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이춘식 할아버지가 지난 9월2일 자택을 방문한 박진 외교부 장관에게 강제동원 피해 해결을 당부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정부가 일본 정부와의 관계 회복에 속도를 내는 가운데 일제 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문제에서 피해자 목소리를 듣는데 소홀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피해자들은 한-일 정부 사이에 논의되는 배상 문제 해법들을 직접 들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윤석열 정부는 최근 일본과의 관계 강화에 치중하고 있다. 한-미 동맹과 한-미-일 협력 강화를 동시에 강조해온 윤 대통령은 지난 13일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한-일 정상회담을 하며 강제동원 배상 문제 조속한 해결에 공감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지난 16일 “양국 실무자간 해법이 한두 개로 좁혀지고 있다는 보고를 (윤 대통령이) 받았다”고 말했다. 윤덕민 주일대사는 26일 일본 <교도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윤 대통령이 연내에 일본을 방문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이명박 전 대통령 때인 2011년 12월 이후 중단된 한-일 셔틀외교 재개 가능성도 거론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당사자인 일제 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들은 뒤로 밀렸다. 28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외교부는 강제동원 피해자 지원단체쪽에 다음달 7일 면담하자고 요청했다. 외교부가 강제동원 피해자 쪽과 공식적으로 만나는 것은 지난 9월 박진 장관이 광주에서 강제동원 피해자인 이춘식(98) 할아버지와 양금덕(91) 할머니를 만난 뒤 석달 만이다. 이국언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이사장은 28일 <한겨레>와 통화에서 “9월2일 박 장관이 다녀간 이후로 어떤 연락도 받은 적이 없다. 언론에 나오는 것을 통해 진전되는 이야기를 짐작할 뿐이었다”고 말했다.
정부는 지난 7월 ‘강제동원 문제해결을 위한 민관협의회’를 꾸려 4차례 회의 만에 지난 9월초 종료한 뒤, 피해자 의견 수렴보다는 일본과의 대화에 집중했다. 정부는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문제의 유력한 해법으로 병존적 채무인수안을 염두에 두는 것으로 알려졌다. 병존적 채무인수안이란 2014년 강제동원 피해자 지원을 위해 설립된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한-일 양국 기업의 자발적 기부를 받은 뒤 이 돈을 피고 기업인 일본제철, 미쓰비시중공업을 대신해 피해자들에게 지급하는 방식을 말한다. 피해자 지원단체는 일본제철이나 미쓰비시중공업 등 전범기업의 사과와 배상을 요구하는데, 병존적 채무인수안으로는 이를 충족할 수 없다.
김영환 민족문제연구소 대외협력실장은 <한겨레>와 통화에서 “병존적 채무인수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채권자의 동의가 없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라며 “(강제동원 피해배상을 하라는 2018년) 대법원 판결의 의미를 너무 생각하지 않은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미쓰비시근로정신대 소송 원고인 양금덕 할머니와 피해자 지원단체는 29일 대법원 앞에서 미쓰비시 압류자산(상표권·특허권) 특별현금화명령 재항고 사건의 신속한 판결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 예정이다. 이날은 대법원이 강제동원 배상 판결을 내린 지 4년 되는 날이다.
신형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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