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남북관계 결별'이라는 초강수 선언에도 불구하고 14일 경기도 파주시 헤이리 갈대광장에서 열린 6.15공동선언 평화통일 문화제에서 임진강예술단이 북한 춤을 선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청와대가 대북전단 엄정 대응 방침을 발표하며 수습에 나섰지만, 북한은 13일 밤 김여정 조선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 명의로 “연속적인 보복 행동”을 다짐하는 담화를 발표했다. 정부는 14일 새벽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 회의를 소집하는 등 분주하게 움직였다. 6·15 남북공동선언 20돌 기념일에 남북관계가 파국으로 치닫는 사태는 피해야 한다는 긴박함이다.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은 14일 “오늘 새벽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주재로 국가안전보장회의 상임위 긴급 화상회의를 열어 현재의 한반도 상황과 대책을 점검했다”고 밝혔다. 정부는 이례적으로 회의 결과를 발표하지 않았다. 대신 통일부와 국방부가 각각 ‘김여정 담화’와 관련한 ‘입장’을 내놨다.
통일부는 “정부는 현 상황을 엄중하게 인식하고 있다”며 “남과 북은 남북 간 모든 합의를 준수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밝혔다. 국방부는 “한반도 평화 정착 및 우발적 군사 충돌 방지를 위해 ‘9·19 군사합의’는 반드시 준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북전단 단속을 포함한 남북 합의 이행 의지를 거듭 강조하며 북쪽에도 ‘합의 준수’를 촉구한 셈이다.
앞서 김여정 제1부부장은 13일 밤 담화에서 “멀지 않아 북남공동연락사무소가 형체도 없이 무너지는 비참한 광경을 보게 될 것”이라며 “다음번 대적 행동의 행사권은 우리 군대 총참모부에 넘겨주려고 한다”고 밝혔다.
정부는 이날 국가안보회의에서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와 관련한 북쪽의 추가 조처나 북쪽의 군사행동 등 예상 가능한 모든 상황을 상정해 대처 방안을 점검한 것으로 알려졌다. 6·15 공동선언 스무돌을 기념해 정부 차원의 공식 대북 발언 방향에 대해서도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임동원·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등 경험이 풍부한 원로들은 최근의 사태와 관련해 △일희일비하지 않는 인내심 △‘한반도 평화 과정’의 일관된 실천 △정세에 조응해 기회를 만들어가는 신축성을 당부했다. 원로들은 “북쪽의 태도에 비춰 당장은 대북특사 파견, 당국회담 제안은 실효성이 없을 것”이라며 “긴 호흡으로 남북협력사업에 대한 제재 면제 등 남북의 자율성을 높이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는 “남북관계에서 유일하게 남은 희망은 두 정상”이라며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비공개 원포인트 회동이라도 추진해 파국을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미국 국무부 대변인실은 13일(현지시각) “미국은 언제나 남북관계 진전을 지지해왔으며 우리는 북한의 최근 행보와 성명에 실망했다”며 “북한이 도발을 피하고 외교와 협력으로 돌아오기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이전의 대북 논평 내용에 “도발을 피하고”라는 문구가 추가됐다.
이제훈 박병수 서영지 기자, 워싱턴/황준범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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