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정치 외교

한쪽만 바라본 미-중의 ‘역사전쟁’…피할 순 없었을까요?

등록 2020-10-27 15:31수정 2020-10-27 18:37

정치 BAR_길윤형의 알고 싶어

한국전쟁은 “제국주의가 중국에게 강요한 전쟁”
시진핑 국가주석 23일 한국전쟁 관련 언급에

미 국무부 대변인 트위터 통해 북의 남침 지적하며
“중국 공산당은 한국에 참화를 가져왔다”며 반격

내전과 국제전이 복합된 한국전쟁의 전개 양상보면
미-중 모두 어느 한쪽만 바라본 편향 드러내
한국의 선제적 대응으로 갈등 완화할 순 없었을까?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3일 베이징의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인민해방군의 한국전쟁 참전 7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해 연설하고 있다. 베이징/AFP 연합뉴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3일 베이징의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인민해방군의 한국전쟁 참전 7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해 연설하고 있다. 베이징/AFP 연합뉴스

“제국주의 침략자들은 중국 인민에게 전쟁을 강요했다. 극히 곤란한 상황에서 중국인민지원군은 가열·처절한 전투를 거쳐 이빨까지 무장한 적수를 물리쳤다.”(23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한국전쟁 관련 언급)

“중국공산당은 그저 70년 전 전쟁이 발생(broke out)했다고 주장한다. 사실은 북한이 1950년 6월25일 남한을 침략한 것이다.”(모건 오테이거스 미 국무부 대변인은 24일 트위터)

다음달 3일로 다가온 미 대선을 앞두고 ‘신냉전’이라고 불리는 미-중 갈등이 극에 달한 상황입니다. 현재, 미-중 갈등은 안보에서 첨단 기술분야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범위에서 한국에 선택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미국·일본·오스트레일리아·인도 등 4개 나라가 모여 만든 ‘쿼드’(Quad)라는 협의체는 사살상 군사·안보 분야에서 ‘중국 포위’를 염두에 둔 것이고, 미국이 “시민의 개인정보를 중국공산당의 공격적 침투로부터 보호하자”는 명분을 들어 추진 중인 클린 네트워크는 △통신망 △스마트폰 앱 등에서 중국 기업들을 퇴출시키자는 운동입니다. 한-미 동맹을 통해 안보는 미국에, 경제는 중국에 의존하고 있는 한국 입장에선 이 같은 ‘양자 택일’적 상황이 버겁게 느껴지기만 합니다.

이런 가운데 미-중 갈등이 역사 분야에까지 확대됐습니다. 미국은 그동안 한-일 간 역사 갈등을 두고 “역사 문제를 건드려 값싼 박수를 받는 것은 쉬운 일”(웬디 셔먼 전 미 국무부 사무차관)이라는 냉소적인 반응을 보여왔지만, 자국이 관련된 역사 문제에선 누구라도 피가 뜨거워지기 마련입니다.

중국은 지난 23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중국인민지원군 항미원조 출국작전 70돌 기념 대회’를 열였습니다. ’항미원조’(抗美援朝·미국에 대항해 북한을 돕다)전쟁이란 중국이 한국전쟁을 부르는 공식 명칭입니다. 이 자리에서 나온 시진핑 주석의 연설 내용이 한-중은 물론 미-중 사이에서 뜨거운 논란을 불러 일으키고 있습니다. 시 주석의 연설 내용 일부를 살펴볼까요?

“70년 전 중화의 우수한 아들딸들로 구성된 중국인민지원군은 인민의 무거운 부탁과 민족의 기대를 짊어지고 평화를 보위하고 침략에 반항하는 정의의 기치를 높이 치켜들고 조선 인민·군대와 함께 2년 9개월 동안 가렬처절한 전투를 거쳐 항미원조 전쟁의 위대한 승리를 거두었다.”

“항미원조 전쟁에서 조선의 당과 정부, 인민은 중국인민지원군을 관심하고 애호하고 지원하여 중-조 두 나라 인민과 군대는 고락과 생사를 같이하고 서로 의지하면서 선혈로 얼룩진 위대한 전투적 친선을 맺었다.”

