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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국방·북한

킬체인으로 ‘백두산 미사일’을 잡을 수 없다면…

등록 2017-08-06 10:07수정 2017-08-06 10:13

[토요판] 김종대의 군사
‘북-중 완충구역’의 정치학
지난달 29일 낮 북한 <조선중앙텔레비전>은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지켜보는 가운데 북한이 전날 밤 대륙간탄도미사일급 ‘화성-14'형 미사일을 시험발사하는 영상을 공개했다. 연합뉴스
지난달 29일 낮 북한 <조선중앙텔레비전>은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지켜보는 가운데 북한이 전날 밤 대륙간탄도미사일급 ‘화성-14'형 미사일을 시험발사하는 영상을 공개했다. 연합뉴스

한반도 최북단의 북한과 중국의 1300㎞ 국경지대는 근세 이래 동북아 국제전쟁이 결정되는 기준선이었다. 1592년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명나라는 조총을 가진 일본군이 광활한 옥수수밭인 만주 일대를 헤집고 다닐 경우 방어가 불가능하다고 보았다. 조선에 대규모 파병을 단행한 명나라는 그 여파로 곧 멸망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1950년의 한국전쟁에서 신생 중국 정부는 맥아더가 유엔군 사령관이라는 점을 주목했다. 미국의 최고사령관들은 ‘제한전’이라는 개념을 알지 못한다. 전쟁을 극단으로 밀어붙여 최종 승리를 거두는 것이 군대의 본질이라고 믿는 미군 사령관들은 한반도를 석권하고 중국 본토로 밀려들어 올 것이 분명해 보였다. 마오쩌둥이 국내의 숱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항미원조’ 의용군을 한반도로 급파하게 된 이유는 미군이 한만 국경지대로 진출하는 것을 저지하기 위함이었다. 중국의 입장에서는 300㎞에 불과한 평양~원산 선에서 미군을 저지하는 것이 중국 안보를 위한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이러한 한반도 지정학은 남북이 분단된 지금도 불변이다. 한미연합사령관은 유사시 한미연합군의 군사공격을 감행할 경우 중국에 대한 오폭으로 중국이 전쟁에 개입하지 않도록 북-중 국경선을 따라 폭 45㎞의 군사적 완충지대를 설정해놓는데 이를 북방버퍼존(NBZ)이라고 한다. 이 영역 부근의 군사표적은 별도로 관리하되, 어떠한 경우에도 연합사령관의 통제를 받지 않고 한국군이 단독으로 공격할 수 없다. 연합사령관 역시 완충구역을 폭격하려면 한·미 통수체계, 즉 양국 대통령으로부터 반드시 승인을 받아야 한다. 이 지역에 대한 폭격 문제는 한국전쟁 당시 트루먼 대통령과 맥아더 사령관이 가장 갈등했던 바로 그 주제다. 이 완충구역은 전쟁이 나면 상황에 따라 10마일, 5마일, 2마일로 축소될 수 있으나 이 역시 연합사령관이 양국 대통령으로부터 엄격한 통제와 승인을 받아야 한다. 이런 식의 완충지대 개념은 중국도 공유하고 있다. 중국은 한반도 유사시 개입하더라도 평양~원산 선을 남방 작전 제한선으로 설정하고 있다. 이렇게 보면 한반도는 미국과 중국이 각기 전면전쟁의 가능성을 제한하는 완충지대라는 성격이 드러난다.

중국, 백두산 부근에 둥펑-21D 기지 운용

지난달 28일 밤 11시41분,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4’형이 발사된 자강도 무평리는 완충구역으로부터 불과 7㎞ 떨어진 지점이다. 완충구역에서 조금 벗어나 있지만 한미연합사령부는 군사시설이 밀집된 이 지역을 완충구역 이내의 표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이번 발사는 한 부대의 연병장에서 이루어졌는데, 연합사는 북한의 미사일 이동과 발사 경로를 상세히 추적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더불어 북한이 유사시 이 일대에서 미사일을 발사함으로써 중국의 개입을 유도하는 전략적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분석된다.

더 특이한 것은 북한이 핵미사일과 같은 전략자산들을 이 완충구역 인근으로 이미 이동시켰거나, 이동시킬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이렇게 되면 유사시에 한미연합군은 북한을 공격하는 데 상당한 어려움이 예상된다. 북-중 국경지대 인근을 공격할 때 중국의 반발을 어떻게 무마할 것이냐의 문제다. 이미 미국은 미국 본토에서 대륙간탄도미사일로 북한을 공격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미국에서 발사된 미사일은 북극을 통과하여 북한 쪽을 향하게 되는데, 이럴 경우 러시아와 중국 상공을 통과할 수밖에 없다. 이 역시 중국과 러시아의 강력한 반발에 직면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동해상이나 일본 또는 한국 내 기지에서 북쪽을 향해 공격해야 하는데, 이럴 경우 북한이 전략자산을 북-중 국경지대에서 운용하면 과연 제대로 타격할 수 있느냐의 문제가 발생할 것이다.

