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의 첫 외교부 장관 후보자에 강경화(62) 유엔 사무총장 정책특보가 지명된 것은 문 대통령이 내놓은 또 하나의 파격 인사로 꼽힌다. 외무고시 출신의 ‘북미국 라인’ 남성이 도맡다시피 한 외교부 장관에 비외무고시 출신으로서 다자외교 무대에서 기반을 닦아온 ‘인권전문가’ 여성이 지명됐기 때문이다. 여성이 외교부 장관 후보자에 지명된 것은 1948년 외무부 설립 이후 처음이다. ‘주류’의 통념을 뛰어넘은 인사라는 점은 피우진 국가보훈처장 인선과도 맥이 닿는다.
강경화 후보자는 현재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의 정책특보로서, 한국 여성으로는 유엔 내 가장 높은 직위에 진출한 입지전적 인물이다. 비고시 출신 첫 외교부 여성 국장이기도 한 그는 2005년 외교통상부 국제기구국장(당시 국제기구정책관)을 지내 이 수식어를 얻었다. 이력도 남다르다.
서울 태생으로 이화여고, 연세대 정외과를 졸업한 강 후보자의 첫 직장은 <한국방송>(KBS)이었다. 그는 국제국 영어방송 아나운서 겸 프로듀서(PD)로 일했는데, 후보자의 아버지도 <한국방송> 아나운서였던 고 강찬선씨다. 이후 미국 매사추세츠대 대학원에서 커뮤니케이션 박사학위를 받은 강 후보자는 국회의장 비서관과 세종대 영문과 조교수를 거쳐 1999년 홍순영 외교통상부 장관 보좌관으로 특채됐다.
강 후보자가 외교가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것은 그보다 앞선 1997년께다. 강 후보자는 외환위기 당시 김대중 전 대통령과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정상회담 통역을 맡아 실력을 인정받았다. ‘디제이의 명통역사’로 통한 그는 부친을 따라 학창시절을 미국 워싱턴에서 보내면서 국제적 감각과 영어 실력을 키운 것으로 알려졌다.
강 후보자는 이후 2006년부터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 부대표로 활동했다. 2013년 4월부터는 재난 등 비상상황에 처한 회원국에 유엔의 자원을 배분하는 유엔 산하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의 사무차장보를 지냈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과의 인연이 각별한 것으로 알려진 강 후보자는 반 전 총장 유엔 입성의 공신으로 꼽힌다. 눈길을 끄는 것은 반 전 총장의 후임인 구테흐스 총장이 지난해 10월 강 후보자를 유엔 사무 인수팀장으로 임명한 데 이어, 12월에는 정책특보로 둔 점이다.
강 후보자는 그동안 문재인 정부의 외교·안보 진용 하마평에 한 번도 이름이 오르지 않았다. 강 후보자 발탁이 외교가 안팎에 충격을 더하는 이유다. 한 외교부 당국자는 “정말 충격적”이었다며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일”이라고 말했다. 기존 외교부 ‘주류’ 쪽에서는 충격과 우려를 감추지 못했다. 한 당국자는 “미국 쪽 일을 안 해본 최초의 장관이 된 셈”이라며 그 이상의 평은 꺼렸다.
그러나 강 후보자 지명이 문 대통령이 꺼내든 또다른 ‘신의 한 수’라는 평가도 나온다. 다자외교 전문가를 내정함으로써 그동안 미국 중심의 ‘4강 외교’ 틀에 갇혀 있던 한국 외교에 파열음을 내는 동시에 ‘성평등 내각’이라는 명분도 살려 문 대통령이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았다는 것이다. 한 외교부 당국자는 “국제적으로 한국 여성으로서 어느 분야든지 강 후보자만큼 발이 넓고 실력을 인정받은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국내 인권단체 쪽 반응도 뜨거웠다.
한편 청와대는 이날 강 후보자의 큰딸이 이중국적 문제와 위장전입 사실이 있다고 밝혔다. 조현옥 청와대 인사수석비서관은 “강 후보자의 장녀는 후보자가 미국 유학 중 출생한 선천적 이중국적자”라며 “본인이 한국 국적을 취득하겠다고 약속했다”고 해명했다.
김지은 기자
mira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