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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외교

세계 초일류 외교관 키우려면 조직문화부터 바꿔야

등록 2017-02-24 20:26수정 2017-02-24 20:41

[토요판] 조세영의 외교클럽
(25) 외교관이라는 직업
외교관 선발 제도가 2013년부터 바뀌었다. 외무고등고시에 합격하면 외교관에 임용되던 것과 달리 현재는 먼저 외교관 후보자 선발시험을 거쳐 1년간 국립외교원에서 연수를 마친 뒤에 최종적인 임용 여부가 결정된다. 2007년 8월 외무고등고시에 합격한 외무공무원 임용 후보자들이 중앙인사위원회에서 선서문을 들어 보이고 있다. 강창광 기자chang@hani.co.kr
외교관 선발 제도가 2013년부터 바뀌었다. 외무고등고시에 합격하면 외교관에 임용되던 것과 달리 현재는 먼저 외교관 후보자 선발시험을 거쳐 1년간 국립외교원에서 연수를 마친 뒤에 최종적인 임용 여부가 결정된다. 2007년 8월 외무고등고시에 합격한 외무공무원 임용 후보자들이 중앙인사위원회에서 선서문을 들어 보이고 있다. 강창광 기자chang@hani.co.kr

‘외교클럽’을 시작한 지도 어느새 1년이 되어 이번 글을 끝으로 연재를 마치게 되었다. 토요일 아침 차 한잔을 옆에 놓고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이야기를 풀어볼 생각이었지만 매번 주제를 정하는 일부터 쉽지 않았다. 마감 날이 가까워지도록 좀처럼 방향을 정하지 못하는 때도 많았다. 마지막 글감으로는 외교관 생활을 돌아보며 느낀 점을 써봐야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오랜만에 외교부에 있는 젊은 후배를 만났다.

외교관이라는 직업을 가져보니 어떠냐고 물었더니 대뜸 “안정적이어서 좋잖아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뭔가 그럴듯한 말이 나올 줄 알았는데 뜻밖이었다. 특별히 외교관이 그렇다기보다는 공무원이라는 직업 자체가 안정적이어서 좋다는 뜻인 듯했다. 취업준비생이 역대 최대인 70만명에 육박할 정도로 청년실업이 심각한 가운데 젊은이들이 안정적인 직업을 찾아 공무원 채용 시험에 몰려들고 있는 상황이니 그런 대답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겠다 싶었다.

개인적인 이익이나 금전적인 이익이 아니라 공공의 목적을 위해서 일하는 것이 좋다고도 했다. 나도 그랬지만 민간 기업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금전으로 환산할 수 없는 공적인 이익을 위해서 일한다는 매력에 끌려서 외교관의 길을 선택했다는 경우가 많다. 공익을 위해서 일하는 것이야 다른 부처의 공무원도 마찬가지겠지만 국제무대에서 국익을 위해 일한다는 특성은 다른 부처와 비교할 수 없는 외교부만의 매력임에 틀림없다. 스포츠 선수 중에서도 태극기를 달고 뛰는 국가대표 선수와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

한때 단파라디오는 필수

외교관 생활에서 안 좋은 것은 무엇이냐고 다시 물었다. 이번에도 뜻밖의 대답이었다. ‘해외 근무를 해야 하는 부담' 때문에 힘들다고 했다. 여성 외교관으로 남편과 떨어져 혼자서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해외공관에 나가 업무와 육아를 병행해야 했던 탓에 그런 대답이 나왔을 것이다. 매년 국립외교원의 외교관후보자과정(예전의 외무고시)을 통해서 선발하는 신규 채용 외교관의 70% 전후를 여성이 차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보니 젊은 외교관들에게 해외 근무는 기회라기보다 부담이 되어가고 있는 모양이다. 예전에는 거꾸로 해외 근무가 외교관 생활의 장점으로 여겨지던 시절도 있었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웬만한 해외공관에 나가면 모든 면에서 국내보다 훨씬 생활환경이 좋았다. 지금은 해외공관 가운데 의료, 치안, 교육, 위생 등을 종합해서 볼 때 한국보다 더 쾌적하고 편안한 생활환경을 가진 곳은 손으로 꼽을 정도가 되었으니 그만큼 해외 근무를 반기지 않게 된 것도 사실이다.

