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승찬 국방부 대변인이 브리핑을 하고 있다. 국방부 제공
최근 부승찬 국방부 대변인의 머리카락 길이를 문제 삼는 민원이 국방부에 접수됐다. 민원의 요지는 “국방부 대변인이 외모에서도 엄정한 군 기강을 보여줘야 하는데, 방송 화면에 나온 대변인의 머리카락이 민간인처럼 너무 길어 군기가 빠져 보인다”는 것이다.
이 문제 제기를 어떻게 봐야 할까. 국방부 대변인이 현역 군인이라면 군인 두발 규정을 지키는 게 맞다. 현역 간부(장교·부사관)는 가르마를 타고 머리를 단정히 손질하고 앞머리가 이마를 덮지 않아야 한다.
하지만, 부승찬 국방부 대변인은 현역 군인이 아니다. 그는 중앙부처 국장급 공무원(별정직 고위공무원 나등급)이다. 2010년 이전까지 국방부 대변인은 현역 장군(준장)이 많았지만, 2010년 이후로는 민간 출신들이 맡고 있다.
현역 군인이 아닌 부승찬 대변인에게 엄정한 군기를 상징하는 짧은 머리카락을 요구하는 민원은 국방부를 군부대로 착각한 데서 비롯됐다. 국방부는 정부조직법상의 중앙행정기관이지 군부대가 아니다. 국방부는 기획재정부, 외교부, 교육부, 보건복지부처럼 중앙정부의 한 부서인데도 많은 사람이 군부대로 오해한다.
현실을 보면 오해할 만하다. 국방부에는 현역 영관급 장교와 장군이 다수 근무한다. 서욱 국방장관은 2020년 9월18일 오전 육군참모총장(대장)에서 전역해 군복을 벗고 그날 오후 국방부 장관에 취임했다. 전임자인 정경두 장관도 2018년 9월21일 오전 10시30분 합참의장 이임식과 전역식(공군 대장)을 하고 3시간30분 뒤 국방장관에 취임했다. 이명박 정부 때인 2009년 9월23일 김태영 국방장관은 합참의장(육군 대장)에서 전역하고 1시간 뒤에 국방장관이 됐다.
역대 국방장관을 보면, 합참의장, 각군 참모총장, 사령관 등을 지낸 예비역 장군들이 많다. 현실이 이러니 국민들이 국방부 장관을 장군으로 오인한다. 실제 역대 국방장관 중에는 ‘장관’이 아니라 ‘장군’처럼 행동하는 사람이 꽤 많았다. 국방부 장관이 자신이 속했던 특정 군의 이익을 대변하는 경우도 빈번했다.
하지만 국방부 장관은 군의 대표자가 아니라 민간을 대표해 군을 지휘·감독하는 민간인 국무위원이다. 국군조직법에는 “국방장관이 대통령의 명을 받아 군사에 관한 사항을 관장하고 합동참모의장과 각군 참모총장을 지휘·감독한다”고 돼 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군에 대한 문민통제가 상식이다. 민간이 결정한 안보 정책을 군이 집행하는 방식을 ‘문민통제’라고 한다. 국민이 선출한 정치권력(대통령)과 관료(국방부 장관)가 안보 정책을 주도하고 안보 전문가 집단인 군은 군사작전으로 이를 뒷받침한다.
민간인 출신 국방장관은 우리 현실에서 시기상조이거나 비현실적인 주장 같은 취급을 받지만, 선진국에선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문민통제를 거론할 때 미국이 모범사례로 꼽힌다. 미국은 현역 군인이 국방장관을 맡으려면 전역하고 7년이 지나야 한다고 법률로 정해뒀다. 군복을 벗은 지 최소 7년은 지나야 군의 이해관계에서 벗어날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이는 국방부가 국민을 대신해서 군대를 통제하는 정부기관으로 보기 때문이다.
제2차 대전 이후 미국 국방장관 중 장군 출신은 1950년대 조지 마셜과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첫 국방장관인 제임스 매티스, 현재 장관인 로이드 오스틴 3명뿐이다. 미국 국방장관은 거의 정치인, 교수, 기업가 출신이다. 베트남전쟁이 한창이던 1960년대 7년 동안 미국 국방장관을 지낸 로버트 맥나라마는 하버드대 교수, 포드자동차 사장 출신이다.
