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는 사회 다양한 세력이 경쟁하고 갈등하며 법을 만들어가는 현장이다. 지난 19대 국회에서는 1만7822개의 법이 발의됐고 7429개가 통과됐다. 하나의 법이 통과되는 과정에는 다양한 이해관계자와 여야 의원들의 논리·명분이 얽히게 된다. 이제 20대 국회의 막이 올랐다. 이 곳에서도 입법을 둘러싼 격전이 벌어질 터다. 19대 국회 막바지 쟁점 법안 중 하나였던 기업활력제고를 위한 특별법(원샷법) 통과 과정을 통해 법의 탄생 과정을 엿보고자 한다.
2015년 12월27일, 국회 의원회관 527호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의원 사무실.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산자위) 더민주 간사이자 위원장 대행인 그의 의원회관 사무실 안에서 고성이 흘러나왔다. 산자위 새누리당 간사인 이진복 의원이 부친상을 치르고 홍 의원을 만나러 들어간 자리. 이진복 의원은 기업활력제고를 위한 특별법, 일명 원샷법을 빨리 통과시켜야 한다고 홍영표 의원을 압박했고 홍 의원은 법안 심사를 제대로 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두 사람의 논쟁이 격해지자 재계의 각종 ‘협회’ 관계자들이 상기된 얼굴로 홍영표 의원실로 몰려왔다.
“아까 엘리베이터 앞에서 의원님께 설명드리기도 했는데요. 잘 좀 부탁드립니다.”
두 의원의 논쟁이 길어져 홍영표 의원 방에 들어갈 수 없자 협회 관계자들은 비서관에게 자료를 맡기고 나갔다. 그들은 바로 직전에 국회 정론관에서 원샷법 통과 촉구를 위한 기자회견을 마쳤다. 대통령마저 입법 촉구 서명에 참여한 ‘원샷법’ 갈등의 서막이었다.
_______ ‘정부 입법’이 ‘청부 입법’으로
기획재정부는 2015년 경제정책 방향을 발표하며 기업이 사업 구조를 재편할 때 절차를 간소화하고 세금을 깎아주는 등의 특례를 주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는 이에 맞춰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산업부) 장관과 주요기업 최고경영자(CEO)들과의 간담회에서 “사업재편 걸림돌이 되는 규제, 제도를 획기적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상법·세법·공정거래법에 규정돼있는 사업구조 재편 절차를 특별법 형식으로 ‘한번에 처리한다’는 의미에서 ‘원샷법’이라는 별칭을 얻은 이 법은, 대기업이 소규모 기업과 합병할 때의 추인을 주주총회가 아닌 이사회로 갈음할 수 있게 하는 상법 특례의 기준을 완화하는 등 사업재편을 위한 규제 수준을 낮추는 게 핵심 내용이었다. 기업 입장에선 비용과 시간 부담을 덜 수 있고, 정부는 경기 부진 타개책이라며 내놓을 수 있는 대안이 되는 법이었다. 수출 둔화와 경기 악화로 경제위기론이 대두되고 정부를 향한 비판이 점점 커지던 때였다.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014년 12월2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종합서울청사에서 '2015년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하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정부 부처는 경쟁적으로 원샷법의 정부 입법 작업에 뛰어들었다. 2015년 6월 기획재정부에 이어 7월9일에는 산업부가 수출 부진 대책의 일환으로 법안을 마련했다고 했다. 그러나 이날 원샷법 법안 발의의 주체는 산업부가 아니라 이현재 새누리당 의원이었다. 당연히 산업부가 법안 발의를 할 줄 알았던 경제부 기자들은 부랴부랴 국회 출입 기자들에게 법안 초안을 구해달라고 해야 했다. 상법·세법·공정거래법 조항을 뛰어넘는 특별법이므로 이 법의 주무부서인 기획재정위나 정무위원회에서 다루는 게 맞지만 법안 발의자인 이현재 의원은 국회 산자위 소속이었다.