외교관이란 직업이 갖는 가장 큰 약점은 잦은 해외 근무 때문에 국내 사정에 어두워진다는 것이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대통령 선거에 나서려다 힘없이 주저앉아 버린 과정에서 국민들로부터 집중적으로 지적을 받은 것 가운데 하나도 바로 국내 사정에 어둡다는 점이었다. 전세계 어디에서든 인터넷으로 24시간 국내 뉴스를 접할 수 있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서 마치 국내에 있는 것처럼 사람들과 실시간으로 소통할 수 있는 요즘 같은 시대에 해외 근무를 한다고 해서 국내 사정에 어두워진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기술의 발전 속도만큼이나 국내 사회도 무서운 속도로 변화하고 있기 때문에 아무리 인터넷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해도 해외에서 국내의 변화를 쫓아가기는 여전히 쉽지 않다.

외국어 등 전문성 도전받고
젊은층은 해외근무에 부담
세계화 시대에 매력 떨어져
미국도 외교관 이직 많아

사익보다 공익에 헌신하고
사명감 높은 젊은 인재들
초일류 외교관으로 키우게
잡무 근절 등 일문화 바꿔야

나는 30년의 외교부 생활 가운데 18년을 해외에서 보냈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에 후진국에서 근무하게 되면 국제 뉴스를 듣기 위한 단파라디오가 필수품이었다. 다이얼을 돌려서 주파수를 맞춰가며 <비비시>(BBC) 국제방송에 귀를 기울이지만 한국에 관한 뉴스는 그리 자주 나오지 않았다. 국내의 생생한 뉴스와 동영상은 일주일에 한 번 본부에서 항공화물로 보내주는 서너 개의 비디오 녹화 테이프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티브이(TV) 뉴스와 함께 인기 있는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도 수록되어 있는 비디오테이프가 새로 도착하면 제일 먼저 대사가 다 보고난 후에 대사관 직원들이 순서에 따라 집집마다 돌려서 보았다. 내가 중동의 예멘에 근무할 때는 한국에서 드라마 <모래시계>가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었는데 새 테이프가 도착할 때마다 목을 빼고 차례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던 기억이 있다.

지금은 스마트폰만 가지고도 외국에서 간편하게 동영상을 볼 수 있으니 해외공관에서 비디오테이프를 돌려보는 일도 없어졌을 테지만, 아무리 기술이 발달했다고 하더라도 세상의 변화를 직접 피부로 느끼는 것과는 비교할 수가 없다. 나는 더 이상 해외 근무를 하지 않게 된 덕분에 대통령 탄핵심판이 진행되는 이 중대한 시기에 촛불집회로 분출된 민심과 일련의 사태 전개를 국내에서 매일 피부로 느끼며 지내고 있다. 하지만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때는 해외에서 근무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당시 한국 사회가 어떤 진통을 겪었는지 직접 느껴보지 못했다. 언론보도나 인터넷을 통해서 얻은 정보로서의 기억은 있지만, 살아 있는 생생한 느낌으로 현장에서 얻은 기억은 가지고 있지 않다. 국익을 생각하며 일하는 외교관으로서 우리 사회의 가장 간절하고 중요한 화두가 무엇인지를 말과 글로써가 아니라 직접 피부로 느끼고 공감하지 못한다는 것은 커다란 약점이 아닐 수 없다.

