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삼지연관현악단이 평창겨울올림픽을 축하하기 위해 8일, 11일 각각 강원도 강릉과 서울에서 특별공연을 펼쳤습니다. 15년 만에 방남한 북한 예술단에 대한 관심이 무척 뜨거웠습니다. 저도 특별공연을 보고 싶어 응모를 했지만 높은 경쟁률로 ‘광탈’(빠르게 탈락)했습니다. 대신 녹화방송으로 공연을 즐겼는데요. 공연을 보면서 든 궁금증을 기사로 풀어봤습니다.
■ 북한의 예술단, 그리고 음악정치
북한에서 음악은 인민들에게 북한의 주체사상을 가르치고, 체제를 선전하는 도구로 중요하게 활용됩니다. 음악, 예술은 체제 선전 그 자체이고, 사상이 담기지 않은 음악은 있을 수 없습니다. 북한은 스스로 ‘노래로 고난을 극복하는 나라’라고 선전하기도 합니다. 북한에 다양한 예술단이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북한의 주요 예술단으로 조선인민군 공훈국가합창단(1947년), 왕재산예술단(1983년), 보천보전자악단(1985년), 만수대예술단 삼지연악단(2009년), 은하수관현악단(2009년), 모란봉악단(2012년), 청봉악단(2015년) 등이 있습니다. 삼지연악단과 왕재산예술단은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이 직접 지시해 조직됐습니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은 2011년 12월 아버지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한 뒤 거의 반년만에 모란봉악단을 창단시켰습니다. 집권한 뒤 가장 처음으로 한 일이 악단 창단일 정도이니, 북한이 음악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짐작할 수 있겠죠? 이 예술단이 연주하는 음악 가운데는 김일성 주석,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그리는 노래, 사회주의 혁명을 찬양하는 노래 등 선전·선동을 위한 음악이 많습니다. 통일 관련 노래, 서정적인 감성이나 일상생활을 주제로 한 생활가요, 북한의 옛 민요나 가곡을 재구성한 노래도 있습니다.
전영선 건국대 통일인문학연구단 HK연구교수는 〈NK POP: 북한의 전자음악과 대중음악〉이라는 책에 “북한에서 혁명적인 노래가 반드시 필요한 것은 주민들에 대한 사상 교양을 위한 중요한 수단이기 때문”이라고 썼습니다. “북한 체제에 도움이 되는 구체적인 사실이나 최고지도자와 관련된 역사적인 사실을 소재로 하여 체제에 부합하는 노래를 많이 생산하여 보급하고 확산하면 주민들을 체제에 순응하는 인간형으로 교양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라는 설명입니다. 그는 “예술가도 체제 선전, 곧 북한의 ‘사회적 공익’을 위해 존재한다”며 “남쪽에 알려진 ‘휘파람’ 등 생활가요가 북한 내부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0.01% 정도 밖에 안된다. 중앙당은 매년 올해 창작 목표를 제시하고, 만들어지는 노래는 모두 국가 검열을 거친다”고 했습니다.