원샷법의 발의 과정은 정부 부처 내부의 혼선이나 여당과의 미스 커뮤니케이션이 낳은 해프닝이 아니었다. 원샷법 작업에 참여했던 기재부 과장은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정부안이 마련될 때까지는 기재부가 정책 조정을 했던 것이고, 법안 집행은 산업부에서 할 것이기 때문에 입법화는 산업부가 하기로 했다. 정부 입법이면 입법 예고, 법제처 심사, 규제개혁위원회 심사, 차관회의, 국무회의 등 거쳐야하지만 의원 입법은 과정이 단축된다. 하지만 어느 경우든 공청회 등 의견 수렴 과정을 똑같이 거치기 때문에 ‘빨리 하려고 방법을 바꿨다’고 색안경을 끼고 볼 일은 아니다.”
정부가 준비하던 법안이 의원 입법으로 바뀌는 것은 흔한 일은 아니다. 일종의 전략적 판단으로 보인다. 이 과정은 원샷법 통과를 반대하는 야당으로부터 두고두고 “청부 입법”이라는 비판을 받는 계기가 됐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는 기재위나 정무위가 아닌 산자위 소속 의원들을 중심으로 발의된 점에도 주목했다. 산자위가 상대적으로 기업들에 친화적인 상임위인 만큼 이 역시 전략적 판단에 따른 것 아니냐는 것이다. 법안통과율만 봐도 19대 국회 산자위는 57.67%로 정무위(42.12%)나 기재위(32.95%)보다 높은 편이다.
_______ 반대하면 죽는다…정부·재계·언론의 총공세
그러나 원샷법은 산자위에서도 심사가 순조롭진 않았다. 표면적으로 내세우는 ‘사업 재편’이라는 명분이 실제론 총수 일가의 계열사 부당지원이나 편법적인 경영권 승계에 악용될 여지가 크다는 우려가 만만치 않았다. 박근혜 대통령까지 나서 ‘경제활성화법’이라며 통과를 압박하면서 정치적 무게가 더해지면서 정치권의 주목도가 더 커져버렸다.
박근혜 대통령이 2016년1월18일 경기도 성남시 판교테크노밸리 판교역 광장에서 민생구하기 입법촉구 천만서명운동본부가 추진하는 경제활성화법 처리를 촉구하는 서명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연말 국회에서 가장 중요한 쟁점인 예산과도 얽혀버렸다. 여야는 예산안과 함께 원샷법,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관광진흥법 등 여러 카드를 주고받으며 협상을 벌이기 시작했다. 예산안을 함께 처리해야 하는 연말 국회의 ‘흔한 풍경’이다. 중요한 법안도 협상의 도구로 전락하면서 구체적인 내용을 따지는 심도있는 심사가 어려워진다는 비판이 가능한 대목이이기도 하다.
원샷법은 2015년 11월, 산자위 법안심사 소위원회 안건으로 처음으로 올라왔다. 법안심사 소위는 법안이 발의 뒤 처음으로 마주치는 국회 안에서의 첫 관문이다. 법안심사 소위에서 통과되면 산자위 전체회의를 거치고,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를 거쳐 전체 의원들이 참여하는 본회의에 상정된다. 그러나 야당 의원들은 법안심사 소위에서부터 “10대 대기업 집단은 제외하고 중견·중소기업에만 이 법의 혜택을 주자”며 원샷법의 악용 가능성을 집중적으로 제기했다.
2015년12월23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산업통상자원위원회 법률안소위원회 회의에서 의원들이 기업 활력 제고를 위한 특별법안 등에 관한 논의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그러자 압박이 시작됐다. 총대를 멘 건 전경련과 한국석유화학협회,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 한국철강협회, 한국섬유산업연합회, 한국전자정보통신산업진흥회, 한국자동차산업협회 등 업종별 기업들의 모임이었다. 이들은 야당을 향해 여러 차례 성명과 건의문을 냈다. 2015년 12월7일에는 국회에서 기자회견도 했다. ‘대관’ 담당자로 불리는 협회의 국회 마크맨들은 열심히 야당 의원실들을 찾았다.
이즈음 이종걸 더민주 원내대표 등 야당 지도부는 협상안을 제시했다. 대기업을 위한 원샷법을 통과시키려면, 중소기업·소상공인에게 유리한 대·중소기업상생협력촉진법(상생법) 개정안도 함께 처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개정안은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 제도를 강화하는 내용으로 원샷법과는 정반대로 전경련에서 반대하는 법안이었다. 한 쪽에 유리한 법을 처리하려면 상대적으로 피해나 소외가 예상되는 쪽의 법도 처리하자는 제안으로, 종종 사용되는 연계 전략이었다.
