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31일 대북전단을 살포하는 탈북민단체. 자유북한운동연합 제공
국회에서 14일 통과한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남북관계발전법) 개정안을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21일 현재까지 미 하원의원 3명이 이 법을 비판하거나 재고를 요구하는 성명을 냈고,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과 전임 미 국무부 북한인권특사도 비슷한 취지의 메시지를 발신했다. 공식화되지 않았지만 미국에서는 의회 산하 기구인 ‘톰 랜토스 인권위원회’가 내년 초 이와 관련한 청문회를 개최할 수 있다는 소식까지 들린다.
정부는 미 의회 등 관련자들과 소통을 하겠다면서도 불쾌해 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도 20일 허영 대변인 명의 서면 브리핑에서 “미국 정치권 일각에서 한국 내정에 대한 훈수성 간섭이 도를 넘고 있다”며 “편협한 주장에 깊은 유감”을 전했고, 21일엔 이낙연 대표까지 나서 “미국 의회 일각에서 개정법의 재검토를 거론하는 것은 유감이다. 표현의 자유는 존중되어야 하나 그것이 국민의 생명과 안전보다 우위에 있지는 않다. 표현의 자유도 타인의 권리나 국가 안보 등을 위협할 경우에는 법률로 제한할 수 있다는 것이 국제사회의 확립된 원칙”이라고 밝혔다.
남북관계발전법은 어떤 법이길래 이처럼 이례적인 공방이 오가는 것일까? <한겨레>가 논란이 되는 지점들을 살펴봤다.
1. 북-중 국경서 한국 드라마 USB· 쌀 줘도 불법?
남북관계발전법 개정안이 통과된 뒤 가장 눈에 띈 문제 제기 중 하나는 바로 북-중 국경을 통해 한국 드라마나 음악을 담은 USB를 북한에 반입하거나 제3국에서 북한인에게 쌀 등 물품을 건네면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중앙일보>가 15일 1면에 이 법이 북한 유입 정보를 사실상 원천 차단한다는 우려를 전하면서 보도한 내용이다. 사실일까?
제24조(남북합의서 위반행위의 금지)
① 누구든지 다음 각호에 해당하는 행위를 하여 국민의 생명·신체에 위해를 끼치거나 심각한 위험을 발생시켜서는 아니 된다.
1. 군사분계선 일대에서의 북한에 대한 확성기 방송
2. 군사분계선 일대에서의 북한에 대한 시각매개물(게시물) 게시
3. 전단 등 살포
② 통일부 장관은 제1항 각호에서 금지된 행위를 예방하기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는 관계 중앙행정기관의 장 또는 지방자치단체의 장에게 협조를 요청할 수 있다. 이 경우 관계 중앙행정기관의 장 또는 지방자치단체의 장은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협조하여야 한다.
이번 개정을 거치며 남북관계발전법의 ‘군사분계선 일대’는 “민간인통제선 이북지역”으로, ‘전단 등’은 “전단, 광고선전물·인쇄물·보조기억장치 등을 포함한 물품, 금전 또는 그 밖에 재산상의 이익”으로 의미가 분명해졌다. 그리고 “선전, 증여 등을 목적으로 전단 등을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 제13조 또는 제20조에 따른 승인을 받지 아니하고 북한의 불특정 다수인에게 배부하거나 북한으로 이동시키는 행위”를 ‘살포’로 적시했다. “단순히 제3국을 거치는 전단 등”을 북한으로 보내는 것도 이 법에서 금지하는 ‘살포’에 포함된다.
