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문수물놀이장에서 2017년 7월 북한의 어린이단체인 ‘조선소년단’ 대표들이 물놀이를 하고 있다. 평양/조선신보 연합뉴스
“우리 아들애가 물놀이장에 가고프다고 해서 이번 여름만 해도 여섯번째로 옵니다.” 평양시 보통강구역에 산다는 한 시민이 말한다. 10만9천㎡(약 3만3천평) 규모의 드넓은 터에 워터파크가 차려졌다. 아이들은 알록달록한 물미끄럼틀에, 어른들은 울렁이는 인공파도에 몸을 맡기고 즐거워한다. 지난해 9월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총련) 기관지 <조선신보>가 보도한 삼복 철 문수물놀이장 영상 속 장면이다.
김정은 시대가 열린 뒤 평양을 중심으로 북한 전역에 ‘놀 거리’가 늘어나고 있다. 2013년 10월 대형 워터파크인 ‘문수물놀이장’과 승마를 즐길 수 있는 ‘미림승마구락부’, 같은 해 12월 대규모 스키 리조트인 ‘마식령 스키장’이 문을 열었다. 계절과 상관없이 휴일, 명절 등 여가시간에 찾아갈 수 있는 놀이동산, 입체율동영화관(4D영화관), 스케이트장, 사격장도 늘었다.
■ 놀 거리가 많아진다 문수물놀이장에서는 실내 및 야외 수영장뿐 아니라 배구장, 배드민턴장, 농구장, 롤러스케이트장 등 다양한 체육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 2017년 남쪽에 오기 전까지 여름철마다 문수물놀이장을 즐겨 찾았다는 20대 정아무개씨는 “북한돈 2만5천원이면 4시간을 이용할 수 있다. 초과하면 시간당 몇천원씩이 추가된다”며 “안에 식당이 있어 놀다 배가 고프면 먹을 것을 사 먹고 시원한 맥주를 한잔 들이켜기도 한다”고 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13년 8월부터 10월 개장 때까지 문수물놀이장을 네차례 찾아 직접 둘러볼 정도로 큰 관심을 보였다.
북한이 2013년 10월 평양시 교외에 준공한 승마 시설 미림승마구락부(클럽)의 모습. 평양/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사계절 가족 나들이나 연인끼리의 데이트에는 북쪽에서도 놀이동산이 제격이다. 2012년 7월 준공된 능라인민유원지가 대표적이다. 연건축면적이 1만4940㎡(약 4500평)에 이르는 종합놀이시설로 놀이동산을 비롯해 1460석짜리 곱등어관(돌고래 수족관), 물놀이장과 농구장, 배구장, 미니골프장과 같은 체육시설 등도 함께 있다. 2013년 이 유원지 안에 입체율동영화관이 새로 생겨 화제가 됐다.
이 놀이동산에는 관성단차(롤러코스터)를 비롯해 높은 곳에서 갑자기 떨어지는 급강하탑, 공중에서 360도로 도는 회전매 등 각종 놀이기구 13대가 갖춰져 있다. 놀이기구를 탈 때마다 돈을 내는데 기구마다 북한돈으로 500~1천원 정도라고 전해진다. 북한이탈주민 정씨는 “옛날에도 만경대유희장, 대성산유희장 같은 놀이동산이 있었지만 설비가 낡아 성인들은 탈 게 없었다”며 “김정은이 젊으니까 놀이문화에 많이 투자하는 게 아니겠나”라고 했다.
■ 다양한 놀이시설, 평양시 넘어 전역으로 확대될 듯 최신식 놀이시설은 아직까지 평양에 집중된 편이다. 물놀이장이나 사격장 등의 이용료가 결코 싸지 않아 서민들이 즐겨 찾기에는 한계가 있다. 다만 김 위원장이 2013년 1월 집권 뒤 처음으로 발표한 신년사에서 평양시를 중심으로 전국에 “현대적인 문화후생시설과 공원, 유원지들을 더 많이 건설”해 인민들이 “새 시대의 문명한 생활을 마음껏 누리도록 해야 한다”고 말한 데서 알 수 있듯 평양을 넘어 전국 각지에 다양한 놀이시설이 늘어나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2014년 강원도 원산에서 남쪽으로 온 한 20대 여성은 2013년 원산시에 새로 생긴 유원지를 소개하며 “회전그네 등 놀이기구 6개가 있었다. 평양에서 쓰다 가져온 모양인지 약간 낡긴 했지만 ‘평양에 안 가고도 놀이기구를 타고 놀 수 있구나’ 하는 생각에 좋았던 기억이 있다”고 말했다. “입장료는 500원으로 싼 편이었다”고 그는 덧붙였다. 양강도에서 2016년 남쪽으로 온 40대 여성도 “휴식일, 명절 계기에 돈 있는 사람, 없는 사람 다 놀이장에 간다”며 “타고픈 기구들도 타고, 놀이장 안에 있는 시설에서 총쏘기, 활쏘기 하면서 논다. 입장료는 국정 가격이라 그렇게 비싸지 않다”고 전했다.
2015년 12월 미국 <자유 아시아 방송>(RFA)은 미 존스홉킨스대 국제대학원 한미연구소의 커티스 멜빈 연구원의 상업 위성사진 분석 결과를 인용해 북한 전역에 물놀이장, 영화관, 스케이트장 등 유흥·오락시설, 체육시설이 건설됐거나 건설되고 있다고 했다.
북한 학생들이 2018년 1월28일 강원도 원산 인근에 위치한 마식령 스키장에서 스키를 타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원산/AP 연합뉴스
■ ‘인민 사랑’ 과시하고 국가 재정에도 도움 김정은 시대 들어 놀이·편의시설 건설에 집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놀이시설 확대는 “‘인민제일주의’를 실천하는 지도자로서 위상을 높일 수 있는 유효한 수단”이자 “정치적 성과를 인민이 체감할 수 있는 정책”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주승현 인천대 교수는 “사람들이 어느 정도 생계가 해결되면 문화생활 향유에 대한 욕구가 생긴다. 당국이 북한 주민에게 그런 공간을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체제 유지에 기여할 수 있다고 판단한 점이 작용했을 것 같다”며 “스위스 유학 경험이 있는 김정은 위원장이 여가나 놀이문화에 익숙하다는 점도 (놀이문화 확대에)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고 풀이했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인민 친화적인 이미지를 강조하는 동시에 실제 수익도 된다”며 “현재 시장화가 진행되면서 시중에 자금이 널려 있고, (인민들의) 소득이 늘어나고 외화도 많이 풀려 있다. 시설을 만들 때 민간 자본이 투자하도록 한 뒤 허가권을 내주고 국가도 수익의 일정 부분을 거둬들인다”고 짚었다.
노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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