이 대목에서 중소기업을 대변하는 중소기업중앙회(중기중앙회)의 모습은 전경련과 대조적이었다. 중기중앙회에서 ‘원샷법’을 담당하던 대관 업무자는 전경련의 주장대로 전체 대기업을 포함한 법 통과가 바람직하다는 뜻을 밝히며 야당 의원실들을 방문했다. 전경련과 함께 국회에서 원샷법 촉구 기자회견도 했다. 반면 중소기업·소상공인들이 바라는 법인 상생법에 대해서는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원샷법 통과를 주장하는 재계의 요구는 넘치는 반면, 상생법 쪽은 당사자들의 촉구가 없었다. 중기중앙회 담당자에게 ‘상생법 촉구를 위한 기자회견이나 보도자료를 낼 계획이 없냐’고 물었더니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대기업과의 역학관계에서 ‘을’에 놓일 수밖에 없는 중소기업·소상공인은 자신들의 목소리마저 맘대로 낼 수 없는 처지인 것 같았다.
언론을 통한 스피커의 크기도 확연했다. 일부 언론들은 원샷법 통과의 필요성을 강변하며 산자위 야당 간사인 홍영표 의원을 비판하는 기사를 연일 쏟아냈다.
대기업이 주요주주인 <한국경제>는 2015년 12월9일치에 “기업활력법 팽개치고 지역구 간 野 간사”라는 제목을 대문짝만하게 뽑았다. 원샷법 처리를 반대하고 있는 홍영표 의원이 인천비전기업협회에 축사를 하러 가고 한국드론협회 창립 세미나에 참석한 점을 문제삼은 것이었다. <한국경제>의 기사가 나온 이날, 홍영표 의원은 윤호중 더민주 기재위 간사, 김기식 정무위 간사, 전해철 법사위 간사와 함께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원샷법 적용 대상에서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을 제외하면 중소·중견기업을 위해 얼마든지 논의할 수 있다. 정부·여당이 직권상정으로 (원샷법) 날치기를 시도한다면 필리버스터를 동원할 수 있다”며 견제구를 날렸다.
“그 기사 복사해서 가져와 봐!” 기자회견장을 나서며 홍 의원은 보좌관에게 격앙된 표정으로 말했다. 홍 의원의 보좌관은 “12월8일, 오후 5시30분께 국회를 떠났는데 기사를 악의적으로 썼다”며 억울해했다. 며칠 뒤 홍 의원 보좌진은 산하기관이 매년 언론에 집행하는 광고 내역을 제출하라고 산자부에 요청했다. 국회에서 공격과 수비, 재공격이 이뤄지는 방법이었다. <한국경제>의 그 기사는 인터넷에서 자취를 감췄다.
_______ 타협의 강제
2015년 12월16일, 국회 산자위 전체회의가 열렸다. 위원장인 홍영표 의원만 회의에 참여했을 뿐, 다른 야당 의원들은 원안 통과에 반대한다며 불참했다. 실질적인 논의는 전체회의실 안쪽 별도 공간에서 이뤄졌다. 전체회의실과 달리 카메라가 없는 곳이다. 30여분간 비공개 협의를 한 홍 위원장과 여당 의원들은 카메라가 있는 회의장으로 우르르 나왔다. 결론은 원내대표 등 지도부의 판단을 보겠다는 것이었다. 바로 산회가 선언됐다.
하지만 새누리당 의원들은 한 마디씩을 ‘남기려’ 했다. 이현재 의원이 “지도부에 법의 필요성을 적극 건의해서 조속히 처리되도록 요구”하자, 옆에 있던 이채익 의원도 “저도 한 마디 하겠다”며 말을 보탰다. 여당 간사인 이진복 의원은 “하실 말이 많겠지만 진행을 안 했으면 한다. 위원장이 처리를 우회적 방향으로 얘기하지 않았냐”며 회의를 정리하려 했다. 하지만 김동완 의원은 “경제 상황이 위급하고…”라며 치고 들어왔다. 이진복 의원은 “허, 참…”하며 웃었다. 회의가 끝난 뒤 홍영표 의원은 “안에서 다 얘기 끝내고 나와놓고 대통령에 눈도장을 찍으려 그런다”고 말했다.
