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키나파소에서 무장세력에 납치됐다 프랑스 군에 구출된 한국인(가운데)이 11일 프랑스 파리 근교 군공항에 도착해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옆에 서 있다. 파리/AP 연합뉴스
서아프리카 부르키나파소에서 무장세력에 납치됐다 프랑스 군에 구출된 한국인은 장기 여행중이었으며 정부가 철수를 권고하는 여행 적색경보가 내려진 말리에도 머물렀던 것으로 나타났다.
1년6개월 전부터 세계여행을 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 이 여행자는 올해 1월 북아프리카 모로코에 도착했고 세네갈, 말리, 부르키나파소를 거쳐 베냉 공화국으로 이동하던 중 국경지대에서 납치된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 정부는 모로코와 세네갈에는 여행경보 1단계 남색경보(여행 유의)를, 말리와 부르키나파소 북부지역 4개주에는 3단계 적색경보(철수 권고)를 발령한 상태였다. 사건 당시까지 베냉에는 발령된 여행경보가 없었다. 현행 여권법에는 여행경보 4단계 흑색경보(여행 금지)를 발령한 지역(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소말리아 등 6개국과 필리핀 일부 지역)을 당국의 허가 없이 방문할 때에는 처벌을 받을 수 있지만, 적색경보 지역을 여행하는 것에 대해서는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는다. 외교부 당국자는 “이 분이 위험 지역인지를 알고 갔는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상당히 위험한 지역을 통과한 것은 맞다”고 말했다.
이 여행자는 지난달 12일(현지시간) 부르키나파소에서 버스를 타고 베냉으로 이동하다가 국경지대인 파다응구르마에서 무장괴한의 습격을 받은 것으로 파악됐다. 당시 버스에는 10명이 타고 있었는데 납치범들은 승객 가운데 외국인인 이 한국인과 미국인만 납치한 것으로 알려졌다.
프랑스 현지 언론은 아프리카 말리에 근거지를 둔 무장세력 ‘카티바 마시나’가 이번 사건의 배후세력이라고 보도하고 있다. 납치범들은 이 한국인을 납치한 뒤 한달여가 지나는 동안 한국 정부와 접촉하거나 요구 조건을 내놓은 바가 없다고 외교부 당국자는 밝혔다. 외교부 당국자는 무장세력의 납치 목적에 대해서는 프랑스 당국이 조사를 진행하고 있으며, 구출된 여행자 역시 납치된 이유에 대해서 진술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프랑스군의 구출작전은 납치세력이 인질들을 데리고 말리 쪽으로 이동하는 도중에 이뤄졌다. 납치범들은 인질들을 카티바 마시나 측에 넘기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프랑스 육군 사령관은 기자회견에서 “인질들이 (카티바 마시나의) 수중에 들어간 뒤에는 구조가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말리와 부르키나 파소 인근에는 알카에다나 이슬람국가(IS)와 관련된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세력들이 활동하고 있다. 프랑스군 특수부대는 지난 10일 부르키나파소에서 무장세력과 교전 끝에 이들에게 납치된 이 한국인과 프랑스인 2명, 미국인 1명 등 4명의 인질을 구조했으나 이 과정에서 특수부대 병사 2명이 숨졌다.
구출된 한국인 여행자는 28일 동안 억류된 상태에서 학대를 당하지는 않았고 열악한 상황에서 지냈으며, 식사를 제공받기는 했으나 2주 동안은 아예 식사를 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프랑스 당국의 검사 결과 이 여행자의 건강과 영양 상태에는 문제가 없었으나, 심리적으로 안정이 필요해 보이며 조기 귀국을 희망하고 있다고 외교부 당국자는 전했다.
외교부는 13일 오후 부르키나파소 동부주와 인접국인 베냉 공화국의 펜드자리 국립공원·W국립공원에서 한국민의 철수를 권고했다. 외교부는 이 지역에 3단계 여행경보(적색경보)를 발령했다고 밝히며 “부르키나파소 동부주에서 테러·납치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고, 이러한 치안 불안이 인접한 베냉 북부 접경 지역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점을 감안했다”고 설명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해당 지역에 체류 중인 우리 국민은 긴급한 용무가 있는 게 아니라면 철수해주길 바라며 이곳을 여행할 예정인 국민은 여행을 취소하거나 연기해 달라”고 당부했다.
박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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