“새 중국 창건 초기에는 방치되거나 지체된 각종 일들이 모두 시행되기를 기다렸고 중국 인민은 평화와 안녕을 비할 바 없이 갈망하고 있었다. 하지만 중국 인민의 이와 같은 염원은 도전에 직면하게 되였고 제국주의 침략자들은 전쟁을 중국 인민에게 강요했다. 극히 곤란한 상황에서 중국인민지원군은 조선 군민과 밀접히 배합하면서 가열·처절한 전투를 거쳐 이빨까지 무장한 적수를 물리쳤다. 항미원조 전쟁의 위대한 승리는 중국인민이 일어선 뒤 세계 동방에 우뚝 솟은 선언이고 중화민족이 위대한 부흥에로 나아가는 중요한 이정표로서 중국과 세계에 대하여 중대하고도 심원한 의의가 있다.”

“이 전쟁을 거쳐 중국 인민은 우리 나라 국경선까지 병력을 배치하고 나아가서 새 중국을 요람 속에서 말살하려는 침략자들의 의도를 분쇄하여 새 중국은 진정으로 입지를 굳히게 되었다.”

“우리는 국가 주권·안전·발전 이익이 침해받는 것을 절대로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그 어떤 사람이나 그 어떤 세력이 조국의 신성한 영토를 침범하거나 분열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겠다. 만약 이와 같은 심각한 상황이 발생한다면 중국인민은 필연코 맞서 강력하게 대응할 것이다.”

이 연설 내용에 한국인들은 상당한 이질감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인에게 한국전쟁은 1950년 6월25일 새벽 4시 북한의 남침에 의해 시작된 전쟁이었습니다. 그런 명확한 사실을 고려하지 않은 채 한국전쟁이 “새 중국 창건 초기”에 “제국주의 침략자(미국)이 중국 인민에게 강요한 전쟁”이라는 중국의 역사관은 한국인들에게 큰 공감을 받기 힘듭니다. 미국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모건 오테이거스 미 국무부 대변인은 24일(현지시각) 시 주석의 발언을 소개한 <월스트리트 저널> 기사를 리트윗하며 한국전쟁은 북의 남침에 의해 시작됐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자유진영 국가들이 맞서 싸우자 중국 공산당은 압록강을 건너 수십만명의 병력을 보내 한반도에 참화를 가져왔다”고 밝혔습니다.

시진핑 주석의 한국전쟁 관련 연설내용을 소개하고 있는 중국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 누리집 인민망.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전쟁이라는 이 복잡다단한 전쟁의 전체 전개 상황을 바라봤을 때 미-중 양국 모두 이 전쟁의 어느 일면만을 바라보고 있다고 평가할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전쟁은 크게 세 단계에 걸쳐 이뤄진 전쟁입니다.

1단계는 내전의 단계입니다. 한국전쟁은 해방 이후 미-소에 의해 분단된 한반도를 자신이 주도해 통일하고자 했던 김일성이 일으킨 것입니다. 스탈린한테 ‘중국이 지원을 해준다면’ 한국전쟁을 시작해도 좋다는 조건부 허락을 받은 김일성은 1950년 5월13일 베이징에서 마오쩌둥을 만났습니다. 젊은 김일성은 오만방자했고, 마오는 그 사실에 적잖이 놀랐습니다. 너무 놀란 마오는 회담을 잠시 중단하고 스탈린에게 정말 전쟁을 허락했는지 사실 조회를 했습니다. 스탈린이 결단을 내린 이상 중국도 전쟁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김일성은 ‘6월25일’로 정해진 개전일을 중국에 알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중국은 6월27일 정식 통보를 받을 때까지 라디오 뉴스를 통해 전황을 파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제 전쟁의 2단계입니다. 미국은 1950년 1월 ‘애치슨 선언’을 통해 한반도를 미국의 극동 방어선에서 제외했습니다. 하지만, 실제 전쟁이 발생하자 미국은 강력히 대응했습니다. 미국이 중심이 된 유엔군은 한때 낙동강 전선까지 크게 밀렸지만, 9월15일 인천상륙작전을 계기로 북한의 병참선을 끊는데 성공합니다. 전세는 역전됐습니다. 이제 세계의 관심은 미국이 중심이 된 유엔군이 38선을 넘어설지 멈출지에 쏠리게 됩니다.

