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태평양사령부는 지난 23일 한밤중에 괌 기지에서 발진한 전략폭격기 B-1B 등을 동원해 북방한계선 북쪽에서 단독으로 비행작전을 수행했다. 우리 쪽 방공식별구역에서는 통상적으로 우리 공군기가 호위하지만, 이날은 일본 오키나와 기지에서 출동한 미 공군의 F-15C 전투기 편대가 동반 비행을 했다. 더구나 미국은 이날 작전 2시간 전에 우리 쪽에는 ‘통보’만 한 것으로 알려져, 미국의 대북 군사행동이 우리의 동의가 없이도 이뤄질 수 있다는 우려를 자아냈다. 사진은 지난 18일 한반도 상공에서 미국의 B-1B 전략폭격기가 MK-84 폭탄을 투하하고 있는 모습. 공군 제공
23일 자정 미국 대북 군사작전
전략폭격기 주축 공군 전력외
미 해군 구조함도 동해에 출동
우리쪽엔 작전 2시간 전 ‘통보’만
우리 공군의 작전 능력 부족 탓
‘결정적 작전’엔 미군 단독 선호
우리 동의 없는 대북 군사행동 등
군사적 ‘코리아 패싱’ 가능성 커
19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북한 완전 파괴” 연설을 필두로 유엔 총회에서 미국과 북한의 막말 전쟁이 벌어지던 지난주. 미 태평양사령부는 트럼프 연설이 있던 바로 그날 우리 정부에 “주말쯤에 B-1B 전략폭격기를 전개하겠다”고 통보했다. 그 하루 전날인 18일에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송영무 국방장관 역시 “곧 미국의 전략폭격기가 한반도에 전개된다”며 이 폭격기를 “일본 전투기가 호위하다가 한국 방공식별구역(KADIZ)에 진입하면 한국 전투기가 호위를 한다”고 작전 양상을 설명했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9월 하순에 있을 전략폭격기 전개는 예전과 같은 통상적인 비행 정도로 예상됐다.
그러나 유엔 총회에서 트럼프의 초강경 발언에 북한의 격렬한 반발이 맞부딪히며 긴장이 고조되자, 태평양사령부는 전략폭격기가 동해상의 북방한계선(NLL)을 넘어 북한 근처로 접근하는 과감하고 공세적인 기동을 하기로 하고 그 준비 과정을 한국 정부에는 일체 비밀에 부쳤다. 23일 자정에 이루어진 작전에 참여한 건 전략폭격기와 오키나와에서 출동한 미군 F-15 전투기 편대가 전부가 아니었다. 먼저 무인정찰기(UAV)로 작전지역을 정찰해 안전 여부를 확인하고, 미 해군 소속의 전자전기가 투입돼 북한의 방공 레이더를 무력화할 수 있는 대책도 시행됐다. 북한의 조밀한 방공 감시망과 조기경보 능력을 고려할 때 이렇게 여러 대의 항공기가 출동하면 탐지될 가능성이 높다는 계산에서였다. 만일의 경우 북한의 중장거리 지대공 미사일(SA-2, 3, 5)의 공격에 미 항공기가 피해를 입을 가능성까지 고려해 주변 해역에 해군의 구조함까지 대기시켰다. 이 외에도 지속적인 작전 능력을 보장하기 위해 공중급유기를 띄우는 보완적인 조치까지 이루어졌다. 한국과 일본의 참여가 전혀 없는 미군의 단독 작전, 즉 미국이 아시아-태평양으로의 귀환을 외친 오바마 대통령 이래 발전시킨 공해작전(air-sea battle) 개념이 실전적으로 선보인 셈이다.
한국의 보안체계를 믿지 않는 미군
태평양사령부는 실제 작전이 시행되기 두 시간 전에야 우리 국방부에 그 사실을 알려 왔다. 이에 대해 한 군 관계자는 “협의가 아니라 통보였다”고 말한다. 교전이 벌어질 수도 있는 과감한 작전이 우리 정부와의 사전 협의 없이 이뤄졌다는 사실은 여러모로 충격적이다. 미국이 단독으로 북한을 타격할 수 있는 가능성이 실제로 나타났다는 점은 한반도에서 전쟁과 평화를 결심할 수 있는 주권이 과연 우리 정부에 있느냐는 의구심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이에 대해서는 두 가지 해석이 있다. 극도의 기밀을 요하는 이와 같은 군사작전을 사전에 한국과 협의하는 과정에서 정보가 누설될 가능성을 우려했다는 시각이다. 수시로 북한에 해킹을 당하는 한국의 보안체계를 미국은 믿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또 다른 해석은 어차피 한국 공군은 미국과 연합작전을 수행할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미국 단독으로 작전을 시행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하고 이를 비밀에 부쳤다는 설명이다. 한국 공군의 전투기가 미국 전투기와의 연합작전을 할 수 있는 데이터링크와 피아식별(IFF) 능력이 부족해 야간의 한-미 연합작전이 오히려 부담이 되었다는 시각이다.
