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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국방·북한

한반도·태평양·미국 본토…북한이 그리는 세 개의 전쟁

등록 2017-09-02 11:14수정 2017-09-04 18:25

[토요판] 김종대의 군사
북한의 전략과 공격 시나리오
북한 조선중앙티브이가 8월30일 밤 방영한 ‘백두산 총대는 대답하리라’는 제목의 음악 영상물 맨 마지막 장면에서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4’형으로 추정되는 미사일 4발이 동시에 발사되는 모습의 합성사진이 등장했다. 연합뉴스
북한 조선중앙티브이가 8월30일 밤 방영한 ‘백두산 총대는 대답하리라’는 제목의 음악 영상물 맨 마지막 장면에서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4’형으로 추정되는 미사일 4발이 동시에 발사되는 모습의 합성사진이 등장했다. 연합뉴스

북한, 26일 깃대령 부근에서 비행체 발사
정부, ‘신형 방사포’→‘미사일’ 혼선 야기
유사시 성주포대 타격 가능성 보인 것
29일엔 일본 통과하는 화성-12형 발사도

세가지 수준 정의된 북한의 전쟁 개념
7월 이후 세 차례 미사일 발사로 구체화
‘핵 강대국’ 반열 오르려는 의지 드러내
무한전쟁은 없다는 교훈 깨달아야

8월26일 토요일 아침 6시49분. 휴전선의 우리 경계부대는 북한지역의 강원도 깃대령 부근에서 발사된 정체불명의 비행체를 포착하고 그 영상을 열상감시장비로 녹화했다. 공중으로 사라진 첫 번째 비행체에 이어 두 번째 비행체는 공중에서 폭발하며 화염을 일으켰다. 세 번째로 또 다른 비행체가 발사되어 공중으로 사라지는 영상이 연이어 녹화됐다. 이 사실이 합동참모본부를 통해 청와대에 보고됐다. 8시30분경에 정의용 대통령 국가안보실장 주재로 열린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에서는 비행체가 280여㎞를 낮은 고도로 비행한 점을 주목하며 미사일이 아니라 대구경(300㎜) 신형 방사포일 가능성이 높다는 추론이 제기됐다. 회의 직후 윤영찬 국민소통수석은 “북한이 오늘 발사한 발사체는 현재로서는 개량된 300㎜ 방사포로 추정되나 정확한 특성과 재원은 정밀 분석 중”이라고 발표했다. 미군 태평양사령부 대변인이 청와대 회의 1시간 전에 이미 “북한이 단거리 탄도미사일 3발을 쏘았다”고 발표한 상황에서 청와대의 ‘신형 방사포’ 발표는 즉각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우리 군의 감시자산인 그린파인 레이더는 비행체의 궤적을 탐지할 수는 있으나 비행체의 정체까지 정확하게 밝히는 데 한계가 있다. 그러나 이날 발사된 비행체는 영상으로 녹화돼 폭발 장면까지 우리가 직접 목격한 상황이었다. 구조가 간단한 방사포는 발사된 직후에 공중에서 폭발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나 미사일은 복잡한 점화장치와 산화제, 연료탱크 등이 장착되어 있기 때문에 아주 작은 변수에 의해서도 폭발 사고를 일으킬 수 있다. 실제로 북한이 그간 여러 차례의 미사일 시험에서 실패한 이유가 발사 직후의 폭발 사고 때문이었다.

게다가 산악지대인 깃대령에는 이미 북한의 스커드 미사일 기지가 설치되어 있다는 사실을 우리 정보당국은 오래전부터 파악하고 있었다. 2014년 2월에 이곳에서 단거리 미사일 4발이 실제로 발사된 적이 있지만 산악지형에서 미사일 이동이 거의 포착되지 않기 때문에 사전에 발사 징후를 전혀 파악하지 못했다. 북한의 12개 미사일 기지 중에서 남한에 가장 근접한 이곳은 아무런 사전 경고 없이 북한이 단거리 미사일로 남한을 위협할 수 있는 천혜의 미사일 기지라고 할 것이다. 이런 정황을 종합하면 첨단 감시자산을 보유하고 있지 못한 한국군일지라도 8월26일에 북한이 스커드 미사일을 발사했다고 추론할 수 있는 근거는 차고 넘쳤다.

반면 300㎜ 신형 방사포일 가능성은 불투명했다. 우선 북한은 새로운 방사포를 실전에 배치해 운용해본 경험이 없다. 이 방사포는 2015년 10월 북한의 열병식에서 처음 선을 보여 우리에게 공포를 불러일으킨 북한판 명품 무기로 알려져 있다. 당시 언론은 이 방사포의 사정거리가 300㎞에 달해 북한이 휴전선 근방에서 발사할 경우 평택 주한미군기지는 물론이고 계룡대까지 사정권에 들어간다며 온통 호들갑을 떨었다.