이들 예술단은 각종 당·정부·군 관련 행사, 국경일 등에 주로 공연을 펼칩니다. 당 창건 기념일이나 김일성 주석,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생일을 기념하는 축하공연이 대표적입니다. 예술단끼리 합동공연을 펼치기도 합니다. 2017년 12월30일 공훈국가합창단과 모란봉악단은 당 제5차 세포위원장대회를 축하하기 위해 함께 공연했고, 2016년 1월1∼5일엔 왕재산예술단과 청봉악단이 신년 경축음악회 무대에 함께 올랐습니다. 이 외에도 합동공연 사례는 많습니다. 북한이 이번에 평창겨울올림픽을 축하하기 위해 남쪽에 보낸 삼지연관현악단도 각종 예술단 출신 구성원들이 합쳐진 ‘프로젝트 그룹’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
▶관련기사: 삼지연 관현악단의 스타들)
북한 삼지연관현악단이 8일 오후 강원도 강릉아트센터 사임당홀에서 ‘평창동계올림픽·패럴림픽 성공 기원 특별공연’을 하고 있다. 하얀색 연미복을 입은 장룡식 공훈국가합창단 단장이 지휘를 하고 있다. 강릉/사진공동취재단
■ 남쪽에 나타난 ‘국보급’ 예술가들…장룡식과 윤범주
이번 삼지연관현악단의 공연에서 혹시 하얀색 연미복을 입은 남성 지휘자를 주목하셨나요? 지휘자로 나선 장룡식 공훈국가합창단 단장과 윤범주 삼지연악단 지휘자는 ‘국보급’ 예술가로 북한에서는 아주 유명한 인물입니다. 장룡식 지휘자는 북한 예술가로서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칭호인 인민예술가로 인정 받았습니다. 그를 잘 아는 탈북 피아니스트 김철웅 서울교대 연구교수는 장룡식 지휘자에 대해 “김일성 상까지 받은 사람으로 인민예술가를 넘어서는 국보급 지휘자”라며 “북한에서 처음으로 금관악기에 재즈 화성을 도입하는 ‘혁신’을 한 사람이다. 개인 창작 음악회도 열었다. 원래 북한에서는 개인 이름을 달고 리사이틀을 할 수 없게 돼 있는데, 그걸 할 정도이니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겠나. 이 창작회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와서 보기도 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주로 삼지연관현악단이 남쪽 노래를 연주하고 부를 때 오케스트라 지휘를 담당했던 윤범주 지휘자도 눈여겨 볼 만합니다. 그 또한 공훈예술가에 이어 더 높은 칭호인 인민예술가 자격까지 받았습니다. 이번 특별공연에서는 ‘사랑의 미로’, ‘다함께 차차차’, ‘당신은 모르실거야’ 등 다양한 남쪽 노래를 지휘했는데요. 그는 1970년대 북한 노동당 선전선동부 직속으로 출범한 칠보산전자악단(북극성으로 이름이 바뀜)의 창작실장을 지내며 남쪽 노래를 지휘, 편곡했다고 전해집니다. 남쪽 노래의 가사를 바꿔 대남방송용으로 사용하기 위해서입니다. 김철웅 교수는 “대남방송을 하려면 한국 사람들 귀에 익은 노래로 해야 하기 때문에 남쪽 노래를 쓰는 것”이라며 “칠보산전자악단은 주로 한국 노래만 부르는, 대남용 악단이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대남선전용이긴 하지만 수없이 남쪽 노래를 듣고 연구했을테니 윤범주 지휘자를 ‘남한 노래 전문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습니다.
그런데 남쪽 노래는 어떻게 북한으로 유입될까요? 삼지연관현악단이 다양한 남쪽 노래를 연주하고 불렀는데, 북쪽 사람들은 남쪽 노래를 잘 아는지 궁금합니다. 실제 북한 사람들에게 ‘제이(J)에게’ 등 1980∼90년대 남쪽 노래를 아느냐고 물어보면, 대체로 많이 알고 있다고 한답니다. 북쪽 주민들은 남쪽 노래를 ‘연변 노래’로 알고 공공연히 부른다고 전해지는데요. 남쪽 노래는 1980년대부터 중국, 연변 조선족 자치주 등에서 복제된 카세트 테이프 형태로 유입됐고, 최근에는 시디(CD)에 구워진 상태로 들어온다고 합니다.
■ 왜 ‘클래식’일까
이번에 방남한 삼지연관현악단은 114명 구성원 대부분을 오케스트라 단원(80명)으로 채웠습니다. 공연에서 다양한 국내외 클래식 연주곡을 한번에 연달아 연주하는 모습을 선보이기도 했습니다. 왜 하필 ‘클래식’일까요?