북-중 국경선 폭 45㎞ 완충지대 설정
한미연합사령관도 권한 없는 구역
‘화성-14’형 발사된 자강도 무평리도
완충구역 이내 표적으로 관리 중

북, 전략자산 완충구역 인근 이동
유사시 북한 공격에 어려움 예상
‘독자적 킬체인 구상’ 실효성 의심
적극적 평화외교 시험대 올라서야

이미 중국은 백두산 부근에 주력 지대함 미사일 둥펑-21D 기지를 운용하고 있다. 유사시 중국은 미국이 북한 미사일 부대를 공격할 경우 이를 자신들의 주력 미사일 부대를 무력화하려는 의도로 의심하며 비상사태에 들어갈 것이다. 이 일대를 관장하는 중국의 선양 군구 소속 집단군은 과거 제2포병 소속이었던 핵미사일 부대를 배속받아 핵미사일 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전략군으로 재편돼 있다. 만일 미국이 북-중 국경지대에서 중국에 심각한 수준의 위협이 된다면 중국은 대응할 것이다. 때마침 중국과 러시아는 블라디보스토크 일대의 바다에서 연합 해상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최근 중국과 러시아의 군사적 결속은 양국 정상이 선언한 바와 같이 미국의 패권에 대항한 ‘전략적 연대’로 발전하고 있다. 러시아 역시 한반도 최북단에서 동해로 이어지는 지역을 전략적 관문으로 인식하고 군사력을 집중할 것이다.

중국이 최근 건군 90주년을 기념해 내부적으로 연 전시회에서 공개한 ‘둥펑-31AG’의 모형. 이 미사일은 미국 하와이에 이를 수 있는 사정거리 1만㎞의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이다. 연합뉴스
중국이 최근 건군 90주년을 기념해 내부적으로 연 전시회에서 공개한 ‘둥펑-31AG’의 모형. 이 미사일은 미국 하와이에 이를 수 있는 사정거리 1만㎞의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이다. 연합뉴스

킬체인도 도달하지 못하는 국경지대

북한 미사일이 발사된 지 이틀 뒤인 지난달 30일 중국 최대 훈련기지인 네이멍구(내몽골) 주르허에서는 건군 90주년 열병식이 거행되었다. 중국은 냉전시대 핵을 개발하면서 내몽골 이곳에서 핵실험을 했고, 대만의 주석궁 모형을 설치한 뒤 폭격훈련도 실시한 바 있다. 군복을 입은 시진핑 앞으로 처음 공개된 신형 아이시비엠 둥펑-31AG는 미국의 미사일방어망을 돌파하는 다탄두로켓(MIRV)이다. 중국은 극초음속으로 대기권에 진입하는 핵탄두를 앞세워 미국에 무력시위를 하면서 더 이상 과거와 같은 ‘최소 핵전쟁’ 교리에 안주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출했다. 이러한 전략자산들이 선양 군구 일대에 증강될 경우 북-중 국경 일대는 국제전쟁의 화약고가 될 가능성이 높다.

한국군 역시 2020년대까지 독자적인 킬체인을 완성한다는 목표로 북한 전역을 타격하는 지대지 미사일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우리가 독자적으로 공격할 수 없는 표적, 즉 킬체인의 범위 밖에 있다. 지난달 28일 북한 미사일이 발사되고 나서 국방부는 곧바로 사드 추가 배치를 강행하고 800㎞ 사정거리의 한국군 미사일 탄두 중량을 늘리는 한-미 미사일협정 개정을 미국과 협상하겠다고 발표했다. 북-중 국경지대를 타격할 수 있는 충분한 미사일 사거리를 확보하고, 탄두 중량도 2t에 육박하는 파괴력으로 북한 핵을 억지하겠다는 이야기다.

