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29일) 남북이 판문점에서 만나 ‘2018 남북 정상회담 준비를 위한 남북 고위급회담을 합니다. 지난 1월9일 극적으로 남북 고위급 인사들이 만나 북한의 평창겨울올림픽 참가와 관련한 구체적인 합의를 이뤄낸 지 80일 만입니다. 올해 첫번째 고위급회담은 남쪽 지역인 평화의집에서 열렸기 때문에, 이번에는 북쪽 지역인 통일각에서 열립니다.
4월 말 남북 정상회담도 한 달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은 판문점 남쪽 지역인 평화의집에서 만날 예정입니다. 남북이 합의한다면 앞으로 분단의 상징인 이 판문점에서 남북 간 회담이 정례적으로 열릴 수도 있습니다.
27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모습. 가운데 쪽에 나무들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 통일각(초록색 지붕)이 보인다. 판문점/노지원 기자
4월 말 손님맞이 준비에 바쁜 ‘평화의집’
남북 정상회담 한 달여 전, 고위급회담이 열리기 바로 이틀 전인 27일 오전, 판문점 남쪽 지역을 찾았습니다. 남북 간 회담을 열기 위한 목적으로 1989년 현재 위치에 새로 지어진 3층짜리 건물 ‘평화의집’은 4월 말 찾아올 손님 맞을 준비에 분주한 모습이었습니다.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평화의집 안에 있는 회담 관련 시설 이곳 저곳을 점검하고, 새 단장이 필요한 곳곳을 고치느라 정신이 없다고 판문점 관계자는 전했습니다. 평화의집 현관에는 파란색 작업복을 입은 인부 5∼6명이 건물 안팎을 오고 갔습니다. 건물 앞에는 청소나 공사에 필요한 도구들이 놓여있었습니다. 평화의집 정문은 활짝 열려 있었습니다. 한 달 뒤면 그 문으로 남북 정상이 들어갈 것입니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통일부 남북회담본부 누리집 갈무리.
이날 판문점 남쪽 지역인 자유의집, 평화의집은 물론 북쪽 지역인 판문각, 통일각에도 관광객은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평소 같으면 ‘분단의 상징’을 둘러보기 위해 방문한 내·외국인들로 북적였을텐데 말입니다. 지난해 판문점 남쪽 지역을 찾은 이는 모두 7만5000여명, 북쪽 지역을 찾은 사람은 2만5000여명입니다. 판문점에 근무하는 남북회담본부 연락과 직원의 말을 들어보면 판문점에 오는 이들 10명 가운데 6∼7명은 외국인이라고 합니다. 남북 모두 비슷합니다.
1년9개월 만에 직통전화 다시 열린 뒤 바빠진 ‘자유의집’
평화의집에서 남서쪽으로 130m 떨어져 있는 자유의집은 어떨까요? 자유의집은 1998년 남북 사이 이뤄지는 연락 업무를 담당하기 위해 지어진 4층짜리 건물입니다. 이곳은 올해 초부터 매일 분주하게 돌아갑니다. 남북 사이를 잇는 직통전화가 있는 곳이라 그렇습니다.
판문점 남쪽, 북쪽 지역 사이에는 동케이블 160회선, 광케이블 24코아(동케이블 30만회선 이상의 용량)가 땅 밑으로 연결돼 있습니다. 이 가운데 현재 남북은 합의에 따라 33개 회선을 사용합니다. 자유의집과 판문각을 잇는 전화선은 모두 5개 회선입니다.
지난 1월3일 오후 3시34분께 경기 파주시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안 남쪽 자유의집에 설치된 ‘남북직통전화’로 우리 쪽 연락관이 북쪽과 통화하고 있다. 통일부 제공
2016년 2월부터 1년 9개월 동안 끊겼던 직통전화가 다시 열렸습니다. 지난 1월1일 김정은 위원장이 신년사에서 남북관계 개선 의지를 밝혔고, 이틀 뒤인 3일부터 수화기 너머로 북쪽 연락관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판문점 자유의집 2층에 있는 남북연락사무소 안 작은 방에 직통 전화가 놓여 있는데요. 책상 위엔 사전이 하나 있습니다. ‘조선말큰사전’입니다. 남쪽 연락관이 북쪽 연락관과 대화하다 종종 알아듣기 어려운 단어가 나오면 찾아보는 용도입니다. 이제 다시 사전을 펴볼 일이 생겼습니다.
