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24일 북한 핵무기연구소 관계자들이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의 핵실험 관리 지휘소 시설을 폭파하는 장면이다. <한겨레> 자료사진
북한이 ‘비핵화 검증’의 첫 단추로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에 대한 ‘사찰’을 제시했다. 검증의 방법과 범위는 정해지지 않았으나 북한이 검증을 수반한 구체적인 비핵화 조처 의사를 밝힌 만큼 이후 북-미 협상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북한이 지난 5월24일 폭파해 폐기한 ‘북부핵시험장’의 검증을 누가, 언제, 어떻게 할지는 이제부터 북-미가 조율해야 할 부분이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부 장관은 방북 이튿날인 8일 서울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실무 협의가 정리되는 대로” 풍계리 현장에 사찰단을 보낼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김 위원장은 그들(사찰단)을 받을 준비가 됐다고 했다”면서도 “실행에 옮기려면 많은 실무가 해결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와 그가 “예상”하는 대화상대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이 오스트리아 빈 실무협상에 나설 때 가장 먼저 논의할 의제로 꼽힌다.
사찰단 구성과 관련해 많이 거론되는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핵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기구인 만큼 핵무기 범주로 나뉘는 핵실험장 사찰의 주무를 맡을 가능성은 높지 않다. 외교가에서는 미국이 직접 작업을 주도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북쪽이 독립기구의 참여를 주장할 경우에는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기구(CTBTO) 등이 포함될 가능성도 있다. 그밖에는 영국, 프랑스, 러시아, 중국 등 핵보유국 전문가들도 참여할 수 있다.
지난 5월24일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의 4번 갱도 폭파 전 내부모습. 4번갱도는 아직 핵실험을 하지 않은 갱도로 가장 큰 규모의 핵실험을 위해 건설됐다고 알려져 있다. <한겨레> 자료 사진
풍계리 핵실험장 검증의 방법과 범위도 관심사다. 정부 관계자는 “일단 북한이 갱도 입구만 무너뜨린 게 아니냐는 의심이 있으니 북한 말처럼 갱도 자체가 불가역적으로 폐기됐는지를 볼 것”이라고 말했다. 그 방법으로 “확실하게 폭파됐는지를 파악하기 위해 어디에 어떤 폭약을 얼마나 터뜨렸는지”(이춘근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확인해볼 수 있다. “갱도 안까지 붕괴시킬 방법은 없기 때문에 주변 보조시설이 완전히 파괴됐는지 보는” 방법(안진수 전 한국원자력통제기술원 책임연구원)도 거론된다. 두 전문가 모두 완벽한 검증을 위해서는 지하 동굴을 굴착하거나 당장 시추가 어렵다면 갱도의 주변 식물, 물, 흙 등을 채취해 분석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 쪽에서는 풍계리 핵실험장의 시료 채취를 통해 북한의 핵 능력을 파악하는 게 검증의 주요 목적으로 꼽히지만 북쪽이 이를 받아들일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 관측이다.
5월24일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의 폭파 작업이 시작되기 전 북한 군인이 2번 갱도 앞을 지키고 있는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풍계리 핵실험장 영구 폐기는 김 위원장이 4월27일 1차 남북정상회담에서 구두 약속(5월 공개 폐쇄)한 것으로, 4월20일 노동당 중앙위 전원회의(제7기 3차)의 결정사항이었다. 북한은 5월24일 6차례의 핵실험 가운데 5차례가 이뤄진 2번 갱도를 시작으로 이미 폐쇄된 것으로 알려진 1번 갱도를 제외한 대부분의 시설을 폭파했다. 북한이 처음으로 행한 가시적 비핵화 조처였으나, 전문가 참관이 이뤄지지 않으며 신뢰성 논란에 휩싸였다. 김정은 위원장은 이에 대해 지난달 9일 방북한 대북 특사단을 만나 “비핵화를 위한 선제 조처를 했는데, 이런 선의를 선의로 받아주면 좋겠다”며 답답함을 토로했다고 전해졌다. 북-미 관계에 정통한 정부 관계자는 풍계리 핵실험장 사찰단 초청과 관련해 “작은 조치이지만 아주 구체적인 조치”라면서 “북-미 간 이슈가 되는 신뢰를 쌓는 데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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