외교관 뺨치는 엔지오(NGO) 경쟁력

외교관들은 한때는 강점으로 인정받던 전문성에서조차 심각한 도전을 받고 있다. 외국여행이 국내여행만큼이나 일상화되었고 외국에 관한 정보도 얼마든지 쉽게 얻을 수 있는 시대에 외교관으로서 체득한 전문성이라고 하는 것은 더는 특별한 것이 아니다. 외국어 능력만 하더라도 대학교수나 민간기업 직원 중에 직업외교관보다 훨씬 더 실력이 출중한 사람이 많아졌다. 외교부 직원이라 외국어를 엄청 잘할 줄 알았는데 실제로 보니 별로였다는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듣는다. 정부 내의 다른 부처 직원들 중에도 유창한 외국어 능력뿐만 아니라 해외 근무의 경험까지 갖춘 사람이 많이 늘었다. 외국에 관한 정보나 인맥에 있어서도 반드시 외교관들이 더 경쟁력이 있다고 하기 어렵게 되었다. 세계화를 다룬 명저로 국제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던 <렉서스와 올리브 나무>의 저자 토머스 프리드먼은 자신이 가장 중시하는 정보의 원천은 더 이상 국제관계 전공 교수도 외교관도 아니고, 지구적인 규모에서 정보를 조감하는 데 익숙한 헤지펀드 매니저들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유엔 사무국에 나가서 오래 근무한 동료 외교관으로부터 유엔 직원의 신규채용 시험에 면접관으로 들어갔을 때 전세계에서 모인 다양한 경력의 지원자들을 면접해보니 그중에서 외교관이나 공무원 출신이 가장 경쟁력이 없더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어느 나라든 외교관 출신들은 천편일률적으로 대학에서 무엇을 전공했고 외교부에 들어가서 어떤 부서에서 일했으며 해외 근무는 어디서 했다는 내용으로 자기소개를 하는데, 그런 경력만 가지고는 다른 지원자들보다 좋은 점수를 받기 어렵더라는 것이다. 반면 가장 경쟁력이 있는 사람은 엔지오 출신이 많았다고 했다. 남들과는 다른 독특한 분야에서 일하면서 자기만의 뚜렷하고 구체적인 전문성을 가지고 있는데다 외국어 능력도 뛰어났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해준 내 동료는 외교부에서도 매우 뛰어난 인재로 평가받는 사람이었는데도 만약 자기가 공채로 유엔에 지원했다면 합격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았다.

전문성에서 외교관들의 경쟁력이 약해지는 이유는 뭘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현안 처리와 일상적인 잡무에 쫓기다 보니 제대로 전문성을 키울 만한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그렇다면 평소에 무엇 때문에 그리 바쁜 걸까? 예전에 비해 일은 몇 배나 늘었는데 인원은 늘지 않았다든지, 국력이 비슷한 다른 나라에 비해 외교부 직원 수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내게 외교부 직원들이 바쁜 이유를 하나만 꼽으라면 ‘쓸데없는 자료 만들기'를 들겠다. 외교부는 구체적인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사업 부서가 아니라 추상적인 정책을 다루는 정책부서다. 국가 간의 현안을 처리하고 우호협력관계를 유지하는 일은 대부분 ‘자료 만들기’로 이루어진다. 외교업무에서 자료 만들기는 쓸데없는 일이 아니라 꼭 필요한 일이다.

문제는 꼭 필요한 것도 아닌데 관례에 따라 습관적으로 자료를 만들고 고치는 일이 많다는 점이다. 외교관 초년병 시절 처음으로 해외공관에 나가서 근무할 때의 일이다. 본부에서 외교부 장관이 주재국을 방문해 외교장관회담을 하게 되었다. 내게는 공항 도착 후에 장관에게 전달할 수 있도록 주재국의 국내 정세 동향과 주요 현안에 대한 대응 방향 등을 종합적으로 정리해서 자료를 만들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이미 본부에서 자료를 만들어 장관에게 보고까지 마쳤을 텐데 비슷한 자료를 중복해서 만들 필요가 있겠느냐고 불만 섞인 문제 제기를 했더니, 내 상사는 자기도 그 심정 다 안다는 표정으로 웃으면서 “그래도 장관이 오는데 자료도 없이 빈손으로 공항에 나갈 수는 없지 않으냐”고 했다.