이즈음 산자위 소속 더민주 의원들은 ‘출구’를 찾고 있었다. “원샷법이 경영권 승계에 악용될 우려가 있다”는 비판이 계속되면서 사업재편 심사 과정이나 과태료 조항 등 이를 방지할 보완 장치가 일부 추가됐고, 이 정도로 언론의 주목을 받았는데 실제 이 법을 악용할 재벌이 얼마나 있겠냐는 것이다. ‘공급 과잉 산업’으로 규제 완화 대상을 한정한 성과도 있었다고 봤다. 어느정도 절충이 된 상태에서 공을 지도부로 넘긴 것이었다. 물론 홍익표 의원처럼 이에 동의하지 않는 의원도 있었다.
홍영표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 위원장(가운데)이 2016년 1월25일 오후 국회에서 기업활력제고를 위한 특별법 이른바 '원샷법'을 상정하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물론 여기서의 ‘지도부’는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에 국한되는 얘기다. 원내 교섭단체 요건(20석)을 채우지 못한 정의당은 논의에 참여하지 못했다. 산자위는 정의당 의원(총 5명)이 배치된 몇 안 되는 상임위로, 산자위원 30명 중 한 명이 김제남 정의당 의원이었다. 그는 할 말이 많았다. 사업재편으로 인한 기업 인수·합병때 노동권이 보호되지 못함을 꼬집었다. 정부는 일본에서 먼저 시행된 유사한 법(산업경쟁력강화법)을 본따 원샷법을 만들었다고 했다. 김 의원의 보좌관은 수십 페이지에 이르는 일본 법안을 번역했다. 김 의원은 “대조해본 결과 구조조정으로 인한 직원들의 권리 침해 보호에서 원샷법에는 누락된 대목이 많았다”고 했다. 김 의원은 2016년 1월25일 열린 산자위 마지막 소위 때도 이를 강조했지만 힘을 받지 못했다. 언론의 주목도 거의 받지 못했다.
오히려 주목을 받은 건 윤상직 산업부 장관이었다. 그는 산업부가 있는 세종시에서 경제부 기자들을 상대로 간담회를 하고, 새누리당 의원들과 함께 한 당정협의 자리에서 원샷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가 “하루종일 국회 본관과 의원회관 복도를 오가며 원샷법 처리를 위해 애썼다”는 내용의 기사들이 나왔다. 더 큰 스포트라이트는 대통령이 받았다. 원샷법 등 이른바 경제활성화법 통과를 강조하던 박 대통령은 2016년 1월18일 판교역 광장에 대한상공회의소(대한상의)가 차려놓은 서명장을 찾았다. 박 대통령은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 등 경제단체 관계자들에게 “저도 너무 애가 탔는데 당사자인 여러분들 심정이 어떠실까 생각이 든다. 힘을 보태드리려 이렇게 서명에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대통령이 거리서명에까지 참여하며 법안 통과를 위한 여론전에 나선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대서특필됐다.
3일 뒤인 2016년 1월21일 오후 1시59분, 더민주는 ‘원내대표, 정책위 의장, 산자위 간사 기자회견, 15시’라는 짧은 공지 문자를 기자들에게 보냈다. 간사인 홍 의원은 공지와 달리 오지 않았고, 이종걸 원내대표와 이목희 정책위의장이 카메라 앞에 앉았다. 갑자기 원샷법을 통과시키겠다고 했다. 산자위 소위 야당 의원들이 몇달간 주장해온 “10대 재벌이나 5대 재벌은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자”던 내용은 빠졌다. 재계와 정부의 주장대로 모든 대기업을 포함하기로 했다. 이목희 의장은 재벌이 이 법을 악용할 가능성에 대해 “제어할 장치가 부족하고 미흡하지만 국회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걱정과 우려를 생각했다”고 밝혔다. 악용을 막을 보완 장치에 대해 구체적인 질문이 이어졌으나 이종걸 원내대표는 “상임위에서 (여야) 합의에 와있다고 한다. 산자위의 협의 과정을 들었다”며 자세한 설명은 하지 않았다.