판문점에 근무하는 남북 연락관의 하루도 분주해졌습니다. 직통 전화를 통해 북쪽과 연락을 주고 받느라 아침부터 저녁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습니다. 연 원래 근무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지만, 최근 세 달 동안 제 시간에 퇴근해본 적이 거의 없다고 할 정도인데요. 원래 해가 진 뒤에는 판문점에서 나와야 하지만, 남북이 밤늦게까지 연락을 주고 받는 일이 잦아져 깜깜해진 뒤 집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합니다.
이곳 관계자들은 “작년과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다”, “연장 근무 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일한다는 사명감으로 열심히 일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4월말 김정은 위원장은 어떻게 군사분계선을 넘을까?
판문점 자유의집 옥상에 올라가 북쪽 지역을 내려다보면 똑같이 생긴 하늘색 건물 3개가 보입니다. 왼쪽부터 중립국 감독위원회 회의실, 군사정전위원회 본회의실, 군사정전위원회 소회의실입니다. 이 세 개 건물은 ‘임시(Temporary)’의 첫 글자를 따 티원(T1), 티투(T2), 티쓰리(T3)라고 불리는데요. 회의실은 남북이 공동으로 사용한다고 합니다. 군사분계선은 회의실을 관통하지만, 이 안에서 만큼은 남북 구분없이 자유롭게 다닐 수 있다고 하네요.
27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서 남쪽 군인들이 경계를 서고 있다. 왼쪽부터 차례대로 중립국 감독위원회 회의실, 군사정전위원회 본회의실, 군사정전위원회 소회의실이다. 이 세 개 건물은 ‘임시(Temporary)’의 첫 글자를 따 티원(T1), 티투(T2), 티쓰리(T3)라고 불린다. 이 건물들 중앙에 군사분계선이 흐르고 있다. 건물과 건물 사이 중앙에 얕게 솟아있는 선이 군사분계선이다. 판문점/노지원 기자
군인을 제외한 회담 대표 등 민간인이 남쪽으로든 북쪽으로든 도보로 군사분계선을 넘을 때는 모두 티원과 티투 사이를 지나게 됩니다. 군인은 티투와 티쓰리 사이로 군사분계선을 넘습니다. 차량으로 군사분계선을 넘을 수도 있습니다. 남쪽 자유의집 오른쪽에 길이 하나 있는데요. 1998년 6월 당시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준비한 소 500마리가 실린 트럭 50대가 이 길로 군사분계선을 넘었습니다.
1998년 6월 소떼를 태운 트럭이 군사분계선을 넘는 모습. 남북회담본부 누리집 갈무리.
4월 말 김정은 위원장은 판문점 북쪽 지역에 놓인 ‘72시간 다리’를 건너 판문점에 들어올 것입니다. 만약 김 위원장이 걸어서 군사분계선을 넘는다면, 티원과 티투 사이를 통해 남쪽 지역으로 들어오게 됩니다. 만약 차량을 타고 이동한다면 20년 전 ‘방북 소떼’가 이동했던 그 길을 통해 넘어올 수도 있습니다. 김 위원장의 동선은 남북이 합의한 뒤 확실히 정해집니다.
2012년 3월 판문점을 방문한 김정은 당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남북회담본부 누리집 갈무리.
남북회담본부는 판문점에서 남북 당국 간 회담이 모두 355차례 열렸다고 밝혔습니다. 이 가운데 남북 정상회담 관련 실무회담은 모두 13차례입니다. 남쪽 평화의집에서는 1994년(3차례)과 2000년(4차례)에 모두 7차례 열렸고, 북쪽 통일각에서는 같은 해 각각 2차례, 4차례씩 모두 6차례입니다. 29일 열리는 남북 고위급회담은 2018 남북 정상회담 준비를 위한 첫 실무회담인데요. 올해 이러한 회담은 판문점에서 몇차례나 더 열릴까요. 한반도 정세가 급변하고 있는 만큼 신기록을 세울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판문점/노지원 기자
z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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