주한 외국대사관의 외교관들이 2015년 6월8일 서울 세종로 외교부 청사에서 한국 내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현황과 한국 정부의 대응 조치에 대한 우리 정부의 설명을 듣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주한 외국대사관의 외교관들이 2015년 6월8일 서울 세종로 외교부 청사에서 한국 내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현황과 한국 정부의 대응 조치에 대한 우리 정부의 설명을 듣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미국 외교관이 관두는 이유는

2000년 9월5일치 <뉴욕 타임스>(NYT)는 미국 국무부의 젊은 인재들이 앞다투어 사표를 내고 새로운 직장을 찾아 떠나고 있다는 특집기사를 내보냈다. ‘외교가 광채를 잃어가면서 젊은 외교관들이 직장을 떠나고 있다'는 제목이었다. 자료를 만들어서 보고하는 것을 중요한 일이라고 여기는 문화 속에서 지내고 있지만, 그러한 일의 대부분이 사실은 윗사람의 편의를 위한 것이고 윗사람을 대외적으로 그럴듯하게 보이게 해주기 위한 것이었다는 대목에서는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실질적으로 중요한 일을 하면서 전문성과 실력을 키우기는커녕 형식적이고 의전적인 일에 시간과 능력을 소모해야 하는 현실 속에서 느끼는 고뇌와 불만은 미국의 외교관이라고 해서 다를 게 없는가 보다 싶었다.

외교부를 그만두고 바깥세상에 나와 보니 외교부나 외교관에 대해서는 아직도 칭찬보다는 불만과 비판의 목소리가 더 많은 듯하다. 그러나 민간 분야에서 외교부에 영입되어 일했던 사람들 가운데는 실제로 외교부에 들어와서 경험해 보니 외교관들이 남다른 사명감을 가지고 있더라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여럿 있었다. 그중에 한국을 대표하는 어느 대기업의 사장이 된 사람은 민간 기업의 직원들도 외교관에 못지않게 능력 있는 인재들이지만 업무에 대한 헌신적인 자세만큼은 외교부 직원들이 훨씬 나았다고 평하기도 했다.

나는 외교부의 젊은 직원들이 한국에서는 물론 세계 무대에 내놓아도 뒤지지 않을 만한 우수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선배 세대들보다 여러 면에서 더 뛰어나다.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다이아몬드의 원석들이 외교부에서 경력을 쌓으면서 제대로 다듬어져서 몇 배 더 빛을 발하는 보석이 되어야 하는데 현실은 이런 잠재력을 살려내지 못하고 오히려 녹슬게 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쓸데없는 일이나,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줄여나가는 것만으로도 상황은 훨씬 나아질 것이다. 일하는 문화부터 과감하게 바꾸어서 한국의 젊은 외교관들이 세계의 초일류 외교관으로 성장하기를 기대해본다.

※ 이번 호를 끝으로 ‘조세영의 외교클럽’ 연재를 마칩니다. 좋은 글 보내주신 필자와 이 꼭지를 사랑해주신 독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조세영 동서대학교 특임교수 겸 일본연구센터 소장. 외교부에서 30년 근무한 뒤 정년보다 8년 일찍 퇴직해서 실천적 문필가를 꿈꾸며 살고 있다. 일본, 중국, 예멘,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일했고 동북아시아국장을 지냈다. 저서로 <봉인을 떼려 하는가: 미일동맹을 중심으로 본 일본의 헌법개정 문제>와 <한일관계 50년, 갈등과 협력의 발자취>가 있다. 거창한 외교론이 아니라, 외교라는 일을 쉬운 이야기로 풀어보려는 생각에 연재를 시작했다.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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