에요? (민주당 의원들 웃음) 답변을 하려면 길게 한다고 못하게 하고, 말을 한번 처음부터 끝까지 들어보세요, 문제가 되는지 아닌지.”


조국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나경원 “위원장님! 지금 엉터리같은 답변을 계속 하니까 하는 말인데…”


정양석 (조국 바라보며) 청와대 대변인실에 가서 하세요!”


홍영표 “우윤근 대사 비리 혐의가 있는데 박근혜 정부 검찰에서 조사를 안 했다, 그게 문젠데 왜 조국 수석은 가만 뒀냐, 그 이야기 아니에요? 그러면 해명을 해야지.”


김도읍 “그러면 문재인 정부에서는 (수사를) 해야죠! 안 하면 그게 이상한 거에요.”


서영교 “아니 고발도 안 했는데 무슨 수사를 합니까?”


김도읍 “인지(수사)도 있어요!”


정양석 “감찰은 무슨 고발이 들어와서 감찰했어요?”


홍영표 “질문을 하셔놓고 답변을 하면 자르잖아요. 사실관계를 육하원칙에 따라 이야기하면 듣고 나서 판단하셔야 할 거 아닙니까? (항의 이어지자) 좋습니다. 야당 의원들이 듣기 싫다니까 그만하시는데요, 다음번에 질문 나오면 제가 한 30분 시간 드릴테니까 소상히 하십시오.”


나경원 “위원장님 너무하시네요.”


홍영표 “그럼 청와대 나온 사람들은 답변도 못해요?”


정양석 “뭘 못해요? 뭐가 설득력이 있습니까 지금?”


서영교 “왜 부르셨어요 그러면?”


정양석 “이걸 확인하려고 불렀어요! 지금 대통령 지지율이 이 모양인데 조국 수석이 뭐가 당당해요, 이렇게 답변해서 우리를 이겼습니까? 국민을 이길 수 있어요?”

한편 이렇게 여야 의원들과 위원장이 옥신각신하는 동안, 조심스럽게 손을 든 임종석 비서실장은 “민정수석이 배탈이 나서 화장실에 다녀오겠다”고 청했지만, 격론에 빠진 위원들은 한동안 듣지 못한 채 논쟁을 이어갔습니다. 이후 나경원 원내대표의 계속된 항의에 화가 난 홍영표 위원장이 “자 우리 나경원 (원내)대표께서 아까부터 말하는 이 부분에 대해 (조국 수석이) 답변해 보세요!”라며 비로소 조국 수석을 바라본 덕분에, 조 수석은 겨우 화장실을 다녀올 수 있게 됐습니다.

조국 민정수석이 31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운영위원회에 출석해 업무보고를 위해 단상으로 향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조국 민정수석이 31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운영위원회에 출석해 업무보고를 위해 단상으로 향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물론 정회 뒤 각자 불만의 목소리도 있었습니다.

나경원 “회의 시작한 지 한시간 만에 무슨 정회에요? 화장실 다녀올 때까지 기다려요. 한 시간 만에 정회할 거면 회의를 하지 말지 그럼.”

윤준호 “무슨 화장실도 못가게 해. 봉숭아 학당이야?”


‘봉숭아 학당’ 보다 더 웃긴 국회라는 ‘오명’, 올 새해엔 벗을 수 있을까요?

정유경 기자 ed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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