북한 예술단들은 서로 조금씩 다르지만 출발이 모두 클래식 음악이라는 측면에는 비슷합니다. 예컨대 삼지연악단은 정통 오케스트라에 가깝습니다. 은하수관현악단은 관현악기와 전통악기를 혼합해서 연주하고, 왕재산경음악단은 기존의 관현악에 전자 악기를 배합해 연주합니다. 음악적 기반이 모두 클래식인 겁니다.
북한에서는 스윙이나 재즈, 로큰롤, 디스코 등 다양한 장르의 곡을 연주하는 것이 금지돼 있습니다. 물론 최근 은하수관현악단이 스윙풍에 가까운 색소폰 연주를 하는 등 규제가 완화되고 있다고 전해지지만, 여전히 자유롭지 못합니다. 그 이유에 대해 전영선 교수는 “(북한에서는) 자본주의 전자음악은 ‘리듬을 위주로 귀청을 째는 듯한 이즈러지고 소란스러운 파열음과 불협화음, 광신적인 음으로 노래 자체를 기형화’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며 “이런 음악은 사람들의 ‘혁명의식과 민족자주의식을 마비시키며 그들을 부화타락한 정신적 불구자로 만든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습니다.
북한의 월간 잡지 <천리마>는 서구의 전자음악에 대해 “자본주의 나라들에서 전자악기로 연주되는 록과 디스코, 재즈와 같은 광란적인 음악은 사람들의 건전한 사상의식을 마비시키는 작용을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에 반해 클래식은 모든 음악의 기본 선율로 ‘음악의 본류’라 여겨집니다. 현대 음악처럼 리듬 변화가 심하지 않습니다. 북한은 인민들에게 계급의식과 공산혁명 의식을 높이기 위한 알맹이, 곧 가사를 효율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음악의 리듬을 활용하기 때문에 리듬 자체가 중심이 되는 현대 음악보다 클래식을 선호합니다.
하지만 클래식이라고 해서 모두 허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김철웅 교수는 지난해 1월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남북의 클래식 음악 환경에 대해 소개한 바 있습니다. (▶관련기사:
“로린 마젤이 놀랄만큼, 북 클래식 수준 높아요”) 그는 “북쪽도 남쪽과 같아요. 바이엘, 체르니, 쇼팽 에튀드는 똑같고, 동요를 편곡한 ‘아동단가’나 ‘혁명군놀이’를 친다는 게 좀 달라요. 대학에서는 쇼팽·리스트·그리그·무소륵스키·쇼스타코비치 등을 배웁니다. 라흐마니노프는 미국으로 갔다고, 바그너는 히틀러가 좋아했다고 금지곡이에요. 라벨·거슈윈도 금지인데, 드보르자크는 허용됩니다. ‘아메리카’ 등을 작곡했지만, 민족주의자라는 거죠”라고 말했습니다.
8일 오후 강원도 강릉아트센터 사임당홀에서 삼지연관현악단이 전자악기로 음악을 연주하고 있다. 강릉/사진공동취재단
■ 전자악기와 사이키 조명…‘혁신’ 중시 하는 북한
하지만 북한에도 분명 전자음악은 있습니다. 삼지연관현악단도 프로그램의 일부를 전자음악 연주로 구성했습니다. 보천보전자악단처럼 전자악기만으로 곡을 연주하는 예술단도 있습니다. 왜 서구의 전자음악을 배척하면서도 전자악단을 만든 것일까요?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북한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혁신’이라는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변화를 도모하는 한편, 서구의 물질은 배척한다는 원칙을 지키려 서양의 전자음악을 ‘조선식’으로 바꿔 새로운 장르를 만든다고 설명합니다. 외부에서 온 음악이나 악기라고 하더라도 ‘우리식’으로 재해석해 자본주의 사회의 전자음악과 차별성을 둔다는 뜻입니다.
