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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님이 막말로 튈 때 우리는 허리가 휜다

등록 2016-10-18 15:42수정 2016-10-18 16:07

정치BAR_보좌관 Z의 여의도 일기
국회의원들은 “국민의 공복이 되겠다”고 다짐합니다. 머슴이 되고픈 의원의 손과 발과 머리가 되는 사람들이 보좌관입니다. 정치부터 정책까지 의원과 가장 가까이에서 호흡하며 생사고락을 같이하는 사람들입니다. 정치 현장 최일선에서 뛰고 있는 익명의 여러 보좌관들이 보고 듣고 느낀 ‘정치의 속살’을 전합니다.



또 한 건 터졌다. 당 대표 선거까지 나왔던 4선의 한선교 새누리당 의원이 국정감사장에서 야당 여성 의원에게 “내가 그렇게 좋아?”라고 물었다. 국회의원 본인이야 스스로 사고친 것이니 욕먹고 사과하는 수고를 치르는 게 당연한 일일 터. 그러나 의원들 뒷감당 여러 건 해봤던 사람으로서, 나는 국회의원보다는 그 의원실 보좌관들이 겪어야 할 일들이 머릿속에 주르륵 펼쳐졌다.

영감이 사고치면 의원실 문부터 걸어 잠그고

상황 정리를 위해서는 일단 항상 열려 있는 의원실 문을 닫는 게 우선이다. 기자가 불쑥 찾아오거나, 선배나 동료 국회의원들이 찾아와 추궁하는 일을 막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다. 그렇다고 일이 해결되지는 않지만 정리할 시간을 벌 수는 있으니까. 문은 닫아 사람은 막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의원실로 걸려오는 전화까지 막을 수는 없다. 방송에서 영감(의원을 이르는 보좌관들의 은어) 이름이나 얼굴이 한 번씩 나올 때마다 의원실로 걸려오는 전화는 늘어난다. “지역구 주민인데 창피하다”는 전화부터 마구잡이로 욕부터 하고 보는 전화, 영감을 잘 아는 지인이라며 조언하는 전화까지 다양하다. 의원실의 비서진 모두 전화 한 통씩 붙잡고 “죄송하다”, “잘 알겠다”며 굽신굽신 사과한다. 전화 한번 잘못 받아 보좌관 성질대로 대꾸했다가는 영감의 막말에 싸가지 없는 보좌관의 전화까지 더해져 사건이 커질 수도 있기 때문에 인내심을 가지고 대응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억울함을 참을 수 없다면 전화선을 빼놓고 안 받는 게 상책일 때도 있다. 사건이 회자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항의 전화는 늘어나고 보좌진들의 시름은 깊어진다.

뒤처리도 보좌관 몫

그다음은 기자들의 전화. 영감이 사고치고 난 이후 보좌관이 가장 먼저 처리해야 하는 일은 빗발치는 기자들의 전화다. 이럴 때면 영감은 평소 잘 아는 기자들의 전화조차 피하기 일쑤다. 그러니 친분이 없는 기자들이 그저 ‘의원님 입장’을 듣기 위해 연락을 취하면 그 쏟아지는 전화를 받아내는 것은 보좌진 몫이다. 의원실에 꽁꽁 숨은 영감을 “지역 일정 가셨다”고 둘러대기도 하고 “어디 계신지 모른다”고 얼버무리기도 한다.

이미 사고가 났다면 수습을 어떻게 하느냐가 제일 중요하다. 의원실에서는 이 일을 어떻게 마무리하면 좋을지 의원과 보좌진 간에 대책회의를 벌인다. 사과용 기자회견문을 써서 톤 조절을 하고, 에스엔에스(SNS)에 쓸 정교한 ‘워딩’을 정리한다. 사과 한번 잘못하면 일이 더 크게 번지기도 하기 때문에 단어 하나 고르는 일도 심사숙고해야 하는 것이 바로 이때다. 빠르고 간결한 사과로 정리하는 것이 가장 좋은 해결책이지만 간혹 “내가 뭘 잘못했어?”라며 버티는 영감을 만나면 어디 숨고 싶은 심정이다.

물론 이렇게 일이 잘 수습되었다고 해도 잊히는 것은 아니다. 영감의 이름을 검색할 때마다 ‘○○○ 의원 막말 동영상’ 같은 연관 검색어가 끝까지 따라다니기 때문이다. 언제고 비슷한 막말이 회자될 때면 불쑥 과거의 동영상이 리플레이 되며 새삼 조명을 받기도 한다. 한 번 막말은 영원한 흔적을 남기는 것이다.

막말로 셀럽 되면 본인은 좋을지 몰라도

그렇지만 막말이 의원들에게 부정적인 영향만 끼치는 것은 아니다. 막말의 후유증에도 불구하고, ‘정치인 뉴스는 부고 빼고는 다 좋다’는 얘기가 맞는 것인지, 잘 모르던 국회의원이 일약 스타덤에 오르기도 한다. 국회의원을 많이 아는 보좌관이나 정치부 기자들도 점잖은 초선 의원들까지 다 알 수는 없는 일. 연일 국회의원 이름이 언론과 방송에 오르내리면 누구라도 그 이름 석 자 외울 수 있게 마련이다.(‘마이크로소프트(MS) 오피스 질의’ 전과 후의 새누리당 이은재 의원의 인지도 차이를 비교해보라.)

‘막말=인지도 상승’이라는 공식을 여실히 보여주는 인물이 바로 미국 대선 후보 도널드 트럼프 아닐까 싶다. 그도 막말이 아니었다면 공화당의 대선 후보까지 될 수 없었을 거다. 평소에는 차분하고 조용한 성격의 국회의원들도 텔레비전 화면에 나오면 언성이 높아지고 거친 말을 쏟아내는 것도 막말이 효과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보면, 정치인의 막말은 본인들에겐 ‘존재감’을 알릴 수 있는 기회이고, 언론으로선 대서특필할 사건이 하나 생기는 셈이며, 보통 사람들에게는 술자리에서 잘근잘근 씹을 안줏거리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면도 있다. 그러나 보좌관에게는 그저 고통일 뿐이다.

의정활동 중에도 그러는데 안 보이는 데선…

최근엔 ‘막말’에 페널티를 주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시민단체에서는 ‘레드카드제’를 도입해 회의 출입 금지, 정치 퇴출이라는 강력한 제재 수단을 만들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한다. 나는 대찬성이다. 텔레비전에 출연해 막말하는 사람들이라면, 외부인들이 속사정 알 수 없는 의원실 안에선 어떠할지 상상이 되지 않는가? 의원실에서 벌어지는 ‘숨은 막말’로 고통받는 동료들을 수없이 봐왔던 나로선 막말에 더욱 엄정한 평가가 내려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민단체 같은 데에서 국감 우수의원만 평가하지 말고 ‘막말지수’도 평가해 정기적으로 발표하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동물국회’의 몸싸움도 사라졌는데, 이젠 막말도 없어져야 할 때다.

유권자님들, 당부드립니다. 정치쇼를 원하는 게 아니라면 제발 막말하는 정치인들에겐 표를 주지 마세요!

사고 처리가 골 아픈 한 보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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