하지만 이러한 군사적 이유 때문에 미군의 단독작전이 불가피했더라도 한국 방공식별구역을 경유해 이뤄지는 군사작전에 우리 측과의 사전 협의가 없었다는 점은 이후 한반도 위기관리에 커다란 문제점으로 부각된다. 중국이 한국을 바라보면서 가장 자주 표출하는 의문은 “유사시 미국이 북한을 공격할 때 한국 정부가 반대할 수 있겠느냐”다. 이와 관련해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8·15 경축사에 이어 9월의 유엔 총회 연설에서 일관되게 강조한 바는 “우리의 동의 없이 한반도에서 전쟁은 절대 안 된다”는 강력한 메시지였다.
지난 23일 동해 북방한계선 북쪽의 국제공역에서 ‘무력시위’ 비행을 한 미국 공군의 전략폭격기 B-1B가 이날 오후 미국 괌 앤더슨 공군기지에서 출격 준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러나 이번 미군의 동해 작전은 우리의 동의 없이도 통제할 수 없는 분쟁이 발생하는 구체적 이미지를 실제로 보여줬다. 지난 8월에 버웰 벨, 제임스 서먼 등 전 주한미군사령관들이 “미국은 한국 영토 밖에서는 한국 정부 동의 없이 북한을 공격할 수 있다”고 발언하면서 불거진 ‘코리아 패싱’의 가능성이 구체화된 셈이다. 한국 정부의 자기결정권에 대한 주변국들의 불신이 생길 수밖에 없게 됐다.
북한에 대한 군사옵션을 만지작거리는 트럼프 정부에 한국, 일본과 같은 동맹국들과의 복잡한 협력 절차는 북한에 대한 신속하고 결정적인 작전 수행에 외려 번거로울 수 있다. 각기 수준이 다른 한·미·일의 군사력은 동해의 좁은 공역에서 임무 영역을 구분하고 지휘통제를 구성할 때 자칫 혼란을 낳을 수 있으며, 이 경우 동맹국 간에도 갈등이 생길 수 있다. 이 때문에 미 전략폭격기가 출동할 경우 일본 방공식별구역에서는 일본 전투기가, 한국 방공식별구역에서는 한국 전투기가 호위를 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하지만 공중에서 과연 그 경계선을 명확히 구분하고 정확히 준수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따라서 우발적으로 국적이 다른 전투기가 뒤엉키는 상황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고, 복귀하는 전투기와 전진하여 투입되는 전투기 간에 혼란이 없도록 통제해야 하는 또 다른 복잡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아군이 뒤섞이는 전투 상황을 군에서는 ‘후방 돌파작전’이라고 한다. 극도로 질서정연하게 통제되어야 하기 때문에 군 장교들이 가장 어렵다고 하는 작전이다. 게다가 지금까지 한·미·일은 동해에서 연합 기동이나 타격 훈련을 시행해본 경험이 없다.
이런 사정에도 불구하고 미 태평양사령부가 단 며칠 만에 북한에 대한 과감한 작전을 계획하고 시행한 것은 압박과 제재 국면에서도 북한에 대한 군사적 선택(옵션)이 병행될 수 있다는 점을 암시한다. 이제껏 트럼프 정부가 북한에 대한 군사적 옵션을 유보한 것은 압박과 제재를 최대한으로 끌어올려 북한을 굴복시킬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믿기 때문이었다. 앞으로 6개월 정도는 경제와 외교적 수단에 의해 북한을 압박하되, 더 이상 경제·외교 수단으로 효과가 없다고 판단될 시점에서야 군사적 수단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게 대체적인 미국의 입장이다.
방공망 뚫린 북, 괌 맞대응할 수도
그런데 유엔에서 극도의 막말 공방이 이어지고 충동적인 성격의 트럼프와 김정은이 정면충돌함에 따라 군사적 수단을 앞세운 대북 압박이 앞당겨질 수 있다는 관측에 힘이 더 실리는 분위기다. 이번 동해작전은 그럴 가능성을 실제로 보여줬다. 향후에 미국의 전략자산이 한반도와 그 주변에 증강될 경우 그 가능성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미국이 한반도에서 결정적 작전을 주도하고 한국과 일본은 그 후방지원의 역할을 맡는 양상이 두드러질 것이다. 이 과정에서 과연 우리가 한반도 주변 정세를 주도할 수 있느냐, 우리가 우리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가라는 실존적인 문제에 부딪히게 된다.