전영선 교수는 “북한이 전자음악과 관련하여 이중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은 변하는 시대의 흐름을 역행하는데 한계가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며 “북한은 전자음악에 있어서 서구와의 차별화를 시도하여 북한 고유의 특색있는 전자음악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른바 북한에서 ‘조선장단’이라고 하는 ‘국악장단’을 활용한다는 점에서 차별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분석했습니다. 북한이 자기들만의 음악을 만들어 내는 데 대해 김철웅 교수는 “북한은 세상의 모든 소리를 구현해 낼 수 있는 신시사이저로 국악을 연주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성했다. 그리고 이를 ‘조선식 전자음악’이라 부른다. 현대화에 발 맞추려고 노력한 것이다”라고 설명했습니다.
■ 북한 노래는 ‘가사’가 중요!
앞서 설명했듯 북한 음악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가사’입니다. 당이 선전하고자 하는 사상을 얼마나 명확히 표현하는지에 따라 음악의 예술성을 평가할 수 있습니다. 북한이 가사를 강조하는 것은 체제 선전·선동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입니다. 예컨대 가사가 비유적, 추상적이라 무엇을 의미하는지 명확히 알 수 없어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면 이는 체제 유지, 보존에 위협이 될 수 있습니다. 과거 일제시대, 권위주의 정부 시절 문인, 예술가들이 사랑 노래에 빗대 현실을 비판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실제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주체문예이론의 확산을 위해 1991년 펴낸 책 ‘음악예술론’에서 좋은 음악의 조건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김 위원장은 “음악은 체제의 특성상 노동자들이 쉽게 감상할 수 있도록 내용과 표현, 형태가 쉬워야 하며, 음악이 우리 인민의 사상감정과 우리나라의 구체적 실정에 맞게 되자면 음악을 주체적 입장에서 창조적으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북한에서는 가사를 얼마나 중시하는지, 노래를 만들 때 가사를 먼저 공모하고 그에 맞게 작곡을 한다고 합니다. 예컨대 전자음악을 연주하는 보천보전자악단의 공연을 보면 당의 방침에 따라 리듬보다 가사를 우선시하는 북한식 음악이 주를 이룹니다. ‘보천보전자악단’, ‘왕재산경음악단’, ‘인민군협주단’, ‘만수대예술단’ 등 4개 단체가 발표한 76곡의 악보를 보면 김일성 부자를 찬양하는 음악이 52곡으로 68%를 차지하고 있다고 하네요. (<2017 북한이해>, 통일부 통일연구원)
8일 오후 강원도 강릉아트센터 사임당홀에서 ‘평창동계올림픽·패럴림픽 성공 기원 특별공연’을 하고 있는 북한 가수 김옥주와 송영. 강릉/사진공동취재단
■ 예술인도 ‘공무원’이다
혹시 눈치 채셨나요? 북한 예술단에 소속된 단원들은 각각 당이나 정부, 군에 소속돼 있습니다. 모란봉악단은 중앙당 소속이기 때문에 여기에 속한 예술가들은 모두 선전선동부 부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번에 방남한 현송월 모란봉악단 단장이 당 중앙위원회의 후보위원이라는 사실은 이미 언론을 통해 널리 알려져 있기도 합니다. 이번 삼지연관현악단 공연에서 메인 보컬을 맡은 가수 김옥주는 은하수관현악단, 청봉악단, 모란봉악단 등에 소속돼 공연을 한 가수이지만, 군대계급으로는 육군소좌에 해당합니다. 북한의 선전·선동의 핵심 가운데 하나가 음악, 예술이기 때문에 이를 담당하는 예술가도 국가를 이끄는 주요 인물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국가에서는 훌륭한 가수나 연기자에게 ‘공훈배우’, ‘인민배우’ 칭호를, 작곡·작사가에게 ‘공훈예술가’, ‘인민예술가’ 칭호를 줍니다. 이번에 삼지연관현악단 특별공연에서 무대감독을 맡은 작곡가 안정호도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가 준 인민예술가 칭호를 받았습니다.
노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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