마지막 3단계입니다. 맥아더의 과감한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하자 중국은 커다란 안보 불안을 느끼기 시작합니다. 유엔군이 38선을 곧 넘으려 하자 저우언라이는 9월30일 미국이 북한을 침략하면 “좌시하지 않겠다”는 성명을 발표합니다. 시 주석이 말한대로 미국이 북한을 점령하게 된다면 신생 중국은 압록강~두만강을 사이에 둔 드넓은 지역에서 미국의 세력과 국경을 맞대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이는 중국에서 ‘완충 지대’의 상실을 의미했습니다. 미군은 중국의 잇딴 경고를 무시하고 10월7일 38선을 넘었고, 중국은 결국 군사 개입을 선택합니다. 이 시점에서 애초 내전이었던 한국전쟁은 전후 동아시아의 냉전 질서를 고착화하는 미-중 간 국제전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모건 오테이거스 미 국무부 대변인은 24일 트위터를 통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한국전쟁 관련 발언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중국군과 한국군의 최초 충돌은 10월25일 일어났습니다. 이후 한반도에선 장진호 전투, 1·4후퇴, 흥남 철수, 그 가운데 발생한 <굳세어라 금순아> 같은 여러 비극이 발생하게 됩니다. 궤멸하던 유엔군은 1951년 2월 중순 현재의 양평군 지평리와 원주 축선에서 중공군의 공세를 막아내며 전쟁을 지구전으로 몰고 가는데 성공합니다. 이런 전쟁의 전개 양상을 볼 때 시 주석의 연설은 전쟁의 3단계에만 집중한 내용이라 할 수 있고, 미국의 견해 역시 전쟁의 1단계를 중심으로 미국의 38선 월경 등엔 눈 감은 것이란 비판이 가능합니다.

시 주석의 주장대로 중국은 이 전쟁을 그리 원하지 않았습니다. 이 짜증나는 전쟁으로 마오는 아들 마오안잉을 비롯해 수많은 중국 젊은이들의 목숨을 희생했고, 대만을 정복해 통일을 완수할 기회를 잃었습니다. 그래서 북-중 관계 전문가인 선즈화 중국 화둥사범대 교수는 저서 <최후의 천조>에서 “중국인들은 조선에서 많은 피를 흘렸지만, 중·조 지도자와 양국 사이에 깊은 우의는 형성되지 않았다”고 적고 있습니다.

그런데 시 주석은 왜 이 시점에 이런 민감한 내용의 연설을 한 것일까요. 시 주석이 한국전쟁에 대해 쏟아낸 ‘뜨거운 정념’들은 연설 마지막에 나온 이 문장을 읽으면 이해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국가 주권과 안전, 발전 이익이 침해받는 것을 절대로 좌시하지 않을 것이며 그 어떤 사람이나 그 어떤 세력이 조국의 신성한 영토를 침범하거나 분열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 이런 심각한 상황이 발생한다면 중국 인민은 필연코 맞서 강력하게 대응할 것이다.”

이를 통해 시 주석의 이번 연설이 겨냥하는 것은 한국이 아닌 70년 전처럼 중국을 괴롭히는 미국, 특히 미국과 대만의 접근을 강력히 견제한 것이라는 평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평가만 하면 끝나는 것이었을까요? 앞서 언급했듯 시 주석의 언급은 한국인들이 받아들이기 힘든 내용이었습니다. 이럴 때 외교부에서 좀 더 적극적으로 중국에 항의하는 모습을 보였다면, 미 국무부 대변인이 트위터를 통해 개입할 여지가 줄어들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한반도에서 미-중 간에 역사 전쟁이 발생해 우리에게 좋을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일본 뿐 아니라 중국에게도 할 말은 하는 정부가 되길 기대합니다.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정치 많이 보는 기사

‘부정선거 전도사’ 황교안, 윤 대리인으로 헌재서 또 ‘형상기억종이’ 1.

‘부정선거 전도사’ 황교안, 윤 대리인으로 헌재서 또 ‘형상기억종이’

선관위 “선거망 처음부터 외부와 분리” 국정원 전 차장 주장 반박 2.

선관위 “선거망 처음부터 외부와 분리” 국정원 전 차장 주장 반박

오세훈, ‘명태균 특검법’ 수사대상 거론되자 ‘검찰 수사’ 재촉 3.

오세훈, ‘명태균 특검법’ 수사대상 거론되자 ‘검찰 수사’ 재촉

이재명 “국힘, 어떻게 하면 야당 헐뜯을까 생각밖에 없어” 4.

이재명 “국힘, 어떻게 하면 야당 헐뜯을까 생각밖에 없어”

이재명, 내일 김경수 만난다…김부겸·임종석도 곧 만날 듯 5.

이재명, 내일 김경수 만난다…김부겸·임종석도 곧 만날 듯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