북한은 미군의 동해작전에 사실상 무방비로 뚫려 있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은 분위기다. 사태를 파악하지 못해 침묵하던 북한은 리용호 외무상을 통해 뒤늦게 “미국의 전략폭격기를 격추하겠다”고 자위권을 주장하고 나섰지만 그 현실성이 부족하다는 평가가 많다. 북한이 보유한 지대공 미사일 가운데 가장 사거리가 긴 SA-5는 250㎞ 안의 목표물을 고도 40㎞ 이내에서만 공격할 수 있다. 그러나 미군 B-1B의 순항미사일 재즘(JASSM)은 사거리가 370㎞이고, 그 개량형은 930㎞에 달해 북한의 지대공 미사일 사정거리 밖에 있다. 게다가 북한의 이 대공미사일의 레이더마저 전력 부족과 노후화로 부품 조달이 되지 않아 실제로 가동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1만3800문이 넘는 고사포와 휴대용 대공미사일, SA-2·3·5 중장거리 대공미사일 등 세계에서 가장 조밀한 방공망을 갖추고 있다는 북한의 방어망은 원거리 타격으로 대부분 무력화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재작년에 김정은 위원장이 군부대를 방문해 새로운 대공미사일 시스템 구축을 독려하였음에도 북한이 자체 방어의 허점을 보인 것은 상당한 충격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실제로 이번 동해작전을 준비하면서 미군 측은 북한의 대공 방어망을 파악하고 교전사태가 발생하면 타격할 준비까지 갖췄던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이번 무력시위가 괌에서 발진한 전략폭격기에 의해 이루어진 점은 지난 8월14일에 김정은 위원장이 전략군사령부를 방문해 승인한 ‘괌 타격계획’의 실행 여부에도 초미의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8월 중순에 이어진 한-미 연합 군사훈련(UFG) 때 문재인 정부는 괌의 전략폭격기가 한반도로 출동하지 않도록 요청했고, 미국은 이를 받아들인 바 있다. 당시 문 정부는 8월 위기설이 고조되는 시점에서 한반도 전쟁 위기를 불러올 수 있는 전략자산 배치의 자제를 미국에 요청하면서 한반도 정세는 다소 유화 국면으로 진행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자 북한은 최고지도자의 명령을 변형해 괌이 아닌 북태평양으로 화성 12호 중거리미사일을 발사했는데, 공교롭게도 괌에 400㎞ 정도 못 미친 지점에 떨어졌다. 괌 타격계획의 완성을 위해 북한은 9월에 재차 동일한 미사일을 발사했다. 이번에는 괌보다 200㎞ 정도를 더 날아갔다.
두 번의 미사일 발사는 군에서 전투원들의 영점사격 훈련과 유사하다. 표적까지의 거리에 정확성을 기하기 위해 연료량을 조절하는 방식으로 두 번 시험발사가 이루어진 만큼 이번에는 더 정확한 거리 측정을 위해 세 번째 발사 가능성도 커졌다고 보인다. 이와 함께 리용호 북한 외무상이 뉴욕에서 공언한 대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정상각도로 발사해 미 본토를 위협하는 수준으로 북한의 공세가 확장될 가능성도 충분하다. 이런 일련의 무력시위 시나리오가 실제로 실행된다면 10월 위기설에도 상당한 무게가 실릴 것이다. 평창겨울올림픽이 채 다섯달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어떻게든 파국을 막아야 하는 문 정부의 위기관리 능력이 시험대에 오를 수밖에 없다.
중국 군부도 ‘한반도 전쟁 위기’ 우려
10월에는 주변 정세도 매우 긴박해진다. 10월 중순에 열리는 중국의 제19차 당 대회가 끝나면 시진핑 2기 정권이 출범한다. 중국의 권력 재편이 마무리되는 시점인 11월에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 주석과 정상회담을 하고, 조지프 던퍼드 미 합참의장이 곧이어 중국 총참모부와 군사회담을 진행한다. 지난주에 트럼프 대통령은 직접 시진핑에게 전화해 “당 대회가 끝나는 대로 곧바로 중국으로 가 당신을 만나겠다”고 말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때까지는 한반도에서 북한에 대한 군사옵션이 제재와 압박과 병행될 가능성이 높다.
미-중 정상급 대화에서는 한반도 비상사태 계획도 의제에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9월에 중국과 북한의 접경지역을 방문한 던퍼드 합참의장에게 쑹푸쉬안 중국 북부군사령관은 “한반도 유사시 중국은 북한에 개입할 것”이라며 그 상세계획까지 브리핑했다. 9월 중순 중국을 방문해 면담한 중국군 고위 장성 역시 필자에게 그 사실을 부인하지 않았다. 최근 중국 군부 역시 사드 문제보다 한반도 전쟁 위기에 더 높은 관심을 표명하며 “내년 2~3월 사이가 최대 고비가 될 것”이라며 필자와 완전한 의견 일치를 이루었다. 그 서막이 바로 지난주 토요일 자정의 동해 미군작전일지도 모른다. 평화를 위한 시간이 많지 않음을 강력히 암시하는 사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