성주 사드기지가 핵심 표적

그해 열병식 이후 전방부대 어디에서도 실전 배치된 이 방사포를 목격한 바가 없다. 그러나 한 번 공포의 이미지로 각인된 순간 마치 우리는 이 방사포가 금방 서울과 주한미군기지를 불바다로 만들 것이라는 강박관념에 시달려왔다. 그런 고정된 이미지와 관념이 북한이 단거리 발사체를 발사하면 “이게 바로 신형 방사포가 아닐까?”라는 의심으로 주저없이 연결되도록 했다. 군 당국과 청와대가 이날 발사된 발사체를 신형 방사포로 의심한 또 한 가지 이유는 비정상적으로 낮은 비행고도였다. 미사일이라고 보기에, 50㎞ 미만이라는 낮은 고도는 왠지 어울리지 않았다. 이런 낮은 고도로 탄두 중량이 거의 1톤에 이르는 탄도미사일을 280㎞나 날려보낸다는 것 자체가 어딘가 이상해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도 우리 군 당국은 또 다른 합리적 해석을 필요로 했다. 낮은 고도로 비행하는 것은 우리의 방공 감시자산과 미사일방어(MD)망을 돌파하는 효과적인 비행이다. 이날 깃대령에서 발사한 북한 미사일의 비행거리 280㎞는 바로 그 지점에서 성주 사드 포대까지의 거리와 거의 일치한다.

조한규 합동참모본부 작전부장이 8월31일 오전 국회 국방위원회에 출석해 북한 미사일 발사 관련 보고를 하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조한규 합동참모본부 작전부장이 8월31일 오전 국회 국방위원회에 출석해 북한 미사일 발사 관련 보고를 하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미국 과학자협회가 2014년에 발표한 ‘탄도미사일 방어의 유의미성’(making sense of Ballistic Missile Defense) 보고서에 따르면 사드 포대는 고고도에서 적의 미사일을 요격하는 무기체계이기 때문에 정상적으로 성능을 발휘하려면 적과의 거리를 최소한 1천㎞ 유지해야 한다. 그러나 성주는 휴전선과의 거리가 불과 270㎞에 불과하다. 이런 비정상적 배치는 거의 수직으로 떨어지는 북한의 준중거리 미사일을 요격한다는 가정에서만 유효하다. 그러면 언제 우주에서 떨어질지도 모르는 준중거리 미사일을 감시하느라고 하늘을 향해 목뼈가 부러지도록 고개를 꺾고 바라보는 사이에 북한은 단거리 미사일을 낮게 발사하여 고개 아래의 목을 노리는 작전술을 개발할 것이다.

그런 작전술을 개발하는 데는 비용도 얼마 들지 않는다. 이번에 깃대령에서 동해상으로 발사한 스커드 미사일의 각도를 90도 정도 남쪽으로 틀면 바로 성주 타격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북한은 이미 올해 6월 성주에 조잡한 무인기를 날려보내 성주 포대 촬영을 시도했다. 유사시에 성주 포대의 타격 지점을 좌표로 확보하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북한은 유사시 사전에 전혀 징후를 드러내지 않고도 스커드 미사일과 언제 실전 배치될지 모르는 방사포를 동원해 무차별로 성주 포대를 타격할 수 있다. 개전 초기 재래식 무기로도 미사일 방어망을 제압하는 가운데 전략군의 화성포병부대들은 원거리의 태평양 미군 작전기지들을 겨냥할 것이다.

‘희망적 사고’의 덫에 빠졌나

미국의 전략자산 배치에 흥분하는 사드 찬성론자들은 이런 문제에 답변을 하지 못한다. 뛰어난 군사전문가들은 프로 바둑기사가 상대의 수를 재빠르게 간파하고 수순을 예측하듯이 북한의 무력시위 행태를 관찰하면서 그 배후에 있는 의미를 한순간에 읽어버린다. 이번에 청와대와 합참이 북한의 수를 읽는 데 유능한 모습을 보이지 못한 이유는 한·미가 북한에 대한 유화책으로 대화국면을 기대하는 과정에서 작동한 ‘희망적 사고’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국방장관, 합참의장이 현행 작전을 책임지는 합참의 작전본부 출신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느슨한 장기 전략을 연구하는 전략본부장 출신이고, 청와대에는 군 작전에 정통한 고위 장교가 보직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부족한 전문성이 집단사고와 결합되는 순간 위기 관리의 허점을 드러낸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한이) 추가도발을 자제하고 있는 데 대해 존중한다”며 한-미 연합훈련을 축소시키고 전략자산을 괌에서 한반도로 배치하지 않기로 하는 등 파격적인 조치로 북한을 대화에 초대하는 동안, 북한은 더욱더 담대한 전략적 행동을 계획하고 있었다. 깃대령과 달리 북한의 평안북도 동창리는 미국의 정보자산이 항시 감시를 집중하는 노출된 미사일 발사장이다. 미국은 8월28일 미사일에 연료를 주입하는 장면을 포착하고 미사일 발사가 임박했다고 판단한 뒤 이 사실을 우리 군 당국에 알려왔다. 평양의 순안비행장으로 이동한 화성-12형 미사일은 29일 새벽 5시57분에 북태평양으로 발사됐다.