새정치민주연합 이종걸 원내대표와 이목희 정책위의장이 2015년12월24일 오전 국회 원내대표 회의실에서 열린 정책조정회의에서 이야기하고 있다.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이목희 의장은 훗날 이렇게 설명했다. “정부·여당과의 대치 정국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아무것도 안하고 버틸 순 없었다.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은 원샷법보다 문제점이 10배쯤 됐고, 기간제법과 파견법 등 노동법의 경우 무게가 100배가 된다고 봤기에, 원샷법을 타협하기로 했다. 우리의 열성 지지자들은 계속 버텨도 우릴 지지해주지만, 나머지를 생각할 때 지킬 건 굳건히 지키면서 전격적으로 타협해주는 게 낫다는 종합적 판단이 들었다.” 결국 노동법 등 ‘대통령 관심법’이 얽혀 진행 중인 줄다리기 과정에서 원샷법을 내준 모양새였다. “원샷법을 통과시키려면 중기·소상공인을 위한 상생법도 같이 해야 한다”는 야당 지도부의 주장은 자취를 감춘 지 오래였다. 2016년 2월4일, 국회 본회의에서 원샷법은 통과됐다. 발의 7개월만이었다.
_______ 법률 위의 시행령
원샷법 통과 뒤 선거구 획정안도 통과되면서 19대 국회 원내 이슈들은 마무리됐다. ‘원샷법 통과’라는 성과를 남긴 뒤 윤상직 산업부 장관은 부산 기장에 새누리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됐다. 원샷법을 둘러싸고 고군분투한 사실이 부각돼 공천에서 유리했는지는 정확히 가늠할 순 없다.
원샷법이 ‘여의도’를 떠난 뒤 산업부는 구체적 내용을 담은 시행령을 2016년 3월 입법예고했다. 그런데 “생산성 향상보다 경영권 승계, 지배구조 강화, 계열사 지원을 목적으로 할 경우 심의위원회는 사업재편계획을 불허한다”는 규정이 시행령에서는 경영권 승계나 지배구조 강화가 사업재편 계획의 “주된 목적”이거나 “직접적인” 경우에만 제동을 걸도록 하는 등 보완 장치가 대폭 축소됐다는 비판이 나왔다. 정부가 시행령을 통해 국회를 통과한 법률의 취지를 무력화하는 행태다. 세월호 진상규명 특별법도 정부는 시행령을 통해 특별조사위원회의 힘을 빼놓으려 했다. (‘법률 위의 시행령’을 규제하려는 국회법 개정안이 통과되자 박근혜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하고 이를 주도한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를 쫓아냈다) 일단 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면 정부의 시행령 제정 과정에는 언론과 여론의 주목도도 뚝 떨어진다. 법률 통과 ‘후처리’ 과정에서 반복되는 ‘악습’이다.
세월호 가족대책위 소속 유족들이 2016년5월19일 오전 19대 마지막 본회의를 방청하며 황전원 세월호특별조사위원회 상임위원 선출안이 통과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황 상임위원은 새누리당 공천을 받으려고 특조위원을 사퇴했다가 이날 다시 선임됐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경제개혁연대는 정부의 시행령을 접하고 곧바로 “국회 논의 과정에서 마련된 보완 장치의 취지상, 승인 불허 사유에 재벌 계열사간 부당지원 유형을 폭넓게 담은 공정거래법 규정까지 넣어야 한다”는 의견을 산업부에 제출했다. 산업부 담당자는 최근 “공정거래위원회와 상의해 경제개혁연대 의견을 거의 반영했으며 법제처와 규제개혁위원회 심사가 현재 진행중”이라고 밝혔다. 시행령은 이달 중 확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법은 오는 8월 시행될 예정이다.
정부와 재계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원샷법은 발의된 지 7개월만에 통과됐다. 하지만 19대 국회 4년간 발의된 법 가운데 절반 이상은 통과되지 못하고 폐기됐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 구제를 위한 법률도 폐기 법안 목록에 포함됐다. 2013년에 발의됐지만, 최근 검찰 수사가 본격화해 사회적 관심이 모이기 전까지 국회 안팎에서 주목을 받지 못했다. 법안을 둘러싼 이해당사자와 국회의원의 힘, 여론의 관심과 언론의 주목도, 때론 여야 대치 정국에서의 거래 등 여러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입법의 장에서 20대 국회에선 어떤 법들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
송경화 기자
freehw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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