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해 11월15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아세안정상회의 계기에 양자 정상회담에 앞서 악수를 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중국 정부가 윤석열 정부에 ‘4불가(不可)’ 방침을 통보하면서 한-중 관계가 중대한 고빗길에 들어섰다. 윤석열 정부의 대응 기조에 따라 한-중 사이 추가 갈등과 충돌로 번질 위험을 배제할 수 없어 보인다. 특히 중국은 한국이 미-일 밀착 외교를 가속하면 북한 문제에 협조하기 어렵다는 뜻을 표시해 대중 관계 악화가 북 핵·미사일 문제에도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제기된다.
중국 정부는 지난 22일 류진쑹 외교부 아주사 사장(아시아 담당 국장)의 방한을 통해 한국에 대만 문제에 개입하거나 미·일의 중국 봉쇄에 깊이 동참하지 말라는 ‘금지선’을 제시했다. “핵심 이익을 건드리지 말라”는 첫 항목은 대만 문제와 관련해 ‘하나의 중국’ 원칙 존중이라는 1992년 한-중 수교의 근본정신을 훼손하지 말라는 요구를 담은 것이다. 중국은 대만을 포함한 홍콩, 신장위구르 문제 등은 다른 나라의 개입이나 타협이 불가능한 영역이라며 ‘핵심이익’이라고 지칭한다. 둘째 항목인 ‘친미·친일 일변도 반대’는 한·미·일 3국 군사동맹화 반대이자 대중국 봉쇄 전략을 취하는 미국과 일본에 동참해 중국 적대시 전략을 취하지 말라는 뜻을 담고 있다.
그러나 중국 시진핑 정부의 4불가 방침에 윤석열 정부가 우호적으로 호응할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윤 대통령은 대만 문제에 거침없는 발언을 해왔다. 지난 4월 <로이터> 인터뷰에서 “대만해협의 긴장 고조는 힘에 의한 현상 변경 시도 때문”이라며 “대만 문제는 중국과 대만만의 문제가 아니고 남북한 문제처럼 세계적인 문제”라고 밝힌 게 대표적이다. 더구나 윤 대통령은 ‘자유민주주의’를 내세운 가치외교로 미·일 밀착 외교를 가속하고 있다. 특히 한·미·일 정상은 올여름 미국에서 안보협력 강화를 주제로 한 3차 회담을 앞두고 있다.
윤 대통령은 ‘중국 봉쇄’라는 미·일 전략에 편승해 역대 한국 정부가 진보, 보수를 가리지 않고 취해온 ‘전략적 모호성’을 내던졌다. 윤 대통령은 일본 히로시마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와 한국에서 연 ‘한-태평양 도서국 정상회의’에서도 여러차례 인도·태평양 전략과 자유·인권·법치의 보편적 가치를 거론하며 사실상 중국을 겨냥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이 밝힌 4불가 방침 가운데 의미심장한 것은 넷째 항목이다. 중국은 “악화한 정세 속에서 한국의 대북 주도권 행사는 불가하다”고 밝혔다.
이는 북한 핵·미사일 문제를 포함한 남북 관계에서 중국의 ‘협조’를 기대하지 말라는 수준을 넘어서는 언급이다. ‘핵 문제와 북-미 관계의 열쇠는 미국이 쥐고 있지만, 그 문은 중국이 지키고 있다’거나 ‘북이 극단적 행동을 하면 최대 피해자는 한국’이라는 중국 쪽의 평소 언급에 비춰, ‘중국의 협조 없이 윤석열 정부는 한반도 문제에서 아무것도 얻을 수 없을 것’이라고 경고한 셈이다. 이는 “(중국과) 고위급 레벨에서도 필요한 현안에 대해 긴밀한 소통을 이어가고 있다”는 지난 22일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의 말과 온도 차가 크다.
중국은 아울러 지금 상태라면 시진핑 주석의 방한도 어렵다는 뜻을 밝혀, 먼저 한-중 관계 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겠다는 뜻도 내비쳤다. 시 주석의 방한은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4년 7월이 마지막이었다.
이제훈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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