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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정부질문 지각한 한국당, ‘송곳 질문’ 가능할까요?

등록 2017-09-12 11:23수정 2017-09-12 14:47

정치BAR_문재인 정부 첫 정기국회② 국회법 토막 상식
한국당 질문 요지, 48시간 전 정부 제출 못해 국회법 위반
정세균 국회의장 “국회 정상화의 큰 틀에서 허용”
1994년 48시간 규정 신설 “정부의 내실 있는 답변 위해”
여야의원들이 11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안에 대해 투표하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여야의원들이 11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안에 대해 투표하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가출 책임을 엄히 묻지 않을 수 없다. 자유한국당은 대정부질문에 참석할 권리가 없다.”(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11일 최고위원회 회의)

‘국회 보이콧’을 철회하고 정기국회 일정에 복귀하는 자유한국당을 향해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자유한국당은 대정부질문에 참석할 권리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여당 입장에선 자유한국당의 국회 보이콧이 명분이 없으니 당연히 이를 비판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우 원내대표는 왜 콕 집어 “대정부 질문에 참석할 권리가 없다”고 한 것일까요. 이는 국회법에서 규정한 대정부질문의 의미와 취지를 살펴봐야 이해할 수 있습니다.

“48시간이 모자라” 자유한국당의 ‘국회법’ 위반

우원식 원내대표의 발언은 정치적 ‘레토릭’이 아닙니다. 실제로 자유한국당이 대정부질문을 하면 ‘국회법’ 위반이 되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조항에 걸립니다.

◎국회법 제122조의2(정부에 대한 질문)

⑦질문을 하고자 하는 의원은 미리 질문의 요지를 기재한 질문요지서를 구체적으로 작성하여 의장에게 제출하여야 하며, 의장은 늦어도 질문시간 48시간 전까지 질문요지서가 정부에 도달되도록 송부하여야 한다.

⑧각 교섭단체 대표 의원은 질문 의원과 질문 순서를 질문일 전일까지 의장에게 통지하여야 한다. 이 경우 의장은 각 교섭단체 대표 의원의 통지내용에 따라 질문순서를 정한 후 이를 본회의 개의 전에 각 교섭단체 대표 의원과 정부에 통지하여야 한다.

즉 자유한국당이 국회법 절차에 따라 대정부 질문을 하려면 11일 본회의가 열린 오후 2시의 48시간 전인 9일 오후 2시까지 질문 요지를 국회의장에게 보내었야 합니다. 또 질문의원과 질문 순서를 질문일 전날인 10일까지 국회의장에게 통지했어야 합니다. 하지만 자유한국당은 11일 오전 11시를 넘겨 질문 의원과 순서·질문 요지를 국회의장실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물론 정세균 국회의장은 원내교섭단체 4당에 양해를 구하고 자유한국당이 대정부 질의를 진행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정 의장은 11일 오후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임명동의안 부결 직후 대정부질문 안건을 상정하면서 “국회법 위반이라는 지적이 있었다”면서도 “의장으로서는 국회 정상화의 큰 틀에서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모든 교섭단체가 참여한 채 대정부질문을 하기로 했다”고 밝혔습니다. 이에 대정부질문은 11일 오후부터 정상적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대정부질문, ‘사이다’와 ‘고구마’ 사이

대정부질문은 국회의원들이 국민을 대신해서 정치·경제·외교 등 국정 현안을 정부에 따져묻고 제도적 대책을 촉구하는 자리입니다. 과거 권위주의 정부 시절에는 ‘언로’의 역할을 했습니다. 언론 매체 수도 적고 언론 자유가 온전히 보장받지 않는 가운데, 국민들은 의원들의 ‘사이다 발언’에 후련함을 느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대정부질문에서도 ‘특유의 사이다 발언’으로 눈길을 끌었죠.

그런데 대정부질문이 ‘사이다’가 아니라 ‘고구마’로 전락하면서 “국민들을 답답하게 한다”는 지적이 제기됐고, 국회 안팎에서 개선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졌습니다. 이에 대정부질문은 1994년 6월 국회법이 개정되면서 국회법122조의2항의 ‘정부에 대한 질문’이라는 법률상 정식명칭을 얻었습니다. 이때 “48시간 전까지 질문요지서가 정부에 도달되도록 송부하여야 한다”는 조항이 포함됐습니다.