법 조항을 보면 확성기 방송 또는 대북 시각게시물 게시는 금지 지역을 명시한 반면 전단 등 살포 행위는 지역의 제한을 두지 않았다. 논란의 불씨가 된 대목이다. 정부 관계자는 20일 <한겨레>에 “전단 등 살포 행위가 주로 민간인통제선 이남 지역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민간인통제선 이북지역이라고 규정한 군사분계선 일대라는 전제를 넣지 않았을 뿐 입법 취지상 국민의 생명, 신체에 심각한 위험을 야기하는 경우에 한해 규제하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통일부는 앞선 15일 배포한 설명자료에서도 “제3국을 통해 물품을 단순 전달하는 행위는 본 개정안의 적용 대상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살포’ 개념에 ‘제3국’을 포함한 것은 “우리 영토·영해 등에서 살포한 전단 등이 제3국 영공·영해를 거쳐 북한으로 들어갈 경우 규제 대상이 된다”는 차원에서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교류협력법)에 있는 동일한 규정(2조3호)을 고려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2. 표현의 자유 침해 논란…한국 헌법·국제규약 위반 해당할까?
개정된 남북관계발전법의 ‘뜨거운 감자’는 표현의 자유 침해 여부를 둘러싼 논란이다. 미 의회 톰 랜토스 인권위원회의 공화당 쪽 공동위원장 크리스 스미스 하원의원은 11일 “해당 법안이 한국 헌법과 시민·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ICCPR)에 따른 의무를 명백하게 위반”한다며 “해당 법이 통과되면 시민·정치적 권리를 지키지 못한 한국 정부에 대한 조사를 하기 위해 청문회를 소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유엔 시민·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ICCPR) 19조는 “모든 사람은 표현의 자유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고 보장하며 이 권리에는 “국경에 관계없이 모든 종류의 정보와 사상”을 추구·접수·전달하는 자유가 포함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단, 표현의 자유가 “타인의 권리”나 “국가안보 또는 공공질서” 등을 위해 필요할 경우에만 “법률에 의해 규정”되는 형태로 “일정한 제한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대한민국 헌법도 비슷하다. 헌법은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21조1항)고 규정면서도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다”(37조2항)는 조항을 함께 두고 있다.
일각에서 주장하듯 개정된 남북관계발전법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동시에 “표현의 자유도 헌법상 권리이나 접경지역 국민의 생명·안전이라는 생명권에 우선할 수는 없다”는 정부 주장에도 상당한 설득력이 있다.
2014년 탈북자 단체가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통일동산 주차장에서 대북전단 풍선을 날리는 모습.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원문보기:
일단 법안은 국회를 통과했다. 정부는 “일부 민간단체의 전단살포와 북쪽의 대응조치 위협으로 112만 접경지역 국민들은 상시 생명과 주거 안전을 위협받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전단 등 살포의 제한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위협의 근거로는 2014년 10월 10일 북한이 전단살포에 대응해 고사총을 쏘고 한국군이 응사했던 사례와 올 6월 남쪽 민간단체의 전단 및 페트병 살포 등에 반발해 북쪽이 개성의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한 사례를 꼽는다.
대법원 판례에도 같은 취지의 내용이 있다. 2016년 2월 국가가 대북전단 살포를 막아 정신적 고통을 당했다며 이민복 북한동포직접돕기운동 대북풍선단 대표가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 패소 결정을 한 원심을 확정한 사건이다. 1심 재판부는 “(대북전단 살포) 그 자체는 표현의 자유를 실현하기 위한 적법한 의사 표시의 한 방법”이라면서도 “2014년 10월10일 경기 연천 지역 인근에서 대북전단을 실은 풍선을 대량으로 살포하기 시작하자 북한에서는 고사포를 쏘아 그 포탄이 경기 연천 인근 민통선에 떨어졌던 점”에 비추어 볼 때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에 대응”하기 위해 (전단 살포를) 제지(한 행위)는 위법하지 않다고 판시했다. 또 “(대북전단 살포가) 휴전선 부근 국민들의 생명, 신체에 대한 급박하고 심각한 위험을 발생시킨다”고도 확인했다. 당시 북한이 대북전단 풍선을 향해 쏜 총탄은 군부대 주둔지와 연천군 중면사무소 근처에 여러 발 떨어졌고, 접경지역 주민들은 대북전단 살포가 불러올 또다른 위험에 대한 불안감을 표출해왔다. 2015년 8월에는 대북 확성기 방송의 중단·철거를 요구하면서 북한군이 쏜 고사포가 연천군 중면지역 야산에 떨어지면서 남북이 서부전선에서 포사격을 교환하기도 했다.