이런 국방부 발표 역시 북-중 국경지대까지 킬체인의 대상 지역으로 삼겠다는 의도일 것이다. 그러나 한국군 독자적으로 북한 핵을 응징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추겠다는 국방부의 발표는 일견 그럴듯해 보이는 대책 같지만, 사실상 허장성세 아니냐는 의문이 든다. 그러한 미사일을 갖추는 데도 어려움이 예상되지만, 설령 갖추었다 하더라도 지금의 한-미 연합방위체제에서 한국이 중국을 자극하는 폭격을 미국이 과연 용인하겠느냐는 것이다. 전시작전통제권을 미국으로부터 환수하겠다는 문재인 정부는 우리의 독자적인 작전능력과 주권 행사를 주장하고 있지만 한-미 동맹의 레드라인을 넘는다는 것은 지금으로선 상상하기 어렵다. 비록 북한의 핵미사일 고도화로 인해 한반도 긴장이 심화된다 하더라도 실제로 한반도 북단은 예상만큼 분쟁을 통제하기가 어려운 양상으로 발전할 수 있는 지정학적 민감성을 드러낸다. 공교롭게도 중국과 북한의 전략자산이 근접해 있는 이 민감한 지역을 어떻게 통제할 것인지, 방법이 묘연해진 것이다. 중국의 전략핵이 북-중 국경지역으로 전진배치되고 북한이 그 인근에 미사일을 배치한다면 의도하지 않더라도 둘은 상호보완적인 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이번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비행실험 자체는 성공적이지만 아직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보유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요구된다는 사실도 드러냈다. 북한 미사일이 동해로 향하고 난 얼마 뒤, 일본 홋카이도 무로란시에 설치된 기상 카메라는 바다로 떨어지는 화염을 촬영했다. ‘38노스’가 분석한 이 기상 카메라의 촬영 자료에는 지상 20㎞ 상공에서 가열되어 빛이 나기 시작하는 재진입체가 포착되었다. 6~8㎞ 상공에서 가장 밝은 빛을 발하며 폭발한 재진입체는 4~5㎞ 지점에서 작은 빛을 발산하며 눈부신 증기로 뒤덮였다. 3~4㎞ 고도에 이르러서는 빛을 잃고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공기와의 마찰로 표면이 침식되고 6000도의 고열이 발생하는 극한 환경을 극복할 수 있는 삭마 기술이 아직 완성되지 않아 재진입에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핵탄두가 미국에 도달하려면 현재 ‘화성-14’형 미사일의 형상과 추력을 고려할 때 1m 미만, 1t 미만으로 핵탄두가 제조되어야 하며 재진입 기술이 확보되어야 한다. 추가 핵실험과 몇 번의 미사일 발사 시험을 더 지켜봐야 그 신뢰성이 인정될 것이다. 실제 북한의 추가 시험에 대한 가능성은 더 높아졌다고 할 수 있다. 미국의 압박과 제재가 강화되기 이전에 완성된 핵미사일을 준비해놓아야 한다는 절박성 때문이다.

성장의 광맥이자 한반도의 생명선

아직 북한의 핵이 완성되지 않은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는 사드의 임시배치 강행, 미사일 사거리와 탄두 중량 확대, 원자력 추진 잠수함 확보, 킬체인 완성과 같은 군사대책을 쏟아내고 있다. 그러나 그 무엇 하나 북한의 핵을 억제하는 데 실효성이 없다. 한반도 최북단은 단순히 군사적 압박만으로 통하지 않는 가장 역동적인 국제정치의 공간이다. 이곳에서 북한을 정밀타격하는 작전 구상을 수립한다고 해도, 이번에는 동맹국인 미국을 비롯하여 주변 강대국이 이를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당장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핵 추진 잠수함조차 미국은 절대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또한 이곳은 북한 핵 문제가 해결될 경우 세계에서 가장 번영하는 기회의 땅이기도 하다. 북한과 중국, 러시아가 인접한 이곳은 풍부한 토지와 우수한 인적 자원, 뛰어난 산업 잠재력을 보유한 거대한 성장의 광맥이다. 위기와 기회의 요인이 교차하는 이곳이야말로 평화와 번영의 새로운 비전을 선포하고 국제협력을 도모해야 할 한반도의 생명선이나 다름없다고 할 것이다. 근세 이래 모든 한반도의 분쟁이 가르쳐주는 교훈 중에 이보다 더 분명한 것은 없다.

지금은 북한 핵을 해결하는 데 남아 있는 시간이 별로 없는 상황이다. 북한과 중국의 안보 우려를 해소하면서 한반도 주변국들이 북한 핵 협상을 진행하기 위한 마지막 기회만 남아 있다. 지금처럼 소극적인 군사대책에 안주하면서 북한에 낮은 차원의 대화만 제안한다고 해서 사태가 달라질 것은 없다. 그보다는 우리가 안보의 당사자로서 북한은 물론 미국과 중국에도 책임있는 행동과 원칙을 요구하면서 대화와 협력을 이끌어나가야 한다. 대규모 국제분쟁과 군비경쟁의 열점으로 한반도 인근이 전락하는 것을 우리는 절대 용납할 수 없다는 강인한 전쟁 억제와 평화의 의지를 먼저 과시하고, 그 바탕 위에서 우리의 적극적인 평화외교를 지금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을 ‘제2의 북방정책’이라 부르고자 한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어려운 대외 여건에 직면하여 힘의 한계를 실감했다. 그러나 우리가 한반도 정세를 주도하면서 코리아 패싱의 우려를 씻어내는 의미있는 평화외교를 수행하지 못한다면, 문재인 정부는 조만간 심각한 어려움에 직면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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