당시 ‘48시간 조항’은 정부 부처 공직자들이 국회에 나와 “알아보겠습니다”, “검토해보겠습니다” 같은 면피성 답변을 막자는 취지로 포함됐습니다. 정부가 사전에 질문을 예측할 수 있도록 보장은 하면서도, 의원들의 질문에 성의 없게 답변하지 말라는 취지였죠.

이는 대정부질문이 언제부터인가 정부 정책에 대한 날카로운 질의 대신, 여야 정쟁으로 막말·고성이 오가고, 의원들의 지역구 민원을 이야기하는 자리로 변질됐기 때문입니다. 당시 국회는 의원들의 대정부 질문시간을 1인당 30분에서 15분으로 줄이며(현재 20분) 대정부 질문의 효율과 내실을 높이려고 하기도 했습니다.

1988년 7월8일 142회 임시국회 본회의 사회문화분야 대정부질문(19차) 일곱 번째 질의자로 나선 초선 노무현 의원(통일민주당)이 대림산업 이란정유소 참사 사건과 관련해 “힘없는 노동자 대신 너희 자식들을 현장에 보내라”는 등의 발언으로 주목받았다. 뒤는 국회부의장인 김재광 통일민주당 의원. 노무현 재단
1988년 7월8일 142회 임시국회 본회의 사회문화분야 대정부질문(19차) 일곱 번째 질의자로 나선 초선 노무현 의원(통일민주당)이 대림산업 이란정유소 참사 사건과 관련해 “힘없는 노동자 대신 너희 자식들을 현장에 보내라”는 등의 발언으로 주목받았다. 뒤는 국회부의장인 김재광 통일민주당 의원. 노무현 재단

국민 대신 물어보라는 건데…형식적인 답변과 되풀이되는 정치공방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2016년7월 5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박주선 국회부의장에게 국민의당 김동철 의원의 발언에 대해 항의하고 있다. 이날 김동철 의원의 대정부 질문 때 새누리당 이장우 의원등 고성과 야유로 김 의원의 질문을 방해하자, 김 의원이 반발하며 고성이 오갔다. 연합뉴스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2016년7월 5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박주선 국회부의장에게 국민의당 김동철 의원의 발언에 대해 항의하고 있다. 이날 김동철 의원의 대정부 질문 때 새누리당 이장우 의원등 고성과 야유로 김 의원의 질문을 방해하자, 김 의원이 반발하며 고성이 오갔다. 연합뉴스

물론 법과 제도가 정비된다고 구성원들의 의식이 따라오지는 않습니다. 이후에도 대정부질문에서 국무총리와 장관은 준비된 답변을 읽거나 “노력하겠다”, “검토해보겠다”는 말을 반복하고 , 의원들은 상대 당에 대한 공격이나, 자극적인 발언, 지역구 민원 해결에 대정부질문 시간을 보내는 악순환이 종종 되풀이되고 있습니다. 이에 허태열 전 새누리당 의원이 18대 국회에서 2009년 3월 ‘48시간’을 ‘대정부 질문일 5일 전’으로 바꾸는 국회법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하는 등(실제 개정은 안 됨) 대정부질문 개선 필요성에 대해서는 국회 안에서도 꾸준히 제기됐습니다.

미리 사전에 정부에 질문서를 보내다 보니 질문자나 답변자나 형식적인 질의응답을 하기 때문에 질문요지를 보내는 것이 좋지 않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정두언 새누리당 전 의원은 자신의 저서 <최고의 총리 최악의 총리>에서 “질문요지서는 국회에서 정부로 형식적으로 보내는 요식행위일 뿐이다”라며 “대정부 질문 기간중에 행정부는, 특히 총리실은 질문서를 사전에 입수하기 위해 혈안이 된다. 행정부 공무원들은 밤을 새워 답변하고, 총리를 비롯한 국무위원들은 답변서를 읽어내려간다”고 지적했습니다.

대정부질문의 한계와 문제점에 대한 다양한 시각이 존재하지만, 원칙적으로 대정부질문은 국민들의 자신을 대신해 의원들에게 정부에게 따져 물어보라고 권한을 위임한 것입니다. 자유한국당이 김장겸 <문화방송(MBC)>사장의 체포영장에 발부에 반발해 ‘국회 보이콧’을 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국민들로부터 위임받은 ‘본업’까지 내팽개쳐서는 지지를 받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이번 정기국에선 ‘고구마’ 대신 ‘사이다’같은 질의응답으로 답답한 국민들의 속을 후련하게 하는 대정부질문이 되길 기대해봅니다.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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