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5월2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한-미 정상회담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미국은 형제와도 핵공유를 안한다.”
최근 한국과 미국의 외교안보 관련 인사들이 모인 비공개 자리에서, 현안인 한·미 핵공유 이야기가 나오자, 미국 인사가 농반진반으로 던진 말이라고 한다. 이 모임에 참석했던 인사는 “미국과 유럽은 역사와 문화가 밀접하고 특히 식민 모국이였던 영국과는 특별한 관계다. 하지만 미국·유럽의 핵공유는 상징적 수준에 그치고 있다. ‘형제나 다름없는 앵글로색슨 국가와 유럽과도 핵공유를 안하는데 왜 한국과 핵공유를 해야 하느냐’가 미국 쪽 참석자의 속내였다”고 말했다.
북한 핵 위협이 높아지면서 국민의힘 일부 의원 등은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식 핵공유가 한·미 확장억제의 신뢰성을 강화하는 대안이라고 주장한다. 한국도 나토처럼 미국과 핵무기를 공유하자는 것이다. 유럽판 확장억제가 나토 핵공유다. 나토 핵공유는 미국과 유럽 동맹국이 확장억제 전략을 체계적이고 제도적으로 협력하는 ‘핵동맹’으로 불린다.
이런 주장을 펴는 쪽은 공유를 공동소유의 준말로 이해한다. 이들은 나토 핵공유(nuclear sharing)를 마치 미국과 나토가 핵무기를 공동으로 소유하고 사용하는 것으로 오해한다.
나토 핵공유는 △미국이 전술핵무기를 유럽 동맹국 영토에 배치하고 △유럽 동맹국들이 ‘핵기획그룹’을 통해 핵 계획에 참여하며 △핵무기를 목표지점에 떨어뜨리는 수단으로 유럽 동맹국이 보유한 공군기를 사용하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나토 동맹국에게 미국 전술핵에 대한 소유권, 결정권, 거부권이 없다. 미국은 나토 동맹국과 핵 소유권을 공유하지 않는다. 유럽에 배치된 핵무기는 미군의 통제하에 유럽 동맹국 공군기지 탄약 저장고에 보관돼 있다. 핵무기 운영과 유지 보수는 미국이 전담한다. 유럽 동맹국은 시설 제공과 경비만 맡는다.
미국은 핵무기 사용의 최종 결정권을 동맹국과 공유한 사례가 없다. 미국 대통령이 핵무기 사용에 대한 독점적이고 배타적이며 최종 권한을 갖고 있다. 유사시 미국 대통령만이 갖고 있는 암호를 미군이 입력하고, 미 공군 탄약지원대대가 나토 공군기에 전술핵무기를 장착한다. 나토 공군기는 목표 지점에 핵을 투하하는 역할을 맡는다.
나토 공군기가 핵무기를 운반·투하하니까, 유럽 동맹국들이 미국과 의견이 맞지 않을 경우 핵사용에 대한 거부권이 있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유럽 동맹국 공군기가 핵무기 운반을 거부해도 미국이 다양한 대체 투발 수단이 있기 때문에 나토가 미국의 일방적인 핵 사용을 막을 거부권을 실제 행사하긴 어렵다.
나토 핵공유는 미국과 나토가 핵무기 소유나 사용권을 공유하는게 아니라, 핵무기 사용에 따른 정치적 부담과 작전 위험을 공유하는 것이다. 나토 핵공유의 실체는 소유와 권한의 공유가 아니라 책임과 위험의 공유다.
윤석열 대통령은 <조선일보>와 새해 인터뷰에서 북한 핵·미사일에 대응하기 위해 “한미가 미국의 핵전력을 ‘공동 기획-공동 연습’ 개념으로 운용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한·미가 공유된 정보를 토대로 핵전력 운용에 관한 계획은 물론 연습과 훈련·작전을 함께한다는 개념으로 발전시켜 나간다면 그것이 사실상 핵 공유 못지않은 실효적인 방안이 될 것이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이 ‘핵공유’라는 말대신 핵전력운용에 관한 공동 계획, 연습, 훈련을 언급한 것은 미국이 한국의 핵공유 요청에 응할 가능성이 없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 발언 이후 나토 핵공유에 빗대 ‘한국식 핵공유’란 장밋빛 해석이 나오지만, 나토 핵공유 현실을 감안하면, 한·미간 핵공유 못지 않는 실효성 확보를 장담하기 어려워 보인다.
△인용한 자료
<나토 핵공유의 상징과 현실>(박상현, 한국국방연구원)
<나토식 핵공유체제의 대안 모색>(조비연, 한국국방연구원)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