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한-미 연합훈련인 독수리훈련(FE)과 키리졸브(KR) 훈련이 벌어지는 한반도 동남쪽 공해상에 도착한 미군 제3함대 소속 핵 항공모함인 칼빈슨의 비행갑판에 F/A-18 전투기가 이륙 준비를 하고 있다. 9만3400t급 핵 추진 항모인 칼빈슨은 싱가포르에 있다가 훈련을 위해 오스트레일리아로 갈 예정이었으나 최근 갑작스레 경로를 한반도 쪽으로 변경하면서 미국의 ‘북폭설’ 등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칼빈슨호/사진공동취재단
[토요판] 김종대의 군사
북한 선제타격론의 진실
“미국이 북한을 선제공격할 것 같습니까?”
최근에 여러 언론사로부터 지겹도록 많이 듣는 질문이다. 위기가 고조되는 4월의 한반도를 전망할 수 있는 그럴듯한 분석을 원하는 이 질문에 대해 무력감을 느끼는 건 비단 필자만이 아닐 것이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12일 <폭스 비즈니스>와의 인터뷰에서 북한 김정은에 대해 “제정신을 가진 사람인지 모르겠다”고 전제한 다음, 북한에 대한 과감한 행동을 ‘간접적으로’ 시사했다. 그는 “오바마 대통령이 과거 이라크의 모술을 폭격할 당시, 넉달을 망설여 저항군에게 대비할 틈을 주는 바람에 일주일이면 끝날 전쟁을 아직도 하고 있다”며 북한에 대해 좌고우면하지 않을 생각임을 밝혔다.
그런데 같은 시각에 오스트레일리아(호주)로 향하던 칼빈슨 항모 전단이 한반도 해역으로 이동하는 데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추가적인 도발을 막기 위한 억제가 그 목적”이라고 했고, 러시아를 방문 중이던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은 심지어 “특별한 군사적 목적은 없다”고까지 말했다. 북한을 선제공격할 것 같기도 하고, 아닐 것 같기도 한 말들이 동시에 쏟아져 나오는 양상이다. 미국의 다음 행동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 자신도 “모른다”는 말을 할 정도다. 이 때문에 필자는 트럼프의 다음 행동에 대한 예측은 “국제정치학자나 안보전문가가 아니라 심리학자에게 물어보라”고 답변을 할 수밖에 없다.
예측불허 성격 자체가 무기인 트럼프
여기서 강경한 군사행동을 천명했던 미국의 대통령과 다른 트럼프의 풍모가 드러난다. 2002년 말부터 이듬해 초까지 미국의 조지 부시 대통령은 북한의 영변 핵시설에 대한 정밀 폭격을 시사하며 한껏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킨 바 있다.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이 돌이킬 수 없는 대세처럼 여겨지는 상황에 이르자 당시 막 출범하던 참여정부는 거의 공황 상태였다.
2003년 3월에 조지 부시가 이라크를 침공하면서 전쟁을 발발했다. 이 당시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을 비롯한 미국의 군부는 “6개월 내에 이라크를 완전히 안정시켜놓고 그다음엔 북한을 손볼 것”이라고 공공연히 말했다. 2003년 말에 노무현 대통령은 장고 끝에 이라크에 한국군 파병을 성사시키면서 파병의 대가로 북한에 대한 미국의 선제공격을 단념시키고 북한에 대한 평화적 접근을 요구했다. 미국을 가만 놔두면 반드시 북한을 공격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파병을 통해서라도 미국을 누그러뜨리려 한 것이다. 이 당시 조지 부시에게는 전략적인 명쾌함과 일관성이 있었기 때문에 다음 행동을 예측하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지금의 트럼프에게는 그러한 일관성과 명쾌함이 없이 “무슨 일이든 저지를 수 있다”는 충동적 행태만 드러난다. 지난 6일 미-중 정상회담이 개막되던 바로 그 시간에 트럼프는 시리아 반군에게 토마호크 미사일을 발사하는 대규모 공습을 강행했다. 이 폭격은 미 백악관의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관계자들에게조차 비밀이었다. 미국이 안보상의 중요한 결정을 하는데 집단 의사결정의 절차가 무시된 것은 적어도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이래 처음 있는 파격이었다. 그만큼 미국의 대외 군사행동에 있어 ‘집단적이며 합리적인 의사결정’이라는 미국식 전통이 단 한 번의 폭격으로 붕괴됐다. 최근 미국을 다녀온 연세대 문정인 교수는 “백악관의 허버트 맥매스터 국가안보보좌관이나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까지도 독단적으로 결정하는 트럼프에게는 하나의 장식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소문이 워싱턴 정가에 파다하다”고 전했다.