하지만 오헤아 킨타나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은 “개정안은 시민사회 단체들의 접경지역 활동과 이 활동이 미치는 위협 사이의 직접적이고 긴밀한 관계를 증명하지 못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3. 대북전단 살포 등 처벌 규정 과도하지 않나?
표현의 자유 침해 논란과 함께 입길에 오르는 게 신설된 처벌 조항이다. 남북관계발전법은 위의 24조1항을 위반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했다. 킨타나 보고관은 “관련 활동을 최대 징역형 3년으로 처벌하는 것은 과잉금지 원칙을 손상시킬 수 있다”고 비판했다. 표현의 자유를 기반으로 이루어진 활동에 징역형 처벌은 지나치다는 주장이다.
18~21대 국회에서 대북전단 살포를 규제하기 위해 추진됐던 14개 법안 가운데 처벌 조항을 둔 5개 중 2개 법안은 위반 시 “300만원 이하의 과태료 부과”를, 2건은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것을 제안했다. 한 건은 지금과 같은 처벌 규정을 제시했다. 나머지는 개정안에 처벌 조항을 두지 않았다.
벌칙 조항과 관련해 정부는 ‘현존하는 법과 법률상 체계적 일관성을 감안했다’고 설명한다. 기존 남북교류협력법은 물품 등을 통일부 장관의 사전 승인 없이 반출할 경우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도록(27조1항) 규정하고 있어, 이를 고려했다는 것이다. 정부가 대북전단을 남북교류협력법의 ‘미승인 반출’로 판단해 형사 조처를 취한 것은 지난 6월 자유북한운동연합과 ‘큰샘’의 전단 및 페트병 살포를 고발한 건이 처음이다.
북한군이 대북방송 중단을 요구하며 로켓포로 추정되는 포탄을 경기 연천군 중면 지역으로 발사하고 우리 군이 대응 포격을 한 2015년 8월 20일 오후 중면사무소 근처에서 군인들이 이동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4. 북한인권 개선에 찬물을 끼얹는다?
이번 개정안 통과를 두고 일부에서는 문재인 정부가 “북한 주민의 고립을 강화”했다거나 북한인권을 개선하기 위한 “시민단체 활동에 엄격한 제한을 두는 것”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외부로부터 정보 유입이 통제되는 북한 사회에 전단이나 USB 등을 보내 일종의 ‘파열구’를 내는 노력에 찬물을 끼얹었다는 논리다.
정부는 “전단 살포가 북한인권을 개선한다는 증거는 없으며 오히려 북한 당국의 사회통제 강화로 북쪽에 남아있는 탈북민 가족을 위험에 처하게” 하는 등 역효과를 야기한다고 반박한다. 실제 이와 관련한 객관적인 통계 자료는 찾기 어렵다. 앞서 미 국무부 예산을 받아 지난 4년간 북한 인권단체에 1100만달러를 지원한 미국민주주의진흥재단의 칼 거쉬먼 회장은 지난 6월 <미국의소리>(VOA)에 한국 정부의 대북전단 규제 움직임을 강하게 비판하면서도 “대북전단 살포가 아주 효과적인 정보유입 방법이라고 보지 않기 때문”에 대북전단 살포 단체에 대한 지원은 하지 않았다고 했다.
아직까지 ‘대북전단금지법’을 둘러싼 논란과 파급력은 제한적이다. 하지만 미 의회 청문회 개최가 확정되는 등 미국에서 개입 움직임을 본격화할 경우 이는 조 바이든 미 행정부뿐 아니라 문재인 정부도 쉽사리 넘기기 힘든 사안이 될 수 있다. 미국 쪽에서 ‘한-미 동맹에 장애가 될 수 있다’는 우려 및 경고가 나오는 반면 한국 쪽에서는 ‘민주적 절차를 따른 주권국가에 대한 내정간섭’이라는 반발이 조금씩 고개를 들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가 목표로 삼는 ‘동맹의 정상화’로 가는 문턱에서 이 문제를 다루는 게 적절할지는 의문이다.
김지은 기자
mira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