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폴란드에 648문을 수출할 K-9 자주포. 한화디펜스 제공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7일(현지시각) 모스크바에서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무기와 탄약을 제공하기로 결정한 것을 알고 있다”며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제공할 경우 한국과 러시아 관계가 파탄 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은 28일 출근길에 “우리나라는 우크라이나에 살상무기를 공급한 사실이 없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우리는 우크라이나에 대해 인도적이고 평화적인 지원을 국제사회와 연대해서 해왔다”며 “살상무기를 공급한 사실이 없습니다만 어디까지나 우리 주권의 문제”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세계 모든 나라들, 러시아를 포함해서 평화적이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은 알아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국방부도 푸틴 대통령의 주장이 사실과 다르다고 밝혔다. 국방부 관계자는 “그동안 한국은 우크라이나에 인도주의적 지원, 비무기체계를 지원해왔다. 살상무기 지원은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변함없이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탄약 등 러시아와의 전투에 직접 쓰이는 살상무기가 아닌 군수물자를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우크라이나에 지원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란 설명이다.
우크라이나는 수차례 한국에 무기 지원을 요청했다. 지난 4월8일 한국과 우크라이나 국방장관 전화 통화에서 우크라이나가 헬기나 비행기를 격추하는 대공무기체계 지원을 특정해 요청했으나 정부가 ‘살상무기 지원 불가’ 방침을 밝히고 거절했다. 당시 서욱 국방부 장관은 우리의 안보 상황과 군의 군사대비태세에 주는 영향 등을 고려해서 살상용 무기체계 지원이 어렵다고 설명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지난 4월11일 한국 국회를 상대로 한 화상 연설에서 무기 지원을 공개 요청했지만, 한국은 응하지 않았다. 한국 정부가 ‘살상무기 지원 불가’ 입장을 거듭 밝히자 지난 4월15일엔 주한 우크라이나 대사가 국내 방산업체를 직접 방문해 지대공 미사일 구매를 시도하려 했지만, 방문 일정이 사전에 공개돼 무산되기도 했다.
지금까지 한국은 우크라이나에 방독면, 방탄헬멧, 천막, 모포, 전투식량, 의약품 등 47억원 상당의 비살상용 군수물자를 3차례에 나눠 지원했다. 문재인 정부 임기 말이었던 지난 4월, 방탄조끼와 전투식량, 지혈대 등 45개 품목(22억원 상당)을, 지난 3월에는 방탄헬멧과 모포, 야전침대 등 12개 품목(10억원 상당)의 비살상용 군수품을 지원했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지난 5월26일에 시행된 3차 지원(15억원 상당의 방독면·정화통)에서도 살상무기는 빠졌다.
정부가 살상무기를 우크라이나에 비공식적으로 지원하거나 국내 방산업체가 우크라이나에 몰래 무기를 팔았을 가능성도 거의 없다. 방산업체는 정부 승인 없이 탄약·무기를 외국에 팔 수 없다. 정부가 은밀히 살상무기를 우크라이나에 지원하려해도 무기 생산·운송 과정에 관여하는 민간인들이 많아 비밀 유지가 쉽지 않다.
다만 우크라이나에 무기 지원을 하는 국가에 한국이 무기를 판매하면, 결과적으로 ‘우회 지원’이라고 해석될 여지는 있다. 실제 사례로, 우크라이나에 155㎜ 포탄을 보내려던 캐나다가 자국의 포탄 보유분이 부족해지자 지난 5월 한국에 155㎜ 포탄 10만발 구매를 문의한 적이 있었다. 만약 한국이 캐나다에 포탄을 수출할 경우 결과적으로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포탄을 우회 지원하게 된다는 지적이 나왔지만, 이 수출은 진행되지 않았다고 한다. 국방부 관계자는 “우리가 특정 국가에 무기 수출을 했는데, 특정국가가 이 무기를 어떻게 할지는 우리가 팔로우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육군 K-2 전차 훈련 모습. 육군 페이스북 갈무리
한국은 폴란드에 케이(K)2 전차 980대, 케이(K)-9 자주포 648문, 에프에이(FA)-50 경공격기 3개 편대(총 48기), 다연장로켓 천무 288문을 수출하기로 했다. 폴란드가 한국에서 대규모 무기를 수입하는 것은 우크라이나 전쟁 때문이다. 폴란드가 우크라이나에 자주포, 전차를 대거 지원했고 이에 따른 전력 공백을 한국산 무기로 메우는 것이다. 러시아 처지에선 한국이 폴란드를 통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우회 지원하는 것 아니냐고 불만을 가질 수 있다. 더구나 한국이 수출하는 전차와 자주포가 폴란드와 러시아 국경지대에 배치될 것으로 알려져, 러시아가 더욱 불편하게 느낄 수 있다.
국방부 관계자는 ‘푸틴 주장이 한국의 방산 수출에 대한 경고 같다’는 지적에 “여러 우려가 있을 수 있지만 발언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고 분석해서 적합한 대책들을 가지고 주변국과의 관계를 잘 해나가겠다"고 말했다.
권혁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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