“인내의 시대 가고 충동의 시대 왔다”
이 때문일까? 미-중 정상회담이 끝나자마자 중국의 행동이 긴박해졌다. 한국을 방문한 우다웨이 중국 외교부 한반도특별사무 대표는 11일 정의당 심상정 대선 후보를 찾아와 “오바마 8년의 ‘전략적 인내’ 시대가 끝나고 나니 이제는 트럼프의 ‘전략적 충동’의 시대가 왔다”며 일체 대화가 없는 북한과 미국에 푸념을 쏟아냈다.
전날 그는 김홍균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을 만난 자리에서도 트럼프의 충동적 행태를 거론하며 “이제 시간이 없다. 북한과 대화하지 않겠다는 한국 정부에 묻겠다. 당신들이 기다리는 것은 전쟁이냐, 평화냐”며 거세게 몰아붙였다. 우다웨이는 “한국 정부가 나서서 미국에 북한과 대화하라고 강력히 촉구하라”는 주문을 했다. 그런 대화의 노력이 없이 중국더러 북한을 압박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한국 정부의 잘못된 태도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원래 우다웨이는 서울을 방문한 직후 평양을 방문하기로 했으나 북한은 일정조차 조율하지 않았다.
김일성 생일인 4월15일 우다웨이의 평양 방문도 불확실해지자 시진핑이 나섰다. 12일 시진핑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전화통화에서 북한 선제공격 불가 입장을 거듭 강조하며 평화적 해결을 촉구했다. 칼빈슨 항모가 한반도로 이동하는 것은 북한을 선제공격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고 말을 바꾼 트럼프의 유화적인 태도는 이 전화 통화에 따른 효과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트럼프는 “중국은 환율 조작국이 아니다”라며 북한 문제에 중국이 적극 나서기만 한다면 무역 문제에서 중국에 유리한 결정을 할 수 있다는 당근 정책으로 선회했다. 이 순간 ‘4월 북한 폭격설’로 한껏 긴장이 고조되던 분위기는 한순간에 누그러졌다.
여기까지 보면 중국을 다루는 트럼프 대통령의 ‘전략적 모호성’은 과거 조지 부시의 ‘전략적 일관성’보다 더 큰 효과를 거둔 것처럼 보인다. 적어도 트럼프는 “반드시 미국은 북한을 선제공격할 것”이라는 중국의 믿음을 매우 기민하게 활용했다. 4월초 미-중 정상회담에서 북한 핵 문제에 대한 타협점을 찾는 데 실패하자 트럼프는 중국과 협의 없이 북한 문제를 다루겠다는 독자행동을 천명했다.
중국의 한반도 편집증 뒤엔 두려움 있다
필자가 3월 중국을 방문해서 크게 놀란 대목이 있다. 중국의 안보전문가들은 멀지 않은 시기에 미국이 한국 정부의 동의 없이 북한을 공격할 것이라고 확고하게 믿는 것이다. 중국 외교부 자문위원인 칭화대 옌쉐퉁 교수는 “이미 한국 정부가 미국의 북한 선제공격에 동의해주지 않았느냐”며 “사실 지금의 미국은 한국 정부의 동의 자체도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베이징대 한반도연구센터 김경일 주임교수는 “미국의 강압정책으로 북한이 혼란에 빠질 경우 엄청난 북한 난민이 중국으로 쏟아져 들어올 것”이라며 “오늘날 유럽연합이 시리아 난민 문제로 극도로 혼란에 빠진 걸 보면 북한 난민은 중국에 그보다 더 치명적”이라고 주장했다. 필자가 아무리 “미국의 대북 선제공격은 쉬운 일이 아니다”라고 말해도 대다수의 중국 쪽 전문가들은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여기서 중국의 한반도 지정학에 대한 뿌리 깊은 인식이 드러난다. 1592년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는 조선에 대규모 파병을 한 여파로 망했다. 한국전쟁 당시에 대규모 파병을 한 신생 중국 정부는 그 여파로 대만 통일에 실패했다. 한반도에 문제가 생기면 중국 전체가 큰 타격을 입은 역사가 항상 반복돼온 데 대한 관성적 두려움이 존재한다. 이러한 편집증을 활용해 한반도가 극도의 위기에 처해 있다고 경고한 트럼프는 중국의 급소를 건드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국 관점에서 볼 때 참으로 이상한 나라는 대한민국이다. 전쟁이 나면 가장 많은 피해를 보는 나라가 왜 이렇게 전쟁 위기에도 태평하냐는 것이다. 사실 필자가 보아도 이 나라가 이상한 것이 안보 위기에도 국민은 마치 남의 나라 이야기인 것처럼 천연덕스럽게 일상을 유지한다. 이 정도면 대한민국 국민 전체는 군 특수부대 직업군인 수준의 담력을 갖고 있다.