8월14일 김정은 노동당 중앙위원장은 전략군사령부를 시찰하면서 김락겸 사령관으로부터 ‘괌 타격계획’을 보고받은 바 있다. 여기서 김 위원장은 “미국이 우리의 자제력을 시험하며 조선반도 주변에서 위험천만한 망동을 계속 부려대면 이미 천명한 대로 중대한 결단을 내릴 것”이라며 을지프리덤가디언(UFG) 한-미 연합훈련이 강행될 경우 위기를 끌어올릴 것임을 경고했다. 이후 실제 한-미 연합훈련에서 전략자산이 한반도로 전개되지 않는 어정쩡한 양상으로 이어지자, 북한은 괌 타격계획을 변형해 화성-12형 미사일 한 발을 일본 영공을 통과하도록 발사했다. 괌에 이르는 것과 거의 유사한 사거리였다. 북한이 괌을 타격하는 데 사용하겠다던 화성-12형 미사일은 최대 5000㎞ 사거리를 비행할 수 있으나 연료량을 조절하는 방법으로 그 사거리를 줄일 수 있다. 29일 발사된 미사일은 일본 북방 열도의 쓰가루 해협 근처를 약 500㎞ 고도로 통과해 북태평양 해상에 떨어졌다. 한·미가 북한에 유화적인 접근을 시도하는 동안에도 “북한이 괌 타격이나 그와 유사한 행동을 할 것”이라고 정확히 예측한 김동엽 경남대 교수는 김정은 위원장의 괌 타격계획 승인은 이미 최고 지도자의 결정을 내린 것이기 때문에 “실행될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했다.

북한에 유화적인 제스처를 보인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이 29일 미사일을 발사하자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의 통화에서 “북한과 대화는 없다” “모든 옵션을 검토한다”는 원칙론적인 입장만 반복하면서 북한에 새로운 강경대응책을 내놓지는 않았다. 북한의 대담한 도발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여전히 북한에 대해 차분하게 관망하는 분위기다. 이에 반해 정우택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등 국내 보수진영은 “미국이 곧 한국 정부 동의 없이 북한을 공격하게 될 가능성”을 수시로 언급하면서 문재인 정부에 대한 안보 공세로 방향을 틀었다. 반면 북한은 29일 미사일 발사를 통해 괌 타격의 신뢰성을 높이면서 여차하면 하와이, 일본 등 태평양에서 미군 작전기지들을 제압할 수 있는 능력을 과시하고 있다. 8월14일 전략군사령부 방문 당시 벽면에 걸린 지도와 북한의 행동계획은 점차 그 형상을 드러내고 있다.

전쟁 친화적 자기 정체성의 산물

북한의 전쟁 개념은 크게 한반도 전장, 태평양 전장, 미 본토 전장이라는 세 가지 수준으로 분류된다. 7월28일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 화성-14형 발사는 미 본토 타격 계획에 따른 것이고, 8월26일 스커드 미사일 발사는 한반도 타격 계획에 따른 것이며, 그 직후 29일 화성-12형 발사는 태평양 작전지역 타격 계획에 따른 것이다. 북한은 3개의 전쟁을 각기 다른 수준의 공격 시나리오로 구성하면서 전체적으로는 세계의 중심에 북한을 설정하고 있다. 이렇게 다양한 분쟁 수준을 계획하고 있다는 점은 북한이 핵 강대국의 반열에 스스로를 올려놓았다는 전쟁 친화적인 자기 정체성의 산물이다.

7월부터 8월말까지 세 번의 미사일 발사를 통해 북한이 꿈꾸는 군사적 이상, 강자가 되어야 생존할 수 있다는 절박성은 구체적 이미지로 완성됐다. 이것은 매우 체계적이고 일관된 국가 계획이다. 그러나 그 무모함 역시 비정상적이다. 이렇게 전 세계를 상대로 전쟁을 벌이는 계획을 세운다면 북한은 결코 이 전쟁에서 이길 수 없다. 전쟁이란 정치적 목적에 맞게 합리적 수준에서 제한되는 영역일 뿐이다. 무한 전쟁이란 존재하지도 않고 계획할 수도 없다. 과거 눈앞의 승리에 현혹되어 무모한 전쟁으로 치달았던 군국주의 일본이나 독일이 합리적 수준에서 전쟁의 수준을 제한하지 못한 결과 국가가 파멸했다는 점을 북한은 기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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