서욱 국방장관(왼쪽)과 플로랑스 파를리 프랑스 국방장관이 지난 14일(현지시각) 한-프랑스 국방장관회담 뒤 주먹인사를 나누고 있다. 국방부 제공
유럽에서는 여성 국방장관도 흔하다. 지난 13일부터 19일까지 유럽을 방문 중인 서욱 장관은 지난 14일(현지시각) 프랑스 파리에서 플로랑스 파를리 프랑스 국방장관과 회담을 했다. 파를리 장관은 2017년 6월부터 국방장관을 맡고 있다. 파를리 장관은 예산부·내무부 등 다양한 정부 부처에서 근무했고, 예산 담당 장관(2000~2002), 항공사인 에어프랑스 부사장, 국영철도회사 자회사 사장 등을 지냈다.
프랑스와 함께 유럽의 군사강국인 스페인(마르가리타 로블레스)과 독일(크리스틴 람브레히트)의 국방장관도 여성이다. 지난 16~17일(현지시각) 벨기에 브뤼셀에 있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본부에서 회원국 국방장관 회담을 열어 우크라이나 사태 대처 방안을 논의했는데, 나토가 공개한 기념 사진을 보면 회의 참가자 가운데 10명이 여성이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가 지난 16~17일(현지시각) 벨기에 브뤼셀의 나토 본부에서 회원국 국방장관 회의를 열고 우크라이나 사태를 논의했다. 나토 누리집에 공개된 국방장관 회의 사진을 보면 참가자 중 10명이 여성이다. 나토 누리집
지난 16일(현지시각) 벨기에 브뤼셀에 있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본부에서 회원국인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4개국 국방장관이 우크라이나 사태를 논의했다. 왼쪽부터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 플로랑스 파를리 프랑스 국방장관, 크리스틴 람브레히트 독일 국방장관, 벤 월러스 영국 국방장관. 브뤼셀/AP 연합뉴스
참여정부 때는 민간인을 국방장관에 임명하려다 북한 핵실험 등을 이유로 무산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임기 내 문민 국방장관 임명을 추진하겠다는 대선 공약을 냈지만 결국 불발됐다. 이번 대선 국면에서 국방 분야는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 체계) 추가 배치, 대북 선제타격 등이 뜨거운 쟁점이고, 문민통제를 언급하는 후보는 드물다. 그나마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가 지난달 “국방개혁 1호 조치로 국방부 장관을 민간인으로 임명하겠다”고 밝힌 게 눈에 띈다. 안 후보는 “민간인 국방부 장관을 임명하면 군 내부의 불필요한 인맥 형성과 알력 싸움을 예방하는 효과도 있고 육·해·공군 출신에 따른 ‘자군 이기주의’와는 무관한 제대로 된 국방개혁을 추진할 수 있다”며 “군사 안보에 대한 전문성뿐 아니라 행정혁신 능력을 갖춘 전문가를 임명해 현재 군의 각종 폐단과 악습, 부조리 등을 도려내어 국방개혁의 토대를 마련하겠다”고 공약했다.
문민통제의 중요성을 이야기할 때 “전쟁은 너무나 중요해 장군들에게 맡길 수 없다”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 총리 조르주 클레망소의 말이 자주 인용된다. 제1차 세계대전 직전 유럽이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이 아니었음에도 정치 지도자들이 호전적인 군부를 제어하지 못해 누구도 원하지 않았던 끔찍한 전쟁이 일어났다. 국가와 국민을 수호하기 위해 만든 군이 거꾸로 국민을 위협한 것이다. 유럽은 제1차 대전을 겪은 뒤 군에 대한 문민통제에 나섰다.
민간인 출신 국방장관은 분단 현실에서 요원할 것 같지만 이승만·장면 정부 때는 이미 민간인이 5차례 국방장관을 역임했다. 특히 한국전쟁 때인 1950년 6월부터 1952년 3월까지 민간인 국방장관 2명(신성모, 이기붕)이 전쟁을 치렀다. 군인 출신들이 ‘당연하다는 듯’ 국방장관을 맡은 건 1961년 5·16 쿠데타 이후였다. 최근 대선 과정에서 눈길을 끌지 못해도 다음 정부에서 문민통제 논의가 이어져야 한다. 우리에게도 “전쟁은 너무나 중요해 장군들에게만 맡길 수 없”기 때문이다.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