트럼프 미치광이 전략 자승자박될 수도
트럼프의 행태는 국제정치학에서 통용되는 ‘광인이론’(madman theory)에 가까워 보인다. 베트남에서 전운이 감돌던 1969년에 미국의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핵전쟁 태세를 선포하며 필요 이상으로 위기를 고조시키는 비상식적인 행동을 했다. 이것은 북베트남을 공격하는 미국에 대해 소련이 개입하지 못하도록 하는 일종의 엄포였다. 만일 소련이 북베트남을 지원하면 소련과 핵전쟁을 불사하겠다는 미국의 이미지를 구성함으로써 소련은 “미국은 미친놈”이라고 생각하고 개입을 포기하게 된다. 차라리 시진핑이 트럼프를 전략가라고 생각한다면 이토록 다급하게 한반도 안정을 위해 움직이지 않았을 것이다.
중국은 트럼프가 비전략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충동적 인물이라고 생각하고 그 기세를 누그러뜨리기 위해 발 벗고 나선 것일 수도 있다. 한반도 북단에 또 하나의 비전략가인 김정은의 존재까지 고려한다면 중국의 스트레스는 한껏 고조됐을 것이다.
말레이반도 믈라카 해협에서 한반도로 북상 중인 칼빈슨 항모 전단은 아직 정확한 작전명령조차 받지 못했다. 틸러슨 국무장관은 “항모 전단은 특별한 임무도 없다”고 말하는 이상한 상황, 이 항모는 도대체 왜 다시 한반도로 진입하는 것일까?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했을 때 요격할 수 있는 스탠더드 미사일(SM-3)을 탑재한 이지스함은 칼빈슨 항모 전단에 한 척이 있다. 이 외에 일본 요코스카 7함대 모항에도 동일한 이지스함이 한 척 있다. 일본은 미국과 2월초 신형 스탠더드 미사일 시험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바 있다. 미국은 이런 해상전력을 한반도 해역에 작전배치해 놓음으로써 만일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했을 경우 “요격하겠다”는 입장이다.
물론 ‘스탠더드 미사일의 실제 요격 확률이 얼마인가’는 문제의 본질은 아니다. 북한이 어느 방향으로 미사일을 발사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동해에서 이런 해상전력이 요격한다는 보장도 없고, 아직 시험 단계에 있어 완성되지도 않은 스탠더드 미사일이 북한 미사일을 요격하지도 못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엄포가 북한에 미국의 미사일방어망을 회피해야 한다는 군사적 부담을 강요함으로써 북한으로 하여금 행동의 변화를 유도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군사적 목적은 달성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북한이 어떤 도발적 행동을 하더라도 미국은 다양한 수준에서 모든 대응책을 구사할 수 있다는 능력의 과시에 그 목적이 있다.
따라서 현재 미국이 한반도로 항모 전단을 재배치하는 의도는 군사력의 사용 위협(무력시위)을 통해 북한에 핵 실험과 탄도미사일 시험 발사를 강행할 경우 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이득보다 비용이 훨씬 크다는 점을 인식시키는 것으로 충분하다. 이를 학계에서는 ‘거부적 억제 태세’라고 부른다. 적어도 이 단계에서 한반도 전쟁 위기는 그리 크지 않다.
그러나 4월15일 이후에 북한이 적극적으로 미국이 강요한 비용을 감수하면서까지 전략적 도발을 자행할 경우에는 문제가 달라진다. 트럼프 대통령은 항공모함을 동원해 북한을 협박했음에도 그것이 통하지 않는 상황에 직면하면 자신의 명성과 위신에 큰 타격을 입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광인이론대로 좌충우돌 행동한 결과 결국 더 큰 비용을 지불해야 할 당사자는 자신이 되는 최악의 시나리오다. 국제사회로부터 미국의 억제력에 심각한 의문이 제기될 것이고, 이를 중국과 러시아가 적극 활용하려고 할 것이다. 이를 돌파하기 위해 무언가 더 강력한 조처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내몰리는 트럼프가 자신의 충동적 스타일대로 행동할 경우 한반도는 매우 위험해진다.
이런 모든 위험을 해소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낮은 수준에서나마 미국과 북한 간에 대화가 시작되는 것 말고 다른 길을 찾기 어려울 것이다. 새로운 정부가 출범하는 5월초 한국의 새 대통령이 전쟁의 위험에 맞서 당당하게 북한과 미국에 대화를 요구하고 평화의 원칙으로 한반도 정세를 주도할 수 있느냐 여부가 한반도 위기관리에 결정적으로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다.
2011년 부산 남구 해군작전사령부에 입항한 칼빈슨호. 부산/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